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을 통틀어 17대 총선 출마자를 결정하는 최초의 경선에서 여성후보가 남성후보를 압도적인 표 차로 누르고 당선, 여성 공천 신청자들의 지역구 진출에 청신호가 켜졌다.
8일 경기 안성 시민회관에서 진행된 열린우리당 총선 출마자 선정을 위한 경선에서 고 심규섭 민주당 의원의 부인 김선미(43) 후보가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조직위 부위원장을 지낸 홍석완(42) 후보를 216표대 91표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누르고 당선돼 경기 안성 지역구의 단독 후보로 결정됐다.
김 후보는 ‘경선시 여성에게 득표수의 20%를 가산한다’는 열린우리당 당규에 따라 가산점을 얻기도 했으나 가산을 하지 않은 득표수(180표)도 홍 후보가 얻은 득표수를 크게 웃돌았다.
우리나라 정당사상 첫 완전개방형 국민참여경선 방식으로 치러진 이번 경선은 17대 총선을 앞둔 최초의 투표였다는 점, 또 첫 성별 대결이란 점 등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전체 선거인단 559명의 48%인 271명이 투표에 참여했으며 최근의 정치개혁 논의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는 듯 인근 주민 500여 명이 참석해 3시간 남짓 진행된 경선 과정을 지켜보았다.
김 후보는 2002년 1월 작고한 남편 심규섭 민주당 의원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같은 해 8월, 보궐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다. 이후 출마를 선언할 때마다 ‘남편의 후광을 입었다’는 평을 듣기도 했으나 이번 경선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됨으로써 남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재기에 성공했음을 입증했다.
김 후보는 “소외된 계층, 여성이 그들의 대변자로 첫 선택된 것에 감사드린다”며 “열린우리당 후보로서 17대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17대 총선을 70여일 앞둔 지난 4일 ‘17대 총선을 위한 여성연대’가 공천부적격 반여성후보 8명의 명단을 발표하며 낙천낙선운동에 돌입했다.
정당사상 첫 완전개방형 국민참여경선 의의 두배
김선미 후보는 당선 소감에서 “소외된 계층, 여성이 그들의 대변자로 첫 선택된 것에 감사드린다”며 “이제 전쟁이 시작됐다. 열린우리당 후보로서 17대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홍 후보는 “경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면서 “4·15 총선에서 김선미 후보의 당선을 위해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경선이 치러진 안성 시민회관에는 800여 명의 시민과 당원들이 모여 17대 총선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경선을 주도한 열린우리당 선거관리위원회의 김수영(40)씨는 “예상보다 주민 참여율이 높아 놀랐다”며 “이번 경선에 참여한 선거인단은 당원 50%, 지역주민 50%로 구성됐다”고 밝혔다. 김씨는 “공정한 경선을 치르기 위해 안성지역주민들의 전화번호부에서 무작위로 추첨을 통해 선거인단을 선정하고 참여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를 수천 통했다”고 덧붙였다.
8살 된 아들을 데리고 투표장을 찾은 김인순(34·주부)씨는 “일주일 전에 국민참여 경선이 있으니 참여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행사장을 찾았다”면서 “오늘 경선에서 선출된 후보를 끝까지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안성여중에서 국어를 가르친다는 최상천(49·교사)씨는 “전화를 받고 정치개혁을 바라는 마음으로 참석했다”면서 “두 후보가 연설 도중 상대방을 비방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밝힌 점이 가장 좋았다”고 전했다.
외손녀의 돌잔치에 가는 대신 시민회관을 찾았다는 마종성(71·농사)씨는 “평생 당에 가입한 적이 없지만 이런 행사가 있다는 연락을 받으니 참석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면서 “정치개혁을 위해 안성부터 물갈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경선에서 김 후보가 열린우리당의 안성 지역 후보로 선출됨에 따라 지난 8일 현재 17대 총선에서 공천이 확정된 열린우리당의 여성후보는 이미경 전 의원(서울시 은평갑), 김희선 의원(서울시 동대문갑)을 포함해 3명으로 늘어났다.
| | “반드시 승리해 더 큰 행복 돌려드릴 것” | | | [인터뷰] 열린우리당 경기 안성 후보 경선 압승 김선미 후보 | | | | “기호 1번 김선미 후보 216표 득표”란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흐른 순간, 맨 앞줄에 앉아 있던 김선미 후보는 벌떡 일어나 두 손을 치켜들고 환호하는 주민들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때 갑자기 흰색 파커를 입은 남자아이가 뛰어나와 김 후보의 품에 안겨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김 후보는 흐느끼는 아들을 두 팔로 가슴에 안은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후 축하 악수를 청하는 사람들이 물 밀 듯이 밀려왔지만 그 순간은 잠시 정지된 듯 했다.
마침내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연단으로 올라선 김 후보는 “여러분에게 행복을 주겠다고 공약했는데, 오늘 제가 더 큰 행복을 얻었다”면서 “이제 진짜 전쟁이 시작됐다. 반드시 총선에서 승리해 여러분에게 더 큰 행복을 돌려드리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후보는 2002년 1월 작고한 심규섭 민주당 의원의 부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심 의원은 지난 16대 총선에서 안성지역에서만 국회의원에 연속 세 번이나 당선되며 굳건한 아성을 쌓았던 이해구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민주당 후보로 당선돼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국회의원 취임 1년 6개월만에 세상을 달리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남편의 죽음 이후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선 김 후보는 2002년 8월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남편대신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보궐선거에 재도전한 당시 이해구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그 뒤 김 후보는 지역구를 다지며 재기의 기회를 노렸다. 이번 경선은 김 후보의 재기를 받쳐주는 디딤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는 경선에서 승리했을 때의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아빠(고 심규섭 의원)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면서 “경선 준비를 하면서 여성으로서 겪은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제 모두 털어버리고 정치개혁과 생활정치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뜻을 받들어 총선 승리를 위해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지난달 맑은여성정치네트워크가 선정한 101인 여성 후보 중 한 사람이며 숙명여대에서 약학을 전공한 약사이기도 하다. 새천년민주당 안성시지구당 선거대책위원장 상임고문 중앙위원을 지냈고 국민참여운동본부 본부장, 안성청소년지도자연합회 부인회장을 역임했다. / 임현선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