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남조 풍정도. 얼하이의 작은 섬이지만 그곳에는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남조 풍정도. 얼하이의 작은 섬이지만 그곳에는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 최성수
애초 운남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유채꽃을 보러 쿠칭에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채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다는 말에 쿠칭 행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런데 대리 <넘버3> 게스트 하우스의 문 사장의 권유로 얼하이 호수의 남조풍정도로 가서 하룻밤을 자고 오기로 하고 떠난 길, 밭 군데군데 유채꽃이 노랗게 피어 있습니다. 밭 마늘이 지천을 이루고 있는 사이사이, 노랗게 얼굴을 들고 서 있는 유채꽃, 푸르디푸른 대리의 하늘 아래서 그 유채꽃은 너무도 여리고 순하게 보입니다.

동백꽃 보러 선운사에 갔다가 육자배기 가락만 듣고 왔다는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이 유채꽃을 보고 있는데 문득 떠올랐습니다. 유채꽃을 보러 운남에 왔다가 아직 일러 유채가 지천이라는 유채 마을에는 못 가고, 이렇게 드문드문 일찍 피어난 유채꽃을 보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 하니 든 생각입니다.

전통 중국 가옥 처마에 걸려있는 얼하이의 물살
전통 중국 가옥 처마에 걸려있는 얼하이의 물살 ⓒ 최성수
남조풍정도는 얼하이 호수에 있는 작은 섬입니다. 아마도 남조국의 풍광을 간직한 섬이라는 정도의 뜻이겠지요. 생각해 보면 이곳 대리는 옛날 남조국(南詔國:737-902)의 땅입니다. 남조국은 소수민족인 이족(彛族)이 당나라 때 이곳 대리에 세운 나라입니다. 대리는 대리석이 나서 붙은 이름이기도 하고, 송나라 때 백족(白族)이 이곳에 대리국(大理國)을 세워서 붙은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흘러간 역사의 흔적은 문화유적보다 풍경으로 남는 법인지도 모릅니다. 유적은 무너지고 흩어져 자취조차 없는 것이 더 많은데, 풍경은 여전히 남아 역사의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 듯합니다. 남조국 때도 대리국 때도 여전했을 저 얼하이 호수처럼 말입니다.

남조풍정도 가는 길은 얼하이 호수를 옆구리에 매달고 가는 길입니다. 온갖 푸른 작물들과 그 사이에 때때로 여리게 피어난 유채꽃을 보며 한낮의 햇살에 차창에 기대 졸다 보면 얼하이 호수가 오른쪽에 나타납니다.

호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그래서 바다처럼 보이는 얼하이는 푸른 물살을 뒤척이며 나를 따라 옵니다. 운남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얼하이 호수, 그래서 이름도 호수 호(湖)를 쓰지 않고 바다 해(海)를 쓴 것이 이해가 갑니다.

가다보면 강미(江尾)라는 예쁜 이름의 마을을 지납니다. 강의 끝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겠지만, 한자보다는 강미라는 우리말 발음이 더 예쁘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마을을 지나고 차는 포구에 닿습니다.

전통 가옥 2층에서 바라본 호수. 물 위에 물새들이 앉아 있다.
전통 가옥 2층에서 바라본 호수. 물 위에 물새들이 앉아 있다. ⓒ 최성수
그저 잔잔한 호수려니 만만하게 생각하고 옮겨 탄 작은 배는 지척인 남조풍정도까지 마구 흔들리며 달려갑니다. 파도가 꽤나 무섭게 이는 호수는 호수가 아니라 바다 같습니다. 섬을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아 포구에 닿으면 아기자기한 풍경들이 여행객의 감성을 흔들어 놓습니다.

오솔길을 따라 얼하이 파도 소리를 들으며 도착하는 곳은 중국 전통 가옥입니다. 그리고 여행객은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냅니다. 아름다운 정원과 고풍 가득한 집들, 절벽 아득한 높이에까지 저절로 자라난 선인장과 문 밖을 나서면 얼하이 물결이 발치에 헤적이는 곳입니다.

이 집의 이 층에서 바라보는 호수는 아름답습니다. 문 없는 창이 밤새도록 파도 소리를 들려주는 곳, 그 남도 풍정도에서는 여행자의 온갖 시름들도 다 파도에 씻겨 나갈 듯합니다.

호숫가로 이어진 문. 물살이 문에 매달려 출렁이는 것 같다.
호숫가로 이어진 문. 물살이 문에 매달려 출렁이는 것 같다. ⓒ 최성수
배추쌈에 삼겹살 숯불구이로 배를 채우는 호사도 누려가면서 함께 간 일행들, 대리 문씨 아저씨와 함께 모닥불 가에서 나누는 이야기들도 여행자들이 드물게 맛보는 즐거움입니다.

