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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TA 비준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9일 오후 국회 앞에서 이라크파병안 통과 저지대와 합류해 국회진입을 시도하자 경찰이 살수차를 동원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
FTA 비준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9일 오후 국회 앞에서 이라크파병안 통과 저지대와 합류해 국회진입을 시도하자 경찰이 살수차를 동원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처음 우리가 여의도에 도착했을 때 농민집회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무 일찍 도착한 것이었다. 다른 회원 몇 명과 나는 의사당 앞쪽 소리 나는 곳으로 가 봤다.

농민연대 주최의 집회가 두세 시간이나 진행되는 동안 나는 연단을 오르내리는 수많은 연사들 중에 단 한 명의 정치인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수 만 명의 농민들이 모였는데 민주노동당 외에 다른 정당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이곳 여의도 이 자리.

1년 반쯤 전인 2002년 11월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때는 정몽준 후보까지 수행원을 이끌고 왔다. 노무현 후보는 물론이고 권영길 후보도 왔다. 대선을 앞두고 이들은 수 만 명의 농민들 앞에서 기염을 토했다. 나는 기억한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특유의 솔직하고 믿음직한 직설화법으로 농업공약을 내걸었다. 가장 솔깃했던 것이 농업문제를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이었다.

관계장관회의를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했을 뿐 아니라 2004년 쌀 재협상 때 관세화 유예를 기필코 관철시키겠다고 하면서 '비교우위론'에 의해 농업이 희생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하여 '역시 노무현'이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난 것이다.

어떤 보좌관이 귀띔했을까 싶었던 훌륭한(?) 공약 하나가 있었다. 농업통상 협상 때는 농민단체에서 추천하는 전문가를 꼭 포함시키겠다는 약속이었다. 지금은 모두 다 도루묵이 되어 버렸다. 한 순간 우리 귀만 즐겁게 해 준 헛약속들이었다.

농가 소득의 5% 수준인 직불소득을 20%까지 올려 주겠다길래 일본이나 미국은 50%가 넘는데 너무 인색하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오늘 노무현 후보가 약속했던 그 수준의 요구를 하는 농민들에게 돌멩이와 방패로 피를 흘리게 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고, 농민의 현안 문제인 한·칠레 협상에 대해 소신을 밝히지도 않았다. 기가 막힌 1년 3개월. 이 세월에 철저히 농락당했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는 여의도를 배신의 땅이라 이름 짓는다.

땅바닥에 나뒹구는 유인물을 보이는 대로 종류별로 수집을 했다. 나중에 시위가 거칠게 진행될 때도 열심히 주워 모은 유인물을 집에 와서 하나씩 보면서 국민들이 이런 유인물만이라도 제대로 읽어 준다면 지레 국가간 자유무역협정이 불가피하다느니 무역을 해서 먹고사는 우리나라가 WTO를 거스를 수 없다느니 하는 소릴 안할 텐데 싶었다.

알만한 사람들마저 농민의 집단이기주의로 보는가 하면 지원금을 대폭 늘이면 농민에 대한 심정적 죄스러움을 덜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생명산업인 농업이 망하면 거래되는 값으로는 도저히 따질 수 없는 가치들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글자나 귀 동냥으로는 실감이 안 날 수도 있겠다 싶어 더 안타깝고 서글펐다.

내가 여전히 서글퍼 하는 것은 사람들이 폭력과 피 흘림에 무감각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언론도 시위대도 정치인도 모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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