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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창피해"
"앗! 창피해" ⓒ 유성호
생김새와 성격은 단단하지만 몸집은 또래에 비해 작아서 '돌콩이'라고 불리는 우리집 작은 아이. 이 녀석이 하루는 전라의 몸으로 집안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야들야들 섹시한(?) 몸매를 가진 녀석이 비록 집안이지만 엄동에 홀랑 벗고 쏘다니니 행여 감기가 들까 걱정스런 눈으로 봅니다.

휴일이라 바깥 바람을 쐬러 나가기 위해 씻기려고 옷을 벗기는 도중에 잠시 물을 잠그고 온 사이 녀석이 행방불명됐습니다. "요 녀석 어디로 갔니?"하며 이방 저방 찾는데 녀석은 어느새 작은 방 컴퓨터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서있습니다.

녀석은 요즘 컴퓨터에 맛을 들여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유아용 사이트를 제집 드나들 듯 들락거립니다. 아직 한글을 몰라 자판 두드리는 것은 무리지만 마우스는 제법 잘 다룹니다. 마우스 크기가 제 손보다 큰데도 말입니다.

"뭐해 씻지 않고?"
"나 오늘 컴퓨터 많이 안 했어! 조금 했단 말이야."

이 말은 작은 아이가 컴퓨터를 쓰기 위해 매일 써먹는 레퍼토리로 듣고 있자면 가끔 기가 막힐 때가 있습니다. 어린 녀석이 벌써 컴퓨터에 빠져 가지고 아빠와 쟁탈전을 벌이고 있으니 앞날이 걱정입니다.

양떼 몰 듯 작은 아이를 컴퓨터 방에서 몰아내 화장실로 향하는데 녀석이 미꾸라지처럼 쏙 빠져나갑니다. 그러고는 거실에 풀썩 주저앉습니다. 베란다로 내리쬐는 겨울 한낮의 볕이 따뜻했던 모양입니다. 녀석은 양지 바른 곳에 앉아 뭔가를 만지작거립니다. 그러면서 "아, 따뜻해!"라며 온기에 대한 감사의 뜻인 양 감탄을 보냅니다.

"오호! 등이 제법 따뜻한 걸?"
"오호! 등이 제법 따뜻한 걸?" ⓒ 유성호

녀석이 주물럭거리는 것은 형이 어린이 집에서 만들어 온 대나무 피리입니다. 입에 대고 연신 불어 보지만 소리가 나질 않습니다. 소리가 울리는 갈대청이 이미 찢어져 없기 때문입니다. 제 구실을 못하는 피리를 녀석은 휙 집어 던집니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이번엔 엄마가 애지중지하는 손톱 다듬는 기구를 만지작거립니다. 이 기구는 니퍼(nipper)처럼 생겨서 주둥이가 매우 날카롭습니다. 뺏고 싶었지만 양지에서 뒹굴뒹굴 구르며 뭔가에 열중하는 녀석의 모습이 보기 좋아 내버려두었습니다.

볕 좋은 양지에서 뒤척거리는 녀석을 보노라니 마치 작은 식물이 광합성을 하는 듯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옆구리 늑골이 오르락내리락거리며 색색 숨을 쉬는 작은 녀석에게 커다란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이번엔 나른한 오후 볕에 늘어진 고양이 같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날씨가 따뜻한 탓에 집안이 그다지 춥지 않고 남향인 덕에 볕까지 쏠쏠히 들어오니 홀랑 벗은 녀석이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느긋하게 늘어져서 한동안 볕을 쬡니다. 녀석의 유려한 허리 곡선 위로 때 이른 봄볕이 흐르고 있습니다. 갑자기 녀석의 등에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고 쓰고 싶습니다. 나른한 휴일 낮 시간 이장희의 시가 입안에 맴돕니다.

요염한 허리 곡선을 자랑하는 작은 녀석. 바닥은 전날 아랫층의 항의에 따라 매트를 깔았다.
요염한 허리 곡선을 자랑하는 작은 녀석. 바닥은 전날 아랫층의 항의에 따라 매트를 깔았다. ⓒ 유성호

<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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