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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식을 하루 앞둔 2일 밤. 노동운동의 상징인 구로공단(가리봉동 3공단)포장마차에서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을 만났다
취임식을 하루 앞둔 2일 밤. 노동운동의 상징인 구로공단(가리봉동 3공단)포장마차에서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을 만났다 ⓒ 김진석
2일 밤 9시 45분, 서울 가리봉동 3공단 길섶에 있는 포장마차에 그가 들어왔다. 이미 "소주 한 병 전작이 있다"고 말한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는 주변에 있는 여느 노동자들처럼 소주 한잔에 오뎅 국물을 입에 털어넣었다.

위원장 첫 출근 날 벌인 술판

2월 2일은 바로 그의 첫 출근 날이었다. '민주노총 새 위원장 이수호(55)'로서 3년 동안의 임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날 아침 그는 첫 집행부 조회에서 다음처럼 말했다고 했다.

"아침 햇살이 따뜻하다. 우리도 햇살처럼 가장 강하지만 가장 따스한 운동을 해보자. 햇빛은 직선이다. 부드러운 직선."

국어 선생님다운 표현이다. 그는 어떻게 '부드러운 직선'을 이룰 것인가.

"여태껏 반독재 민주화 투쟁, 노동해방 투쟁, 반미자주화 투쟁. 이 모든 것이 직선 곧 원칙이었습니다. 이 원칙을 갖고 나가되 민중들이 몸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민주노총을 만들겠습니다.”

소주 한 병에 뜨거운 오뎅 국물, 그리고 낙지볶음을 앞에 두고 그는 포부를 밝혔다. 그가 입은 점퍼엔 '우리를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란 글귀가 박혀 있었다.

"우리의 사업 내용과 방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대화는 하되 쉽사리 타협하지는 않겠습니다. 노동과 자본은 본질적으로 갈등 구조죠. 적당한 타협은 없습니다. 하지만 대화의 공간은 열겠습니다. 민중이 함께 하는 사회개혁 투쟁도 힘껏 벌이겠습니다. 비정규직, 이주 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도 더욱 강화해야 하고…."

대화는 하되 타협은 없다

ⓒ 김진석
그는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사진기자가 플래시를 터뜨리면서 그 모습을 찍었다. 작업복을 입은 주인이 달려와 "번쩍 하는 플래시 불을 보고는 전기 합선이 된 줄 알았다"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지난 해 손해배상, 가압류, 노동탄압에 노동자들이 쓰러졌다. 총파업 엄포와 투쟁이 꼬리를 물고 계속됐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 섰는 데도 말이다.

"노 대통령 당선된 것 자체가 사회에 큰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초심이 변질됐다고 봅니다. 노동정책이 대표적이죠."

그는 그 까닭으로 노무현 정권의 '자살'보다는 '타살'에 무게 중심을 두었다. "조중동과 보수세력의 힘을 등에 업은 기득권 세력들이 이렇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너무 감싸주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아이들 가르치면서 얻은 품성일 수 있는데 상대방의 순수한 동기는 인정한다. 노 정권도 처음부터 이렇게 망치려고 했겠냐. 밀리고 밀려서 어쩔 수 없는 형편이 된 것으로 본다"고 뜻밖의 분석을 내놨다.

하지만 그는 노 정권의 야심작인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방안(로드맵)’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노동자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전시 행정식 신자유주의 정책수립엔 동의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되물을 정도였다.

"사용자에 대해선 대체근로투입 등 엄청나게 힘을 주는 게 바로 이 로드맵입니다. 노동기본권을 침해하는 이것은 엄청난 저항을 부를 다이너마이트라고 생각해요."

그는 또 최근 경총이 제안한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기업 임금 동결 방안'에 대해서도 고개를 저었다. "사용자들이 자기 경영 투명성이나 합리성을 위한 장치를 먼저 하고 해야 할 소리"라는 것이다.

'차떼기'기업들이 자기 반성 없이 노동자 임금 동결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얘기다.

그러나 그는 "독자적이며 자주적인 구조로 노사정 틀을 새로 짜면 대화에 적극 나설 생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또 "왜곡된 보도로 과장된 점은 있지만 높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양보도 필요한 때"라고 말하기도 했다. 뭔가 기존 노동운동 지도자의 주장과는 다른 점이 엿보였다.

