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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책 표지 ⓒ 전희식
환경과 생명을 다룬 책들이 봇물을 이룬다. 그 중에는 톡톡히 장삿속을 챙기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환경이나 생명, 생태 문제가 돈이 되기 시작한다는 얘기다. 반겨야 할 일은 아닌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반증이려니 싶다.

지난달 31일, <풀씨 9호>를 아들 새들이가 진학하게 된 강화도 마리중학교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반을 읽었고 오늘 새벽 4시경 일어나서 나머지 반을 다 읽었다. 엎드려서 읽다가 모로 누워 읽다가, 일어나 앉아서 읽다가 하면서 다 읽었다. 옆자리에서 깊게 잠들어 있는 새들이가 깰까 봐 책상 등 불빛 한 쪽을 가려 놓고 읽었다. 뒷장은 물론이고 표지에 있는 깨알 같은 글씨들도 다 읽었다.

논과 농업, 농사, 쌀에 대한 이야기를 환경과 생명의 관점에서 보면서 한반도 전 역사를 통해 아우르고, 각 문학 장르를 꿰어 내면서 입체적으로 쓰인 책이다. 선지식들의 강연과 글과 지혜까지 잘 담겨 있다. 장일순 선생님의 글이 더욱 그랬다. 몇 년 전, 인도 오로빌 공동체에 가 있으면서 읽은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를 다시 보는 느낌이었다. 시공을 뛰어 넘어 당시 그곳의 추억과 그리움이 되살아났다.

도법 스님의 강연록은 그 분의 목소리와 표정, 손짓까지 머릿속에서 되살아나게 하였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읽고 듣고 하여 잘 아는 대구 한살림 이사 천규석 선생의 '논 이야기'는 그분의 농장에 나도 함께 둘러서서 얘기를 듣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논의 역사와 논의 가치, 그리고 주의 깊게 생각 해 보지 못했던 논과 사람과의 긴밀한 관계가 잘 설명되어 있었다.

김제 벽골제 벼 박물관에 아이들을 데리고 꼭 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만든 것도 <풀씨 9호> 덕이다. 책이란 것이 기획이 되고 제작에 들어가면 글도 추가로 쓰고 사진도 다시 찍게 된다. 전체적인 구상에서 비는 것을 채우느라 이른바 ‘연출’이란 것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꾸밈보다는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이라는 단체의 1년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사진 한 컷, 한 컷이 연출된 것이 아니라 '풀꽃세상'의 역사였다. 책꽂이에서 잠을 자고 있던 조태일, 이성부 시인의 시집을 다시 꺼내서 이런 시가 다 있었나 하고 원문을 읽어보기까지 했으니 덕분에 시 몇 편을 감상하는 기회도 가졌다.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유배된 고려인의 수난과 벼 농사 이야기를 해 주신 허정균 선생님의 글과 진보생활문예지 <창>의 편집인 송경동 선생님이 멕시코 칸쿤에서 쓴 시 세편을 읽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당시 고 이경해 열사의 장례식 행렬 뒤꽁무니에서 왠지 모를 답답함에 가슴이 미어지던 기억이 떠올라 그랬다.


…우리는 춤을 춘다.
그런데 너희는 책상에 앉아 있다. 근엄하게

우리는 묻는다.
그런데 너희는 명령하길 좋아한다. 높은 곳에서

우리는 또 일한다. 바쁘게 기쁘게
그런데 너희는 계산한다. 신중하게

…그래서 우리는 싸운다. 증오한다. 너희를
너희는 노래의 적이므로
너희는 춤의 적이므로
노동의 적
만남과 관계를 사고파는 너희와 우리는 싸운다.

철책을 뜯어내고
바리케이트를 걷어내고
노래하며 춤추며 환호하며
일하며 사랑하며
너희가 원하는 세상을 넘어 다른 세상으로
때론,
자신의 가슴을 칼로 찌르며…(송경동. 208쪽)


풀꽃세상 대표인 박병상 선생님의 글은 오랜 옛 추억을 되살려 현재 급식조례운동의 진행과 방향을 잘 짚어 주고 있다. 재미난 도시락 이야기에서부터 풀어낸 학교급식 글은 길었지만 그분의 독특한 필력 덕에 단숨에 읽게 됐다. 내 도시락이 책가방 속에서 달그락거리던 소리가 삼십 년 세월을 넘어 들려왔고 이름이 두만이어서 '만두'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그 친구. 노릇노릇한 계란 프라이를 늘 싸오던 읍내 포목 집 아들내미 얼굴도 떠올랐다.

무엇보다 71권이나 되는 생명. 환경. 농업 관련 책들을 저자와 제목만으로 한 편의 글로 완성해 낸 박씨의 솜씨는 입가에 넉넉한 미소를 띠게 한다. 볼수록 신기하고 재미있는 발상이라 나도 한번 해 보자 싶어서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글 뒤에 있는 책 목록을 보면서 박 선생처럼 책 제목을 나열하는 식으로 문장 만들기를 시도해 봤는데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얼른 주제를 파악하고 바로 포기해 버렸다.

화보로 시작하여 제5부까지 구성된 책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잘 편집됐다. 작년 11월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풀꽃상 행사에 참석 못한 수천 명의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회원에 대한 배려가 되어 있으면서도 일반인의 교양 책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3부 ‘지켜야 할 우리의 논’은 현재의 농업문제와 쌀농사가 잘 설명되어 있어서 누구에게나 권할 만하다.

덧붙이는 글 | 출판사 : 그물코
저자 :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값 : 9000원


풀씨 -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이 펴낸 아홉번째 책

풀꽃세상을위한모임 지음, 그물코(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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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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