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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도협 가는 길에서 바라본 옥룡설산. 설산이 눈부시다.
호도협 가는 길에서 바라본 옥룡설산. 설산이 눈부시다. ⓒ 최성수
여강에서의 일정이 빠듯해 호도협 트래킹을 할까, 아니면 루구호를 갔다 올까 선택해야 했습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모레 루구호로 가기로 하고 이틀 동안 옥룡설산과 호도협 등 여강 부근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첫날 우리 여행지는 호도협과 장강제일만, 철홍교, 나시해입니다. 굽이굽이 산길을 넘어 찾아간 호도협에서 기대가 무너졌습니다. 물론 트래킹 코스가 아니라서 느낌이 다르긴 하겠지만, 물의 양도 생각보다 적었고,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물살의 빠르기도 밋밋했습니다. 어머니 고향인 강원도 평창 개수의 물보다도 못하다는 느낌, 거기에 주변 풍광도 우리 나라 산들처럼 아기자기하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황무지에 위압적입니다.

호도협의 바위. 오랜 물살에 깎인 바위 문양이 기기묘묘하다.
호도협의 바위. 오랜 물살에 깎인 바위 문양이 기기묘묘하다. ⓒ 최성수
호도협에 갔다 온 사람들이 모두들 트래킹을 추천하는 것을 보니 트래킹은 또 다른가 봅니다. 그래서 트래킹을 하기 위해 여강에 다시 한 번 와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진정한 여행자는 모든 것을 다 보며 돌아다니는 존재는 아니겠지요. 그저 상황에 따라, 발길에 따라 보고 느끼는 것이 여행의 참맛일 것입니다. 호도협 트래킹을 못한 것은 여강에 다시 오겠다는 뒷기약이라 생각하고 미련을 접습니다.

호도협 초입을 지나다 점심을 먹는데, 농가 식당 앞 물가를 염전처럼 막아 놓은 곳이 보였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빨래를 하고 있습니다. 스적스적 걸어 내려가 보니 물이 흙빛입니다. 저런 물에도 빨래가 될까 하고 손을 담가 보니 물이 따뜻합니다.

우리를 태우고 온 기사가 웃으며 온천이라고 알려줍니다. 그가 가리키는 옆을 보니, 움막 같은 집이 물가에 서 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세 명의 남자들이 온천욕을 하는 중입니다.

호도협 입구 농가식당 앞의 온천. 물에 제법 따뜻하다.
호도협 입구 농가식당 앞의 온천. 물에 제법 따뜻하다. ⓒ 최성수
중국인의 온전한 나신을 보았다고 웃으며 돌아서는데, 하늘 저편으로 옥룡설산과 하바설산이 눈부신 머리를 하고 서 있습니다. 엊그제 내린 비가 산 위에서는 눈이 되어 저렇게 여행자의 마음을 시리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강제일만의 물길. 유연하게 휘어도는 물길이 아름답다.
장강제일만의 물길. 유연하게 휘어도는 물길이 아름답다. ⓒ 최성수
장강 제일만을 거쳐 찾아간 곳은 석고(石鼓)입니다. 돌로 만든 커다란 북이 있어 그런 이름이 붙은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낡은 현수교 하나가 세월의 무게를 쇠 줄에 매달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다리 이름은 철홍교(鐵虹橋). 쇠로 만든 무지개 다리라는 뜻입니다.

이 길은 예전에 인도, 라사, 서장으로 가는 통로였습니다. 이 다리를 넘어 서역으로 갔던 무수한 사람과 말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릴 듯한데, 다리는 말없이 흐린 강물 위에 떠 있을 뿐입니다. 다리 건너편은 이제 야채밭으로 변해 등짐을 진 농부들만 무심하게 지나다니고, 외지에서 온 나그네들이 새삼 의미를 부여하며 사진을 찍는다, 안내를 한다. 떠들어댑니다. 하지만 다리 앞에 의자를 놓고 앉은 마을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예전 서역으로 갔던 사람 보듯 바라보고 있습니다.

역사란 세월의 숱한 더께로 켜켜이 쌓아 올린 저 다리와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저 바라보며 흘려 지나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에 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철홍교. 세월의 더께를 쓴 채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다.
철홍교. 세월의 더께를 쓴 채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다. ⓒ 최성수
만리 장성을 쌓고, 병마용을 만들었던 진시황은 그 일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보러 찾아옵니다. 목숨과 맞바꾼 유적이 관광 상품이 되어 후손들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면, 역사란 무엇이고 문화 유적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슴에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철홍교는 유명하지도 않고 거대하지도 않은 그저 단순한 다리일 뿐입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도 않는 유적, 그래서 역사의 한 켠에 빗겨나 있는 쓸쓸한 유물쯤이 되어 보입니다. 그런 느낌으로 바라보는 철홍교는 한가롭습니다. 그 한가로움이야말로 국외자의 시선이겠지요.

돌아오는 길, 나시해에 들릅니다. 꽤 넓은 호수지만, 대리의 거대한 얼하이의 호수를 이미 보아 버린 우리에게는 작은 연못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일몰의 나시해에는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호수 안 고사목에 앉아 저녁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가마우지도 정지한 풍경처럼 나직합니다.

나시해의 일몰. 마음 저절로 잔잔해 진다.
나시해의 일몰. 마음 저절로 잔잔해 진다. ⓒ 최성수
관광객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곳, 그래서 오직 우리 일행만을 위해 기다려준 것 같은 나시해의 어둑한 출렁임을 뒤로 하고 돌아오면서, 나는 아주 오래도록 나시해의 일몰을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피곤했던 탓인지, 꿈도 없이 잠을 자고나니 어느새 아침입니다. 문 밖으로 나오니, 숙소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옥룡설산이 어제보다 더 눈부십니다.

