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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11시 이승연씨는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을 방문해 할머니들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눈물로 용서를 구했지만 할머니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17일 오전 11시 이승연씨는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을 방문해 할머니들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눈물로 용서를 구했지만 할머니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이승연씨.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이승연씨. ⓒ 오마이뉴스 권우성

[2신 : 17일 오후 3시20분]

정대협에서도 무릎 꿇은 이승연... 할머니들 "사진 없애는거 책임질수 있지?"


이승연씨, 18일 수요집회 참가예정

17일 오전과 오후에 걸쳐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을 만나 용서를 구했던 탤런트 이승연씨가 내일(18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에 참가하겠다고 밝혔다.

이씨의 매니저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오늘 할머니들이 요구한 사진과 필름 소각은 어찌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네티앙측이 사진과 필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문제"라며 "다만 내일 수요집회에 나가서 할머니들께 용서를 구하고 모임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매우 초췌한 모습으로 할머니들을 만났던 이씨는 오후 5시30분 현재 집으로 이동 중이고 휴식을 취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오늘 일정은 없다, 지금까지 별다른 말씀을 못하고 있다"며 "더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17일 오전 나눔의 집에 들러 읍소했던 탤런트 이승연(36)씨는 오후에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방문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의 눈물을 흘렸다.

오후 1시 서대문구 충정로의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사무실에서는 김윤심(76), 황금주(85), 이용수(76), 길원옥(77) 할머니가 굳은 얼굴로 앉아있었다. 20여분 후 화장기 없는 얼굴로 검은 바지와 긴 코트를 입은 이씨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이씨는 들어오자마자 할머니들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쉽사리 마음을 풀지 않았다.

이용수 할머니는 "13년 동안 매주 수요일에 일본 대사관 앞에서 집회 한 것은 아느냐, 거기는 한번 와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느 날 갑자기 관심이 생겨 그럴 수 있느냐"며 이씨를 호되게 나무랐다.

"15살에 자다가 일본군한테 끌려가 평생 남자를 모르고 살았다. 왜 우리를 악랄한 할머니로 만드나."

할머니들은 사진을 없애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씨는 그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을 하지 않은 채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겠습니다"라고만 답했다.

이 할머니는 울먹이며 이씨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없애는 거 책임지지요?"라고 거듭 확인했다. 무릎 꿇은 이씨를 일으켜 세운 할머니는 이씨의 눈물을 닦아주며 "약속해 달라"고 간절하게 말했다. 이씨는 연신 "잘못했습니다, 제가 부족했습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황금주 할머니도 "사진을 없애는 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이라며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해야한다, 다른 사람이 이런 짓 한다고 해도 자네가 말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할머니들, 다큐영상·증언집·사진집 등 건네

할머니들은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에 관한 다큐영상 <귀향>,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와 할머니들의 증언집, 사진집 등 관련 자료를 이씨에게 주면서 "잘 보고 할머니들에 대해 공부하라"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직접 책표지에 할머니의 이름을 써주며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책과 영상 테잎을 받은 이씨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이 할머니가 다가가 이씨를 안으며 다독이며 "놀러와요"라고 말했다. 이씨는 고개를 숙인 채 20여분만에 바로 사무실을 떠났다.

할머니들은 "용서해야지요", "죄가 밉지 사람은 밉지 않다"며 이씨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업을 추진한 회사에 대해서는 "애만 나쁜 게 아니다, 만든 놈들 반 죽여놔야 된다", "회사측의 사과와 폐기 약속을 받겠다"며 여전히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정대협 측은 현재 황금주 할머니와 정대협, 여성민우회의 이름으로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해 놓은 상태다. 신혜수 정대협 대표는 "네띠앙 측에 내일(18일) 오전 10시까지 사진과 동영상 폐기에 대한 서면대답을 요구해 놓았다"며 이후 상황에 대해서 변호사와 함께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신 : 17일 낮 12시38분]

"보는 앞에서 사진과 필름 다 태우라"... "예, 알겠습니다"
나눔의 집 뜰에서 무릎 꿇은 이승연


나눔의 집은...

▲ 오전 11시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 도착한 이승연씨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할머니들을 기다리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나눔의 집'은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에 의해 성적 희생을 강요당했던 생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이 모여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다.

1992년 6월에 결성된 나눔의 집 건립추진위원회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자는 취지로 불교계 및 사회 각계에 모금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92년 10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처음으로 나눔의 집 개소식을 갖게 되었다.

이후 명륜동·혜화동을 거쳐 1995년 12월 조영자님께서 기증해 주신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소재 650여평의 대지에 180여 평(생활관 두 동과 법당 및 수련관으로 사용하는 한 동)의 노인 주거복지시설을 신축하였다. 현재는 850여평의 대지에 98년개관한 역사관을 포함 300여평의 건물이 있다.

현재 나눔의 집에는 12명의 할머니들이 거주하고 있다.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주관하는 일본대사관 앞에서의 수요시위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만행을 폭로하고 일본이 과거사에 대하여 진정으로 참회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자료 : 나눔의 집 홈페이지(www.nanum.org)
"사진 혼자서 찍지 않은 거 다 알아. 그 사람들에게 사진, 필름 다 내놓으라고 해. 다 가지고 와서 우리 보는 앞에서 태워라. 그렇지 않으면 너 혼자 와서 무릎꿇는다고 용서 못한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은 단호했다. 위안부 누드집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탤런트 이승연(36)씨가 직접 할머니들을 찾아 무릎을 꿇은 채 눈물로 용서를 구했지만 할머니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씨는 17일 오전 11시 화장기 없는 얼굴로 검은 바지에 하얀색 블라우스, 검정 코트를 입고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나눔의 집'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대기해 있던 100여명의 취재진들은 일제히 플래시를 터뜨렸고 이씨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채 나눔의 집 마당에 무릎을 꿇었다.

