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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연필을 직접 깎으며 가늘게 깍인 나무와 곱게 갈린 흑연의 향기를 즐겼다.
예전에는 연필을 직접 깎으며 가늘게 깍인 나무와 곱게 갈린 흑연의 향기를 즐겼다. ⓒ 정철용
그 냄새를 맡으며 나는 요절한 시인 기형도의 시를 떠올린다. 어느 날 마을에 흘러 들어온 떠돌이 사내에게서 세상의 아름다움과 삶의 신비를 배웠으나 그가 떠나고 난 후 차츰 성년이 되면서부터는 망각해버리고 마는 유년시절을 노래하고 있는 아름다운 시 ‘집시의 시집’. 그 시의 마지막 연에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완전히 그를 잊었다. 그는 그해 가을 우리 마을에 잠시 머물다 떠난 떠돌이 사내였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는 우리가 꾸며낸 이야기였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저녁마다 연필을 깎다가 잠드는 버릇을 지금도 버리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기형도 시인처럼 매일 잠들기 전 버릇이 될 정도로 자주는 아니었지만 나도 연필깎기를 꽤 즐기는 편이었다. 학창시절에는 손수 내가 연필을 깎아서 썼고, 편하고 값싼 볼펜을 많이 썼던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내 책상 서랍에는 손수 깎은 연필 몇 자루가 항상 들어 있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딸아이의 연필도 가끔씩 깎아주었다.

구멍에 넣고 손으로 돌려서 깎는 연필깎이 기계도 있었지만 나는 내가 직접 칼로 깎는 것을 더 좋아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연필 깎는 것을 즐기게 했을까?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연필을 깎는 그 단순한 손놀림과 집중의 순간을 즐기고 깎여나간 나무와 흑연의 냄새가 좋았던 것이라고만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기형도 시인의 시를 읽는 순간 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국민학교 1학년생이었던 그 시절, 늦은 밤 아직 내가 깊은 잠이 들기 전에 내 책가방에서 필통을 꺼내 연필들을 하나하나 손수 깎아주었던 ‘그’, 바로 나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잠결에 사각사각 연필 깎는 소리를 듣는 것은 얼마나 평화로웠던가. 단칸방에 아버지와 나 단둘이 살던 그 가난했던 시절, 포장마차로 생계를 이어가시던 아버지는 늦은 밤에 집에 돌아와서도 내 연필 깎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 가기 전에 필통을 꺼내 열어보면, 뾰족하게 깎인 까만 연필심이 눈부신 연필 몇 자루가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어린 마음에도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가.

그러나 그런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해 여름이 되기 전에 내 곁을 떠나셨다. 햇살이 제법 뜨겁게 느껴지던 6월 말의 어느 날 오후, 우리 반 교실에 누군가 찾아왔다. 그는 선생님께 뭐라고 말하고는 나를 급히 불렀다.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쓰러지셨다고? 어리고 너무나 철이 없었던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 아버지는 흰 천으로 온 몸이 덮인 채 이미 싸늘한 시신이 되어 누워 계셨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엄습하는 공포.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바로 방을 나왔다.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나는 다만 무서웠을 뿐이다. 아버지의 육신을 점령한 그 죽음이, 그 죽음에 의해 꼼짝 않고 누워 있는 아버지의 주검이 나는 무서웠던 것이다.

내 기억에 새겨진 아버지와의 마지막 작별의 풍경은 이후 30년 동안 은밀하게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어두운 방 안에 시체가 되어 누워 있던 나의 아버지의 모습이 어쩌면 내가 꾸며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 어린 시절 잠깐 내 삶에 머물다 간 사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그를 잊으려고 했다. 그러나 어찌 잊을 것인가. 그와 함께 보낸 시간이 비록 8년에 불과하고 또한 그 시절은 정말 돌아보기도 싫을 정도로 가난했던 시절이긴 하지만, 그는 나의 아버지인 것을. 내가 그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이름 석자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그는 나를 낳아준 아버지인 것을. 딸아이의 연필을 깎아줄 때마다 나는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불쑥 불쑥 떠오르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죄책감은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 차츰 잊혀졌고 딸아이의 연필을 깎아주는 일도 차츰 드물어졌다. 그러다가 약 3년 전 쯤에 뉴질랜드로 이민 와서 다시 연필을 깎기 시작하면서 나는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딸아이의 연필을 깎으면서 나는 내게 말을 건네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아, 그렇구나. 아버지는 내 속에 이렇게 깨어 있었구나. 오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그래서 이제는 잊혀졌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항상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깨어 있었구나. 그러니 정작 아프고 괴로웠던 사람은 죄책감에 시달린 내가 아니라 내 안에서 삼십 년 동안을 잠들지 못하고 깨어 있느라고 불면에 시달린 그였구나. 이제 화해를 하자. 묻어두지만 말고 화해를 하자.

그러나 지금은 연필 깎기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내 마음의 묵은 때도 덜어낸다.
그러나 지금은 연필 깎기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내 마음의 묵은 때도 덜어낸다. ⓒ 정철용
딸아이의 연필을 깎으면서 나는 비로소 아버지와 화해한다. 어린 날 그 비좁은 단칸방 내 머리맡에서 밤늦도록 연필을 깎아주던 아버지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한다. 좁고 어두운 방에 싸늘한 시신이 되어 누워 있는 모습이 너무나 무서워 쳐다보지도 않았던 그 날의 죄책감에서 비로소 벗어난다. 요즘 내가 만나는 아버지의 모습은 흰 천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던 아버지가 아니라 늦은 밤 내 연필을 깎아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된 것이다.

사각사각. 연필심이 깎이면서 나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린다. 곱게 갈리는 까만 흑연 연필심의 냄새와 가늘게 잘라져 나간 나무의 냄새가 향기롭다. 딸아이는 연필을 깎으면서 느끼는 나의 이런 평화로운 마음을 알 것인가. 자신의 연필을 깎아주던 이 아빠의 모습을 훗날에도 기억할 것인가.

딸아이가 알아주든 말든, 나중에 기억하든 못하든, 나는 마음이 어지러운 날에는 연필을 깎는다. 아니, 내 안의 내 아버지가 연필을 깎는다. 아니, 내 딸아이의 미래 기억 속의 아버지가 연필을 깎는다. 연필을 깎은 그 자리에 내 마음을 어지럽히던 마음의 묵은 때가, 삼십년 동안 내려놓지 못한 죄책감이, 늘 내 마음 속에서 깨어있던 아버지의 고단한 잠이 한 움큼 수북하게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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