ⓒ 김진석
당장 올 상반기의 화두는 4월 총선. 민주노총은 진보정치를 위한 선거투쟁에 '올인'해야 한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을 총력 지원해서 진보정치의 교두보를 마련해야 희망이 있습니다. 깨끗한 정치 실현에 대한 국민 열망이 높고 정당 명부제가 실시되는 만큼 최소한 10석에서 20석을 얻으리라 봐요.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노 정권에게도 결코 불리하지 않습니다."

이미 "민주노총 안에 선거대책기구를 만들 준비가 다 되어 있다"는 설명이다.

간혹 민주언론시민운동연합 등 언론운동단체는 민주노총에 화살을 겨누기도 한다. 언론운동에 대한 철저함이 떨어진다는 게 이들의 볼멘 소리였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조선일보>는 역사성, 사실 왜곡 정도, 편집 태도를 봤을 때 극우에 해당돼요. 일단 상징적으로라도 악랄한 조선만큼은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술보다는 분위기와 사람을 먹는다"

이 때 포장마차에서 술을 먹던 한 남자가 "위원장님이 오셨는데 한 잔 받으시라"며 소주를 따랐다. 1월 16일 당선 후 언론들의 계속된 인터뷰에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이가 많아졌다. 이 위원장은 고개를 한번 숙인 다음 술을 받아 마셨다.

그의 주량은 소주 한병 반. 기분이 좋을 때는 술자리에서 밤을 새기도 하는데 "술보다는 분위기와 사람을 먹는다"는 엽기적인 말을 했다. 이 위원장은 술을 먹으면 노동가요 '민들레처럼'이나 '투쟁의 한길로'를 즐겨 부른다. 노래방에 가서는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를 즐겨 부른다.

인터뷰를 마친 시간은 3일 새벽 0시 10분. 이날 오후 4시 용산구민회관에서 진행되는 '민주노총 위원장 취임식'을 여는 날이 밝아왔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 위원장을 포장마차 주인의 친동생이 붙잡았다.

'(주)대생'이란 글자가 새겨진 작업복을 입은 그는 이 위원장한테 종이를 내밀며 '기념으로 몇 자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이 위원장은 다음처럼 적었다.

'오늘이 힘들더라도 기죽지 말고 힘차게 삽시다.'

이 위원장의 별명은 '마른 막대기'다. 막대기는 주인이 쓰기 나름. 막대기는 탄압을 막기도 하고, 부정을 때리기도 하고, 해방세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어떤 막대기가 되길 원하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말로 행동하지 않고 행동으로 말하겠다”고.

제4기 민주노총호 이수호 함장이 닻을 올렸다. '부드러운 직선', 마른 막대기의 실험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평교사... 전교조 결성 주도... 민주노총 위원장까지
이수호 그는 누구인가

▲ 가리봉동 포장마차에서 만난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
ⓒ2004 김진석

이수호 위원장이 교직에 첫발을 뗀 것은 74년. 경북 울진에 있는 제동중학교였다. 80년 초까지 그는 평범하지만 성실하게 노력하는 교사였다.

77년 서울 신일고로 학교를 옮긴 그는 '학급 전원 개근, 서울대 최고 진학률'을 자랑하는 능력 있는(?) 교사였다. 그러던 그가 80년대 중반부터 YMCA 교사회 참여를 시작으로 교육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아이들이 시험에 질려 자살하고 보충수업으로 누렇게 떠가는 상황에서 제가 열심히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아이들을 망가뜨리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실무처장으로 전교조 결성을 주도한 그는 결국 90년엔 6개월간 투옥되기에 이른다.

"교사는 스무 평 교실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이 시대의 교사로서 이 나라를 사랑했고 그 사랑의 구체적 표현으로 여러 가지 정치적 행동들을 했습니다."(이수호, 항소이유서, 1992)

그는 1999년~2001년 민주노총 사무총장, 2001~2002년 전교조 위원장을 지냈다. 전교조 위원장 시절 연가투쟁을 이끌어 지난해 직위 해제됐으나 올해 1월 복직판결을 받았다. / 윤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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