몇 달째 여행 중인 친구들에서부터, 며칠 전에 여행을 떠난 나 같은 사람들까지, 대리에 터 잡고 살게 된 문 사장의 내력(그는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다 대리의 아름다움에 반해 폐가인 집을 얻어 지금의 넘버3 게스트 하우스를 꾸몄다고 합니다. 그는 대리를 풍수지리상 ‘천하의 명당’이라고 합니다) 등 서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은 끝이 없는데,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자리를 피합니다.

말의 숲을 떠나 또 다시 말에 갇히기 싫기 때문입니다. 나처럼 말로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의 사람은 때때로 말이 싫어질 때가 있는 법입니다. 내가 한 말이 도리어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어쩌면 내 생의 전부가 말의 덫에 걸려 있었던 것 같은 강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떠난 여행길에서 또 말의 함정에 빠지고 싶지 않은 나는 어둠을 더듬어 호숫가로 나섭니다.

호수 건너로 몇 개의 불빛들이 반짝입니다. 아득해 보이는 호수 건너편의 마을 누구네 집에서는 이제 가족들이 머리를 맞대고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늦게 일터에서 돌아오는 아버지를 맞아 가족들이 불빛 아래 환한 웃음을 피워 올리고 있는지요? 그런 생각을 하며 바라보는 호수 건너의 불빛들은 그리움입니다. 그리고 얼하이의 물결은 불빛 건너편으로부터 끝없이 내 발치로 밀려듭니다.

새벽, 소변이 급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니, 어쩌면 밤새 내 귓전을 간질이던 파도 소리에 잠이 깼다고 해 두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아직 동이 트려면 먼 시간이지만, 세상은 푸르스름한 빛으로 가득합니다. 나는 우선 화장실로 향합니다. 남도 풍정도의 이 중국 전통 가옥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어쩌면 화장실인지도 모릅니다.

중국 여행을 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화장실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앞문이 없는 화장실, 그래서 늘 닫힌 공간에서 생리적 문제를 해결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제대로 일을 해결하지 못한 경험들 말입니다.

벌써 꽤 오래 전의 일입니다. 천진, 북경, 서안을 거쳐 다시 북경서역에 도착한 때였습니다. 손님을 호객해 채우면 떠나는 버스를 기다리다, 북경 서역 근처 역무원 아파트의 공중 화장실에 갔을 때였습니다. 이미 그때는 중국식 화장실 문화에 익숙해 져서 으레 그러려니 하고 화장실에 들어섰는데, 나는 당황해서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화장실에는 옆 칸막이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구멍이 세 개 뚫린 대변기가 있고, 소변을 볼 수 있는 곳은 벽에 홈을 파놓은 것뿐이었습니다. 세 구멍 중 가운데에 앉아 대변을 보는 사람이 하나, 나는 그를 등 뒤에 두고 소변이 나오지 않아 한동안 애를 먹어야 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중국인은 내 뒤에서 끙끙 힘을 주고 있었습니다.

북경 공항에서는 칸막이가 되어 있는 문을 휙 열어젖히고 볼일을 보는 사람을 본 적도 있었습니다. 곤명역 화장실은 앞 문 없이 대변 칸이 죽 늘어서 있는데, 대변기 아래는 서로 통해 있어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물이 흘러내리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볼일을 보다 보면 앞 칸에서 오물이 둥둥 떠내려 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불편은 어쩌면 우리와 다른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라나 민족마다 서로 다른 문화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지요. 우리는 닫힌 공간을 가진 화장실 문화였다면, 중국은 열린 공간의 화장실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특별히 문제 삼을 것도 없을 것입니다.

하여튼 그런 중국 화장실을 생각하고 남조 풍정도 옛 집의 화장실에 들어가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온통 나무로 이루어진 화장실 안은 아주 넓고 거울도 깔끔합니다. 그러나 그 넓은 공간 바닥에는 달랑 변기 하나만 놓여 있습니다. 아니 변기가 아니라 그저 나무 바닥에 사선으로 비스듬히 구멍을 뚫어놓았습니다.

물을 내리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 재래식 화장실도 아닙니다. 용변을 보는 사람은 화장실 앞에의 제법 널찍하게 고여 있는 연못에서 물을 한 두레박 퍼들고 들어가면 됩니다. 볼일이 끝나면 그 두레박의 물을 변기에 부어주면 그만입니다. 안에 사람이 있는 지 노크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화장실 앞에 두레박이 없으면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일 테니까요.

