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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악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일 오전(한국 시간 9일 새벽)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이라크 전쟁 결정'에 대해 해명했다.

최근 이라크 무기사찰단 대표인 데이빗 케이(David Kay)가 '대량 살상무기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국내외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자, 부시는 이 논란을 조기에 진화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특히 날카로운 질문으로 정치인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유명한 팀 러서트(Tim Russert)의 인터뷰 요청은 부시에게는 그리 달가운 제안은 아니었을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인터뷰를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은, 최근 부시의 업무수행 능력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한 가운데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민주당측의 공세가 강화되면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대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언론과의 만남>의 진행자 팀 러서트(Tim Russert)
<언론과의 만남>의 진행자 팀 러서트(Tim Russert) ⓒ 강인규
앤비시(NBC)의 '언론과의 만남(Meet the Press)'의 진행자 팀 러서트는 한 시간동안 부시를 인터뷰하면서 이라크 전쟁 결정 과정 및 경제 정책의 문제점, 그리고 부시의 병역회피 혐의에 대해서 시종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더욱이 러서트는 부시가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면서 내세웠던 명분, 즉 이라크가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소유하고 있다는 주장이 그릇되거나 심지어 조작된 정보에 기반한 것이라면 이라크 전쟁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부시는 시종 "후세인은 미친 사람으로 위험한 인물이었다.", "미국에 의해 해방된 이라크는 세계의 평화에 기여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개입은 역사의 부름이었다"는 등의 논점을 벗어난 수사학으로 일관했다. 전쟁 결정 과정을 둘러싸고 확산돼 가고 있는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출연했던 부시는 도리어 국민과 언론의 분노를 자아내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뉴욕타임즈>는 다음날 사설을 통해 이런 부시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호되게 비판했다.

"전쟁의 명분이 잘못된 정보에 기초하고 있었다는 밝혀진 후 일주일만에 부시 대통령은 이에 대해 해명했지만, 그의 주장에서 설득력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에서 분명히 드러난 게 한 가지 있다면, 그의 완벽한 자기합리화 능력 뿐이었다."

<뉴욕타임즈>는 일관성 없이 계속해서 말을 바꾸는 부시의 혼란스럽고 부정직한 태도를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현 상황에서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이라크를 침공한 것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부시는 이 핵심적인 문제에 제대로 응수하려는 태도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는 사담 후세인이 '위험천만한 미친놈(dangerous madman)'이라는 주장만 되뇌었을 뿐이다. 그 '미친놈'이 대량학살 무기도 없이 미국에 어떻게 위협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은 채 말이다."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에 시종 '9·11 테러'로 답변하던 부시에 대해서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0일자 칼럼을 통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부시는 자신의 잦은 말바꾸기에 대한 비판에 대해 '발언의 맥락'을 고려하라고 주문하지만) 그 '맥락'이란 부시가 유권자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싶은 어느 한 순간을 지칭하는 것일 터이다. '나는 지금 테러리스트들이 비행기를 몰고 뛰어드는 그 험난한 시대의 대통령'이라는. 그렇다면 9·11이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시가 전쟁에 앞서 무슨 말을 했든, 그가 받은 정보기관의 보고서에 무슨 내용이 쓰여 있었든, 사담 후세인이 무기가 있었든 말든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국민들 역시 각 신문의 투고란을 통해 부시 대통령을 맹렬히 공격하고 나섰다. <뉴욕타임즈> 한 독자는 지난 9일자 신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해명? 부시는 사과를 해야 한다. '대량파괴무기'가 어디 있었단 말인가? 이라크가 9·11 테러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알케다가 이라크에서 활동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라크가 핵개발이라도 했던가? 아니다. 모든 것은 미국인들을 전쟁으로 이끌기 위한 변명이었을 뿐이다. 결국 우리가 얻은 것은 기록적인 적자와 무책임한 속임수 예산안이다. 그 거짓말은 도대체 언제나 끝이 날까?"

<워싱턴포스트>의 어떤 독자는 "부시는 자신의 모순을 인정하고 바로잡기는커녕 계속해서 새로운 모순을 보태기만 했다. 그는 미군이 이라크에서 환영받고 있다고 말한 후, 다시 말을 바꾸어 이라크의 거센 저항은 예상된 일이기에 별로 놀라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일부는 "부시 이후 세계는 더 평화로운 곳이 되었다"고 말하며 부시를 지지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부시의 인터뷰에 실망감과 분노를 표하는 내용이었다.

언론과 국민들의 이런 반응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부시는 질문 내용에 상관 없이 모든 물음에 "후세인은 위험하다"거나 "이라크의 민주주의는 진전되고 있다"는 구체성이 결여된 추상적인 주장으로 일관했으며, 그마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투성이의 답변을 내놓기 일쑤였다. 심지어 부시 스스로 "고장난 전축처럼 똑같은 말은 반복하고 싶지는 않는데…"라고 말할 정도였다.

ⓒ 강인규
러서트는 그런 부시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지난해 3월 17일 전쟁을 결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과 다른 나라에서 밝혀낸 정보를 통해 보건대, 이라크 정권은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무기를 보유해 왔고, 현재 이 가운데 상당수의 무기를 숨겨놓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다. 당신이 거짓 핑계를 통해 미국을 전쟁으로 몰고갔다는 비판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이에 대한 부시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정보를 확인했다. 그리고 우리는 후세인이 전에 무기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말은 그가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가 자살폭탄공격을 지원하고, 테러집단을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위험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내가 전쟁을 개시하기 전에 사용했던 정보다. …사담 후세인이 무기를 갖는다면 아주 위험하다. 후세인이 무기를 만들 능력이 있다면 위험하다. 그는 위험한 세계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인물이었다.