이씨의 등장을 본 이옥선(78) 할머니가 가장 먼저 집밖으로 나와 이씨에게 다가갔다. 이씨는 이 할머니에게 절을 하듯 고개를 숙였다. 이 할머니는 허리를 굽혀 이씨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니가 혼자 한거 아니지. 사진 다 가지고 와서 다 내놔. 그래야 해."
"할머니 잘못했습니다.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상처 입혀드려 죄송합니다."

다른 할머니들도 차례로 밖으로 나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할머니는 모두 8분. 이씨는 고개를 숙이고 연신 "잘못했습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앉아 있으라고 너 오라고 한 거 아니다."
"이승연씨, 우리말 잘 들어. 우리 왜 잠도 못 자고 밥도 못먹고 그랬는지 알아. 부모, 자식, 누구에게 말 못하는 아픔을 이승연씨가 나서서 책임져줄 수 없어."
"탤런트나 하지 어째서 나쁜 짓 했나? 그건 할머니를 이해한 게 아니야."

할머니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간다. 그러는 가운데 한 할머니가 미리 준비한 종이를 꺼내 이씨에게 들려줬다.

"들어라. 이승연씨는 모든 역사 앞에 회개해야 한다. 공식적으로 사죄하라. 역사를 똑바로 알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할머니들에게 또 충격을 주지 말고 사죄하며 보살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기자들이 있는데서 크게 말해서 기자들도 듣고 우리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이승연씨가 반성하는 모습을 보면 용서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한테 이 아픔을 말해야 하나. 하나님한테 말하면 되나? 부처님에게 말하면 되나? 이승연씨에게 말하나? 기자들에게 말하나? 우리가 피눈물 흘리는 거 누가 알까. 이승연씨!"

이씨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이승연씨가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하고 있다.
이승연씨가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정말 모르고 했어요. 죄송해요. 다시는 할머니께 상처입히지 않도록 노력할께요."

할머니들이 계속해서 필름과 사진을 가져올 것을 요구하자 이씨는 11시20분께 "예, 알겠습니다"라고 몸을 떨면서 일어났다. 할머니들에게 인사를 한 뒤 곧바로 타고 왔던 차에 올라 나눔의 집을 떠났다.

한편 이날 모인 취재진들은 100여명에 달했다. 나눔의 집이 생긴 뒤 이렇게 많은 기자들이 몰린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취재진들은 이씨가 등장하자 약속했던 포토라인도 무너뜨리고 취재경쟁을 벌였다. 만남을 끝내고 다시 차로 갈 때도 수십명의 취재진이 이씨를 둘러싼 채 놔주지 않는 등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할머니들은 전날 이씨의 나눔의 집 방문 소식을 접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잠도 못 이뤘다고 한다. 이씨가 도착하기 전 창문을 통해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을 바라보던 김순덕(83) 할머니는 "잠을 어떻게 잘 수 있겠어"라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이씨는 나눔의 집을 나선 뒤 곧바로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실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네티즌들, 일본군 '위안부' 명예의 전당 건립 1억 모금운동 시작
"이제는 한국의 '홀로코스트'를 세우자"

'일본군 위안부 영상화보집'에 대한 네티즌들의 온라인시위는 이승연씨측의 제작중단과 사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3일만에 가입자수가 4만명이 넘어선 '안티이승연(cafe.daum.net/antilee)' 사이트 회원들은 16일 일본군 성노예 명예와 인권의 전당 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현재 안티이승연 사이트에는 "네티즌들이 해냅시다, 네티즌 1억 모금운동"이라는 제목의 팝업창이 떠 있다. 캠페인의 취지는 다음과 같다.

"할머님, 그 분들이 상처를 받았습니다. 살아 생전에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20억이면 그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5만명이 천원이면 5천만원! 5만명이 만원이면 5억입니다. 1억도 못하면... 우리가 이승연과 다를 게 무엇이겠습니까?"

한 네티즌은 "홀로코스트를 통해 유태인 학살의 참상을 알렸듯 일본군 '위안부'의 참상을 담아 우리의 아픈 역사에도 목소리를 내자"며 "(기념과 건립은) 피해자들을 향해 국민의 한없는 애정과 존경의 마음"이라고 네티즌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한편 정신대대책협의회(www.womenandwar.net)를 중심으로 지난해 12월 '일본군 성노예 명예와 인권의 전당' 건립사업이 발족한 바 있다. 추진위원장은 윤정옥·이효재 선생이 맡고 있으며 이달말로 구체적인 실행을 위한 집행위원회가 꾸려질 예정이다.

기념관 건립 사업은 황금주 할머니(85)가 500만원을 쾌척하는 등 133명 피해자 할머니들이 먼저 나서서 모금운동에 불을 지폈다. 여기에 정대협은 일반인들을 상대로 약정서를 받는 등 모금운동을 펼쳐왔다(문의: 02-365-4016).

정대협의 한 관계자는 "관련 법률(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관 사업 등에 관한 법률)이 있기는 하지만 부지도 확보하지 못했고 아직 정부로부터 지원계획에 대해서도 들은 바 없다"고 밝혔다. / 박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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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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