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경기도는 기존에 운영돼 오던 기자실을 폐쇄하고 대신 개방된 형태의 브리핑룸을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경기도는 이를 위해 1억5000만원의 예산을 확보, 12월 말까지 공사를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도청 기자실의 폐쇄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기도지부(부장 남윤수, 이하 경기도지부)가 꾸준히 요구해왔던 사항이다.
지난 2002년 689명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자체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중 93.7%가 기자실 폐쇄나 브리핑룸 전환에 찬성한 바 있다.
이에 손학규 경기도지사와 경기도지부는 작년 11월 후반기 정기협의를 통해 도청기자실의 브리핑룸 전환과 개방된 송고대의 설치를 합의했고, 이후 실무협의를 통해 ▲현재 95평의 기자실 공간을 76평으로 축소하고 ▲신설된 브리핑룸과 송고대는 이동식 간이칸막이로 구분하고 ▲송고대는 지정석 없이 누구나 이용 가능한 형태로의 전환을 합의했다.
그러나 경기도청 출입기자들이 이러한 조치가 경기도와 경기도지부간의 일방적인 합의라고 반발, 애초 계획됐던 브리핑룸으로의 전면적 전환은 무산된 상태다.
현재 경기도청 기자실은 일부 공간(1/5)만 브리핑룸으로 전환됐고, 기존의 출입기자단을 중심으로 폐쇄적으로 운영돼오던 기자실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브리핑룸 전환 약속 대부분 이행 안돼
지난주 목요일 <오마이뉴스>가 경기도청 기자실을 현장 확인한 결과 ▲90여평의 기자실 공간은 축소되지 않았고 ▲신설된 브리핑룸과 송고대 사이는 나무와 유리로 된 고정벽으로 차단돼 있었고 ▲송고대는 종전처럼 기자개인책상과 칸막이로 구분된 지정석 행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결국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약속했던 브리핑룸 전환은 흉내만 낸 셈이다. 경기도청은 이를 위해 7400만원의 예산을 소요했다. 한 지역언론 출입기자는 “브리핑룸으로 전환하겠다고 해놓고 비싼 세금 들여 환경개선사업이나 한 꼴”이라고 지적했다.
경기도청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 공무원노조 경기도지부는 크게 반발했다. 경기도지부는 경기도지사의 연두기자회견이 있었던 지난 19일 경기도청 브리핑룸 앞에서 피켓시위를 갖고 브리핑룸 전환과 개방형 송고대 설치를 명시한 합의사항 이행을 촉구했다.
경기도지부는 “손 지사가 관언유착의 상징인 기자실의 개혁을 약속해놓고 일부 기자들의 압력에 굴복, 당초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도민의 알권리와 언론의 정론직필 그리고 도정의 투명성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폐쇄적인 기자실 운영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경기도지부는 “경기도가 후반기 정기교섭 당사자인 노조측과 협의나 조정도 거치지 않고 당초 합의안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공사를 진행했다”며 “경기도민들과 공무원들에게 이러한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경기도지사가 합의사항을 이행할 때까지 기자실 폐쇄 등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합의 불이행은 인정, 기자실 풍토변화에 의미부여"
이에 대해 경기도청은 “공직협(경기도청공무원직잡협의회)과의 합의 약속을 전부 다 이행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20평을 축소하지 못했고, 이동식 칸막이가 아닌 고정벽을 만들었고, 지정석도 그대로 운영되는 상황”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경기도청은 “기자실의 브리핑룸 전환 문제에 있어 직장협과의 합의내용이 기초 기준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언론인들 역시 도정 홍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전 조율이 있었다. 연론의 역기능뿐만 아니라 순기능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또 경기도청은 “눈에 보이는 공간보다는 과거와는 변화된 기자실의 풍토에 주목해줬으면 한다”며 “모든 게 다 도민을 위해서 하는 일인만큼 운영의 묘를 잘 살리면 기자실 문제는 원만한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실 폐쇄 요구는 도민이 요구할 사안'
한편 경기도청에 출입하는 한 중앙일간지 기자는 브리핑룸 전환 문제에 대해 “그 사안은 손학규 지사와 공보관실이 공직협과 합의한 사안”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출입기자들 나름의 의견을 도지사와 공보관실에 전달했고 그쪽에서 알아서 판단하고 결정한 일”이라고 밝혔다.
중앙일간지 기자는 “출입기자들도 브리핑룸을 만드는데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며 “시대적 흐름이기 때문에 굳이 피할 이유가 없고 브리핑룸을 만드는 것을 반대하거나 방해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중앙일간지 기자는 “다만 기자실을 없애라는 요구는 도민들이 요구할 사안이지 공무원들이 요구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이미 만들어진 브리핑룸도 충분히 이용률이 높다”고 말했다.
환경개선사업에 7400만원 썼다
그러나 다른 지역신문 출입기자는 이와 다른 입장을 보였다. 그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기자들의 반발로 브리핑룸을 만들겠다는 당초의 취지가 퇴색됐다”며 “기자 개인의 성향에 따라 입장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브리핑룸 전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밝혔다.
지역언론 기자는 “기자실의 폐쇄적인 운영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며 “지금 저 방안에 들어가 봐라. 당장 어디서 왔냐고, 쫓겨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실을 개방하면 수준 미달의 기자가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누군 수준이 높냐”고 반문하며, “특히 오랫동안 기자실에서 출입기자 생활하던 분들의 반발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남윤수 공무원노조 경기도지부장은 “교통 통신수단의 발달로 과거처럼 관공서에 상주할 필요성이 적어졌다”며, “그럼에도 출입기자단을 중심으로 폐쇄적인 기자실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기존 언론에 대한 특혜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남 지부장은 “많은 도민들은 도청 기자실이 폐쇄되고 브리핑룸으로 전환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이러한 사실을 도민들과 공무원들에게 적극 알리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 도지사 측에 합의사항의 이행을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경기도청에는 중앙지 16개사 17명, 지방지 26개사 31명 등 모두 42개사 48명의 출입기자들이 상주하고 있다.
경기도 측은 “출입기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언론에 최대한의 취재편의를 제공하고 있고, 도정을 홍보하는 게 행정 목표이기 때문에 현재의 기자실·브리핑룸 체계는 변화 여지가 있다”며 “추후 경기도지부와 출입기자단과의 협의·조정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