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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33세의 팡세>
책 <33세의 팡세> ⓒ 문학사상사
"30대는 대낮의 나이이다. 아침과 저녁 사이에 있는 문지방 나이이다. 태양이 정수리에 와 있는 시간으로 귀가 멍멍해지는 그런 순간들이다. 어쩌면 움직임이 정지되거나 사물들이 까무러치는 절정의 나이이다.

젊음의 이쪽과 늙음의 저쪽 한가운데 쳐져 있는 유리벽, 김승희의 <33세의 팡세>는 그 경계의 벽을 부순다. 경쾌하면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유리 깨지는 불안한 소리, 찔리면 피가 흐를 것 같은 유리 깨지는 소리, 시간의 외침 소리가 들린다." - 이어령의 추천의 말에서


이 책은 시인이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승희씨가 30대에 쓴 자전적 에세이집이다. 초판이 발간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그 문학적 가치를 발견한 문학사상사에서 2002년에 새롭게 재편하여 출판하였다.

인생에서 30대란 질곡과 열정과 고통의 과거를 되짚어 보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어느 누가 10대와 20대의 방황을 경험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과거 이야기는 독자의 방황이기도 하고 작가의 방황이기도 하다.

시인으로서의 문학적 자질은 김승희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녀의 강렬한 첫 기억은 바로 불이 나는 풍경인데, 그는 불을 보면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그녀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원하는 건 행복이 아니라 강렬하게 집중된 삶을 사는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공중곡예를 하는 여자의 슬픈 눈처럼, 불타는 이층집 계단으로 뛰어드는 남자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피를 주체할 수 없는 그녀의 불꽃은 문학적 열정으로 연결된다.

그녀의 비범성은 결국 타자와의 부조화로 인한 고통을 낳는다. 그녀에게 있어 최초의 타인이란 유치원의 친구들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타인들에 대한 그녀의 최초 경험이자 곧 실패에 관한 경험이었다.

결코 동화될 수 없는 타자와 나의 거리 속에서 그녀는 타인에 대한 부러움과 관계에 대한 실패감을 경험한다. 그녀는 그네를 잘 타는 아이들이 부러웠고 자신도 그녀들처럼 그네를 잘 타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 틈에 낄 수가 없었다.

이와 같은 어린 시절의 패배감은 학창 시절까지 그녀를 괴롭힌다. 왼손과 오른손이 어우러져 음악을 연주해야 하는 피아노 반에서, 그녀는 그 조화로운 손놀림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쫓겨난다. 지방에서 서울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바람에 아이들과는 동떨어진 세계 속에 갇혀 살게 된 것 또한 다른 이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체험이다.

이러한 체험들은 10대의 사춘기 그녀를 무한한 고독으로 빠뜨린다. 부모의 부재 속에 동생과 함께 자취 생활을 한다는 것은 10대의 어린 소녀에게 있어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 끝없는 우울과 고독 속에서 그녀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고 문학 세계 속에 빠져 지내기도 하면서 방황과 혼란의 시기를 보낸다.

그리고는 허무주의적 사고를 가진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깊이 심취한다. 인생은 악이며, 세계는 고통의 공간이라고 이야기하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은 오히려 김승희에게 삶의 희망과 의욕을 불러 넣는다. 최악의 염세적 사고는 반대로 그녀에게 위안을 주고, 살아가는 힘을 준 것이다.

대학에 진학했다고 해서 그녀의 기나긴 방황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그토록 열망하던 자유를 얻었지만 그 자유가 즐겁지 않은 대학 시절.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키츠나 예이츠와 같은 낭만주의 시에 심취하게 되고, 자신의 마음 속에 예술적 울림과 문학을 향한 열망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우주의 배꼽과 같은 하나의 시원(始原)의 시간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나에게는 열아홉 살, 아카시아 향기 풍기던 주홍빛 교실에서 최초로 문학 예술의 참 아름다움에 넋을 잃던 그 시간이 아니었을까."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고통을 맛보고, 또 다른 이를 그와 같은 고통 속에 존재하도록 하면서 그녀는 보다 성숙된 자아를 찾아간다. 그리고는 기나긴 방황과 배회를 중단하고 그 배회의 힘을 모아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 '무언가'가 바로 문학에 대한 공부와 시 창작이다. 그녀는 "시란 바로 그런 난간의 언어 같은 것"이라고 표현한다.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붙잡은 난간, 그녀에게 있어 시는 그녀의 모든 것이며 마음의 위안이다.

책의 마지막에서 그녀는 "인간에게 자기 보호 본능이 있어서 어떤 불행일지라도 그것을 옹호하고 미화시키려는 본능이 있다"고 전한다. 그녀가 겪은 불행의 끝자락과 그것에 대한 미화는 곧 그녀의 시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 에세이가 되어 독자의 가슴에 커다란 불꽃을 남겼다. 비록 그것이 오래된 사진첩처럼 머나먼 과거 이야기라 할지라도, 10대와 20대의 기나긴 방황을 되짚어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들.

그 이야기 속에는 작가의 방황만이 아니라 독자의 방황도 함께 존재한다. 그리고 그 방황을 바라보는 30대의 시선도 공존할 것이다. 독자들 또한 작가처럼 '자신이 붙들 수 있는 희망의 난간'을 어디에선가 찾는다면, 이 과거 이야기는 더욱 가치 있지 않을까? 비록 그것이 시와 같은 문학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33세의 팡세

김승희 지음, 문학사상사(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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