오늘은 옥룡설산을 가는 날입니다. 여강에 오는 날 눈이 많이 와서 옥룡설산의 가장 높은 곳까지는 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저 운삼평만 찾기로 합니다.

운삼평 아래 백수하. 설산이 물에 비쳐 옥빛으로 반짝인다.
운삼평 아래 백수하. 설산이 물에 비쳐 옥빛으로 반짝인다. ⓒ 최성수
운삼평(雲杉坪)은 구름과 삼나무의 땅입니다. 제법 미끄러운 눈길이 몇 군데 있는 산길을 지나 운삼평으로 오르는 리프트를 타러 갑니다. 입장권을 끊었는데도 리프트를 타는 곳의 쇠 칸막이 문은 잠겨 있습니다.

사람들은 문을 열라는 소리도 하지 않고 그저 쇠 칸막이를 넘어 리프트를 타러 갑니다. 아저씨도 아주머니도, 아이들도 아무 소리 없이 쇠 칸막이를 풀쩍풀쩍 뛰어 넘어 리프트를 탑니다. 직원들은 그런 사람들을 바라볼 뿐, 쇠 문을 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쇠 칸막이를 넘어 리프트를 타면서, 다시 한 번 중국의 사람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배려(?)에 웃음을 머금고 맙니다.

운삼평은 옥룡설산을 조금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 뿐,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곳도 아닙니다. 그저 해발 3500m나 되는 곳에 빽빽하게 들어선 삼나무 숲이 신기한 정도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들린 백수하(白水河)도 맑은 물과 그 물에 비친 설산의 풍경이 아름다울 뿐, 야크를 타라며 붙잡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시끄러운 상업 관광지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전에 어느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이 백수하를 방영한 적이 있는데 하도 아름다워 언젠가는 꼭 가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가 보니 실망만 가득합니다. 방송의 과장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됩니다.

동파신원. 나시족 동파교의 사원이다.
동파신원. 나시족 동파교의 사원이다. ⓒ 최성수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동파신원입니다. 그저 구경삼아 가 본다고 들렀지만, 그곳은 의외로 가 볼 만한 곳입니다. 우리로 치면 장승 마을 혹은 성황당 같은 곳입니다. 아니, 나시족의 전통 종교인 동파교의 사원이라고 하는 게 더 옳을지 모릅니다.

나시족이 운남 지역에 뿌리 내리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천년 전입니다. 감숙성에서 이곳으로 온 나시족은 여강이라는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그 외곽에 종교적 성소를 마련한 것입니다. 이곳 동파 신원이 만들어진 것은 1300년 전, 그리고 관광객을 위해 신원을 개방한 것은 4, 5년 전이라고 합니다. 원래 동파 신원에는 약 1만여개의 장승들이 있었는데, 문화 대혁명을 거치며 상당수가 훼손되었답니다. 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장승들도 헤일 수 없을 정도입니다.

동파신원을 지키고 있는 대제사장.
동파신원을 지키고 있는 대제사장. ⓒ 최성수
장승들은 신원 입구에서 양쪽으로 나뉘어 배치되어 있는데, 왼편은 음의 세계, 오른편은 양의 세계입니다. 동파교는 난생 신화를 지니고 있어서, 음의 지역에는 검은 알이, 양의 지역에는 흰 알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뉘어진 사이로 바닥에 동파교의 교리라고 할 만한 것들이 약 200m 정도에 걸쳐 그림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으로 구성된 그 길은 지옥계, 인간계, 천계 이렇게 셋으로 나뉩니다. 그 길에 그려진 그림을 천로도(天路圖)라고 합니다. 인간 세계에서 어떠한 삶을 사느냐에 따라 지옥의 세계로 가기도 하고, 하늘의 세계에 가기도 한다는 것은 모든 종교의 기본 축과 같습니다.

뚱뚱할수록 미인이라든가, 인간의 손을 하고 새의 발을 한 수호신의 모습 따위는 동파교가 원시적 종교의 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들이 농경과 풍요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파신원의 장승. 표정이 순박하다.
동파신원의 장승. 표정이 순박하다. ⓒ 최성수
특히 음계인 왼편쪽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인간계의 입구에 큰 나무가 머리 위를 가로지르는데, 거기 "견목저두(見木低頭)"라는 글이 보입니다. 나무를 보면 머리를 숙이라는 뜻인데, 나무는 동파교에서 여자를 의미합니다. 여자에게 고개를 숙이라는 뜻은 나시족이 모계 사회의 전통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모계 사회를 그대로 지니고 있는 모수족도 나시족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동파 신원에서 모계 사회의 뿌리를 보는 느낌이 듭니다. 최고의 신인 태양신도 여신인 것을 보면 동파교는 모계사회의 종교였다는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동파는 지혜가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 동파의 말을 전달하는 문자가 동파문자입니다. 그러니 여강 고성 안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동파 문자는 지혜의 언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동파 신원을 나오는 길, 정식 복장을 갖춰 입은 동파교의 제사장이 손을 번쩍 들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이 왠지 애처롭고 쓸쓸해 보이는 것은, 속도전에 떠밀리고 상업주의에 묻혀 살아온 현대인인 나의 눈이 어두운 탓일까요?

그날 밤, 여강 고성 안을 거닐며 불빛 속에 바라보는 동파 문자 간판들이 더 빛나고 선명해 보이는 것은 낮의 동파신원에서의 감동이 잊혀지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아주 아득한 고대의 시간 속을 여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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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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