미국이 그냥 앉아서 미친 사람의 선의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위협을 느낄 때 그 위협이 눈 앞에 다가오기 전에 막는 것이 중요하다. 눈 앞에 닥치면 너무 늦다. 특히 이런 새로운 종류의 전쟁에서는 너무 늦다. 그래서 전쟁을 결정했다."


"후세인이 대량파괴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확고하고 분명한 증거 없이 선제공격을 할 수 있느냐"는 러서트의 질문에 부시는 이렇게 대답했다.

"독재자가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확고한 증거'라는 것이 존재하기 어렵다. 내가 당시 손에 넣은 최상의 정보를 통해서 보았을 때, 후세인은 무기를 가진 것이 분명했다."

러서트는 "정보가 오류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만일 앞으로 당신이 북한이나 이란이 핵개발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또 다시 공격을 개시하려 한다면 미국이나 세계가 이렇게 요구하고 나설 것이다. '그 전에 우선 분명한 증거를 보여주시오'라고."

부시는 이전과 동일한 답변을 되풀이했다.

"나와 내 동료들은 당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분석했고, 그 결과 후세인이 분명히 미국의 위협이라고 나왔다. 또 다시 반복하게 되지만, 당신이 내 말의 맥락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다시 이야기해야겠다.

후세인은 무기를 사용한 적이 있다. 그는 무기를 생산한 적이 있다. 그는 자살특공대를 길러서 이스라엘에 보냈다. 그는 테러조직과 연계되어 있었다. 바꾸어 말하면, 이 모든 요소들은 내게 분명한 결론을 도출하게 했다. 후세인이 위협이라는 것."


러서트가 '럼스펠드는 미군이 이라크에서 해방군으로 환영받을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실제로 일 년이 지난 후 상황은 매우 어렵게 되지 않았느냐고 묻자, 부시는 "미군이 이라크에서 실제로 환영받고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러서트로부터 "이라크에서 격렬한 저항에 놀라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자 부시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놀라지 않는다. 내가 놀라지 않는 이유는 '자유롭게 된 이라크'가 테러와의 전쟁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아는 사람이 이라크에도 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유와 민주주의가 장기적으로 테러활동에 장애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이라크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의 발전을 결사적으로 막으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자유사회란 대량학살무기를 개발해서 세계를 협박하지 않는 사회를 말한다."


ⓒ 강인규
러서트는 "미군이 소위 '국가재건(nation-building)'에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2000년에 부시가 말했던 것을 상기시키며, 왜 당시 주장과 달리 미군이 이라크 국가재건에 투입되었느냐고 묻자, 부시는 이렇게 대답했다.

"비록 미군이 국가재건에 참여하고는 있지만, 동시에 미군은 이라크인들이 국가재건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싸워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뉴욕타임즈>의 사설은 부시의 이 발언에 대해 "한 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simply silly)"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라크 내에 대량파괴무기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현재, 미군 530명이 사망하고 3000명이 부상당하는 희생을 무릅쓰고까지 후세인을 제거한 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부시는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답변했다.

"그 많은 희생자를 무릅쓰면서까지 대량파괴 무기도 갖지 않은 후세인을 체포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부시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 많은 희생자를 무릅쓰면서까지 대량파괴 무기도 갖지 않은 후세인을 체포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부시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 강인규
"모든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우리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은 누구나 칭찬받을 자격이 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후세인은 위험한 사람이다. 그는 적어도 무기를 만들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전사한 병사의 부모를 만나는 자리에서 무기조사단의 데이비드 케이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 면에서 이라크는 생각보다 위험한 곳이었다'고 말이다. 우리들은 미국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들과 싸우고 있는 중이고, 젊은이들에게 이 싸움에 헌신할 것을 부탁했다.

자유로운 이라크는 세계를 바꿀 것이다. 지금은 역사적인 순간이다. 자유 이라크는 우리의 어린이들이 더 안전한 세계에서 자랄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왜냐하면 중동은 증오와 폭력을 통해 살인마들을 키우는 곳이기 때문이다."

러서트는 이후 부시행정부 이래로 악화된 경제상황을 지적한 후, 왜 미국 국민이 부시를 다시 선택해야 하는지를 말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서 부시는 "경제는 나의 행정부가 들어설 때 이미 침체기에 들어서 있었다"고 주장하며, "중산층 위주의 세금감면정책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테니 두고 보라"고 말했다.

"혹시 재선에 실패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부시는 "실패를 염두에 두고 정치를 하지는 않는다"고 밝혔으나, 그의 표정은 그다지 밝아보이지 않았다.

인터뷰 이후 <뉴욕타임즈>는 부시의 '해명'에 대해서 논평하면서, 잘 못된 정보가 나라를 전쟁으로 몰고갔을 수도 있다는 사실보다 국민들에게 더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게 한 것은 부시의 발언이었다고 지적했다. 그 신문은 다음과 같이 말을 맺었다.

"지도자가 늘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과, 미국이 그런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테러의 상처 때문에 위험 가능성에 과민반응하는 지도자는 곤란하다.

이제 선거철이 되면, 스스로를 '전쟁 대통령(war president)'이라고 부르는 부시 대통령은 자신이 실제의 위협과 '거짓경보'를 구분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 앞에 입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중대 사안에 대해 국민들에게 진실을 말할 용기가 있는 사람인지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부시의 인터뷰는 어떤 면에서도 큰 희망을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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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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