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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들은 겨울이 되면 가마니를 짜거나 새끼를 꼬았다. 산에 가서 나무도 하고 허술한 돼지우리도 고치고 아침저녁으로 쇠죽도 끓였다. 물론 옛날 얘기다.
요즘에야 겨울철에도 시설하우스 재배다, 양계다, 양돈이다 하여 철도 없이 바쁜 농부들이 많다. 심지어는 '아스팔트 농사'를 짓기 위해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정당 당사 앞으로 가서 한겨울 밤을 시멘트 바닥에서 지새워야 하기도 한다. 자살하는 사람, 각박해 진 시골 인심, 환경오염 등을 생각 할 때 우리가 옛날보다 잘 살게 된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 농사꾼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작년 초겨울부터 겨울 내내 꾸준히 쉬지 않고 해 온 일이 있으니 바로 목공일이었다. 작은 가구에서부터 마루 놓기, 문틀 만들어 달기까지 했다.
어제 2층 다락방 문짝을 달고 나서 그동안 내가 완성한 작품(?)들을 꼽아보니 대견스러울 정도였다. 단지 솜씨가 좋다거나 한 일이 많다는 게 아니다. 설계와 재단, 그리고 시공을 다 혼자서 해 냈다는 것이고 특히 대부분의 자재들을 주변에서 주워 와서 재활용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가구 폐목장을 찾아가서 각목과 합판을 가져와 박혀 있는 못들을 일일이 빼내서 펴 가지고 사용했다. 2년여 동안 뒷산에서 끌어다 말렸던 통나무를 제재소에 가져가 송판을 켜 온 것에서부터 산판에 가서 피죽을 가져다 집 울타리를 멋지게 만들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 집 진돗개 '금이'집을 한 채 만든 것이다. 겨울바람 한 줄기 안 들어오게 틈바구니 하나 없이 만들어 헌 옷을 바닥에 깔아 주었더니 '금이'가 다시는 집을 뛰쳐나가지 않았다. 금이 집에 쓰인 나무들은 모두 다 잘 아는 현장 소장이 군불이나 때라고 갖다 준 것이다. 나무 탁자도 이것으로 만들었다.
우리 집 진돗개 ‘금이’가 목줄을 풀고 동네를 들쑤시고 다니게 된 것을 <오마이뉴스>에 올렸더니 극성스런 독자들이 금이 집이 그게 뭐냐 느니, 생태적인 농사를 짓는다면 개 한 마리에 대해서도 뭔가 달라야지 목줄을 그렇게 팽팽히 조여 놓으면 되냐느니, 술을 먹여 개를 취하게 해서 다시 묶는 것은 좀 잔인하다느니 등등 충고와 조언이 잇따랐다. 그들의 등쌀을 배겨 날 수 없어 입막음용으로 '금이'집을 새로 지어 준 것인데 만들고 나니 잘 했다 싶었다. 작년에 금이 집을 처음 만들 때와는 전혀 다르게 고급스런 개집이 만들어졌다. 사람이 머리로 아는 것과 손이 이것을 해 내는 것하고는 별개의 문제임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목공일의 진수는 문짝 짜는 것이라고 언젠가 목수인 선배한테서 들은 적이 있다. 정말 그랬다. 올 겨울 목공일 중에 제일 마지막에 한 일이 문짝 짜는 일이었는데 나는 며칠동안 만든 문짝을 결국은 폐기처분해야 했다. 솜씨가 상당수준에 이른 시점에 한 일이었는데도 내 생애 처음으로 폐기처분하고 처음부터 다시 작업을 했을 정도라면 말 다했다.
탁자나 찻상, 그리고 컴퓨터 책상 같은 것은 톱질이 조금 빗나가거나 못질이 잘못되어도 큰 문제가 아니다. 마감작업 할 때 교정 할 수 있고 설계도에서 조금 크게 만들어지거나 작게 만들어 져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문짝은 커도 작아도 안 된다. 비틀림이 있어도 안 된다. 특히 장쇠를 달았을 때 문짝의 무게를 지탱 해 내야 할뿐만 아니라 문이 회전하면서 축이 바로 서야 한다.
이게 가능하려면 힘의 작용점과 방향, 그리고 수평과 직각이 발라야 한다. 또한 손잡이 도어락(door lock)의 높이와 간격을 맞춰 다는 일도 간단하지가 않다.
장쇠를 문짝과 문틀에 붙여 여닫아 보자 끼이거나 잡음하나 없이 사뿐하게 문이 닫히고 열렸다. 이때는 내 입에서 탄성이 다 나왔다. 1mm도 안 틀리고 네 귀퉁이가 딱 맞았다. 측량을 할 때 중심선부터 잡아야 한다는 목공일의 기초를 충실히 따른 결과이다.
초보자들은 끝에서부터 자로 재는데 넓이는 맞는데 길이가 어긋난다든가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에 전문가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뭐든 중심선을 잡고 중심선에서 좌우로 재서 잘라 나가야 비틀어지거나 하지를 않는다.
동네 할아버지가 “이제 쌔돌이(새들이를 이렇게 부른다) 아빠 어디 가서 목수질만 해도 밥 안 굶겠다”고 했다. 여간해서 내 일에 간여하지 않는 아내도 '어이구야'하면서 감탄을 했다. 이 문짝을 만드는데 든 비용을 생각하면 놀랄 것이다.
처음에 문틀을 제외하고 문짝만 짜는데 얼마나 드나 하고 문짝 집에 가서 견적을 받았더니 문을 달아 주는 것까지 해서 12만원을 달라 했다. 다 만들어져 있는 이른바 '기성문'이 문틀을 포함해서 4만 5천원에서 6만원 하는 것을 생각하면 주문 제작이 얼마나 비싼지 알 수 있다. 나는 4500원씩 주고 베니어합판 두 장. 손잡이 도어락 6000원만 들여서 문을 완성했다. 아, 여기에 오공본드 2000원이 더 들었구나.
장쇠도 버린 문짝에서 뜯어냈는데 부잣집 문짝이었는지 청동(신쭈)으로 되어 있어 망치로 바르게 펴서 사포로 문질렀더니 빛이 반짝반짝 나는 게 여간 고급스럽지가 않았다.
재작년 집을 지으면서 유난히 재미를 붙이게 된 목공일인데 작년에는 며칠간 시간을 내서 목공 강좌를 다녀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정교한 공구들이 있어 일 하기 쉬웠다. 이 공구들은 나중에 자기 집도 한 채 지어 달라면서 친구가 선물 해 준 것들이다. 전동공구들은 위험하기도 한데 아무 데도 다치지 않고 일을 했다. 친구가 준 트럭이 있어 트럭 짐칸이 작업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사용한 공구를 꼽아 보자면 이렇다. 전기톱, 회전 톱, 직소, 전기대패, 손대패, 전기 그라인더, 공기 압축기, 목공 톱, 에어 건, 줄 자, 먹줄 자, 수직 추, 수평 자, 기억 자 등이다.
다만 대패질하거나 그라인드 질 할 때 먼지가 날려 안경이 흐려지는 것도 불편했고 추운 날 마스크를 쓰면 콧김이 안경에 서려 애를 먹었다. 새들이와 새날이가 폐목 못을 빼 내는 일이나 먹줄로 금을 그을 때랑 공구 정리를 도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