그 깔끔하고 예술적(?)이기까지 한 화장실에서 나와 나는 아무도 없는 호숫가로 가 봅니다. 파도 소리는 밀려왔다 밀려가고, 하늘에는 달이 밝은데, 하늘은 온통 깊이 모를 푸르름입니다. 그 푸르름은 어둠과 어울려 아득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달 옆에는 별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습니다.

달이 밝으면 별빛이 죽는 법인데, 남조풍정도에서는 달빛과 별빛이 서로 어울려 빛나고 있습니다. 그 아득하고 또 아득한 푸르름, 깊고 검은 푸르름 속에서 나는 목이 아프도록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내 마음까지 아득한 푸르름으로 나직하게 가라앉는 것 같았습니다.

얼하이의 아침, 새우잡이 배들이 잔잔한 호수 위에 떠 있다.
얼하이의 아침, 새우잡이 배들이 잔잔한 호수 위에 떠 있다. ⓒ 최성수
나는 오래도록, 남조풍정도 옛 집 앞에 앉아 미명의 호수와 달빛과 별빛, 그리고 밀려왔다 밀려가며 제 몸의 소리를 세상에 전하는 파도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아마 어쩌면 아주 오래전의 전생부터 오늘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이렇게 검푸른 하늘 아래 내가 놓여 있도록 약속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침이 오고, 얼하이의 물살 위로 안개가 자욱하게 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해가 뜨자 안개가 느릿느릿 걷히더니, 고깃배들이 점점이 나타납니다. 어떤 배에서는 나무를 잔뜩 내리기도 합니다. 그 풍경들이 아주 낯설고 한편으로는 언젠가 보았던 것처럼 낯익기도 합니다.

호숫가로 대나무 바구니를 멘 아주머니들이 무엇인가를 줍고 있습니다. 다가가 보니 부레 옥잠입니다. 어제 저녁까지도 없던 부레옥잠이 밤새도록 밀려온 파도를 따라 호숫가 모래밭에 제 몸을 누인 것입니다. 그 부레옥잠을 주워 거름으로 쓴다는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얼하이를 바라봅니다. 물은 속 깊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습니다. 저 호수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물을 정화하는 부레옥잠들이 있어 물이 이토록 맑은 것일까요?

새우를 잡는 고깃배들은 물 위에 떠 있고, 부레옥잠을 줍는 아주머니들이 호숫가를 걸어가는 얼하이의 아침은 말 그대로 그림과 같은 풍경입니다.

아침, 그 고깃배가 잡았다는 민물 새우로 끓인 찌개를 먹으며 나는 문득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라는 시 한 편을 떠올렸습니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나도 목계 나루가 아닌 이곳 얼하이 호숫가에서 민물 새우를 끓어 먹으며, 저 유채꽃 간질이는 바람처럼, 한 밤중 달빛 가리는 구름처럼, 물살에 제 몸 둥글게 씻는 잔돌처럼 살고 싶습니다.

옷감을 묻들이는 집 마당에 놓인 물통에 비친 하늘. 그 하늘도 얼하이를 닮았다.
옷감을 묻들이는 집 마당에 놓인 물통에 비친 하늘. 그 하늘도 얼하이를 닮았다. ⓒ 최성수
남조풍정도에서 돌아오는 길, 내 눈에는 대리의 모든 풍경들이 얼하이 호수처럼 보입니다. 백족 마을의 남염(藍染)을 하는 집에 들렀더니, 그 집 마당에도 얼하이 호수가 들어앉아 있습니다. 염색을 위해 받아놓은 물동이에 얼하이가 하늘을 담고 놓여 있습니다.

희주 백족 마을의 입구에도, 얼하이의 모양을 닮은 커다란 희주 호떡이 있습니다. 아니, 작은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시골길, 버스 안에서 마주친 대리 사람들의 둥근 얼굴도, 지나치는 시골 집 마당에 눈부시게 피어난 벚꽃 송이송이 마다에도 얼하이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희주 호떡은 단맛과 짭짤한 맛이 있다. 하나를 사면 두 세 명이 먹을 만 하다.
희주 호떡은 단맛과 짭짤한 맛이 있다. 하나를 사면 두 세 명이 먹을 만 하다. ⓒ 최성수
대리는 온통 얼하이 호수의 잔물결과 나직한 물살의 일렁임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대리의 모습을 바라보는 여행자의 마음에도 어느새 얼하이는 잔잔한 물너울로 찾아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희주 호떡을 굽는 모습. 위에 숯을 놓고 구워 더 맛있다.
희주 호떡을 굽는 모습. 위에 숯을 놓고 구워 더 맛있다. ⓒ 최성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