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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사내가 있다. 군인신분이었던 그 사내는 권력의 공백상태를 이용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후 초헌법적 비상기구를 만들어 국가권력을 한 손에 틀어쥔다. 그는 생각했다. '최고 권력자가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포가 필요하다'라고. 국민들을 상대로 더 많은 공포를 안겨 줄 방법은 바로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였다.

그런데 마침 광주 일원에서 비상계엄을 철회하라는 일련의 집단적 움직임이 있었고, 그 사내와 그의 추종세력들은 권력획득의 마지막을 장식할 도구로 이를 이용할 것을 결심한다. 광주를 피와 공포와 분노로 얼룩지게 했던 잔혹한 살육을 통하여 그 사내와 그의 추종세력들은-그들은 이른바 '신군부'라고 불렸다-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 지난 19일 오후 대검중수부 수사팀이 전두환 전대통령 자택에서 방문조사를 벌이는 데 대해 민주노동당원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반도 남단에서 시작된 공포는 바야흐로 한국사회 전역을 휩쓸었고 모든 사람들은 눈을 마주치기조차 두려워했다. 공포는 무섭게 전염되었고 광주로 대표되는 호남은 호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민들에게 새로운 적으로 태어났다.

그 사내의 집권 기간은 7년이었다. 그와 그의 추종세력들에게는 결코 길지 않은 통치기간이었을테지만 그들을 제외한 모든 한국사회 구성원들에게는 백년보다 긴 고통의 시간이었다. 눈 밝은 시인의 표현처럼 그 시대는 "모두 병들었으나 아무도 아프지 않았던" 시대였다.

고문, 투옥, 의문사, 언론탄압, 정보기관에 의한 공작정치, 극단적인 노동탄압 등이 그의 치세를 대표하는 몇몇 단어들이다. 정의사회를 구현하자고 소리 높여 외쳤던 그 사내는 정작 자신과 자신의 친족들에게는 불의를 허용했다. 그 사내와 그의 친족들은 갖가지 명목으로 수천억원이 넘는 비자금을 거둬들였고 이를 철저히 은닉하였다.

7년의 통치기간은 그 사내와 추종세력에게는 천국에서 보낸 날들이었겠지만, 그런 날들이 언제나 계속 될 수는 없는 법이다. 마침내 그 사내에게도 최후의 날이 다가왔고 그 사내와 그 사내의 아내는 잠시동안의 유배생활을 함께 했다.

법 집행의 저울 추는 애초부터 기울어져 있었다

잠시 동안의 유배생활이 끝난 후 속세로 돌아온 그 사내는 유배를 떠나기 전 국민들에게 했던 약속을 어느 것 하나 지키지 않았고, 몇 년후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투옥당한다. 그의 투옥과 재판과정이 정치적 필요와 여론에 떠밀린 결과였듯이 그의 사면 역시 정치적 부담을 벗으려는 전,현직 최고통치자들이 합의한 결과였다.

동서화합을 위해서라는 명분과는 달리 그의 사면이 한국사회의 고질병 중 하나인 지역구도 해소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 사람은 대한민국에 아무도 없었다.

대법원에서 내란수괴죄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그 사내가 일상 생활로 복귀하는 데는 2년이면 충분하였다. 잡범과 한때 최고통치권자였던 사내에게 적용되는 법 집행의 저울추는 애초부터 크게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와 같은 공기를 호흡하고 우리 주변에서 살고 있는 그 사내에게서는 오래전부터 비자금에 관한 소문이 끊이질 않더니 최근에서야 그 사내의 아들에게서 비자금에 대한 실체가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현금 29만원이 전부라던 그 사내는 골프장과 고급음식점 드나들기를 마치 제집 안방 드나들 듯이 했다. 그 사내의 외출은 수많은 수행원들과 경호원들에 둘러싸인 채 이루어져 흡사 왕의 행차를 방불케 할 정도이다. 이제 그와 그의 친족들이 누리는 호사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그런데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대죄를 저지른 그 사내에게 법 집행은 어떠했는가? 적은 벌금형을 선고받고도 이를 납부치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추상같던 법 집행은 그 사내의 불법 비자금-그 규모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천문학적 규모일 것으로 추정될 뿐-을 환수하려는 데에는 놀라울 정도로 소극적이다. 그 뿐이 아니다. 더욱 분개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사내의 안위를 위해서 많은 경찰병력이 불철주야 경호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친일파-군사독재 부역자 득세는 지울 수 없는 정신적 상처

물론 이 경찰병력은 모두 우리들의 세금으로 움직인다. 온갖 불법과 부정을 자행한, 그리고 여전히 한줌의 반성도 하지 않은 채 재직시 조성한 비자금으로 호의호식하고 있는 전(前) 독재자를 참여정부의 공권력이 보호하고 있는 이 부조리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알량한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을 들먹일 생각일랑 아예 말라! 그렇다. 우린 여전히 정의와 불의가 도착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독재자는 아직도 그 힘을 완전히 잃지 않았고 한국사회는 아직도 그의 자장(磁場)안에 있다.

역사는 일종의 부메랑과도 같다. 역사는 각 사건과 사태를 통해 교훈을 남긴다. 그리고 역사가 주는 교훈을 거울삼아 현재와 미래를 새롭게 기획하고 조직하는 민족과 국가만이 희망이 있다. 역사의 교훈을 망각한 민족에게 역사는 분노의 여신의 얼굴을 한 채 복수하곤 한다.

다른 나라의 예를 살필 필요도 없다. 한국사회의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아주 쉽게 얻을 수 있는 결론이다. 친일 민족반역자들과 군사독재에 부역한 자들을 청산하지 못한 과오가 한국사회의 정상적인 발전에 얼마나 큰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는가?

그들의 후예들이 한국사회의 지배블록으로 자리잡은 후 발생한 최대의 폐해는 정의라는 가치의 실종 내지는 정의와 불의의 전도다. 식민지와 분단, 한국전쟁을 경험한 한국인들에게 친일 민족반역자들과 군사독재의 부역자들의 득세는 지울 수 없는 정신적 상처와 가치관의 근본적 변환을 가져왔다.

이제 대부분의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은 좋고 싫음 혹은 유-불리를 기준으로 가치를 판단하고 행동한다. 옳고 그름을 기준으로 가치판단을 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누구나 인정하다시피 옳고 그름이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지 못하는 사회, 정의와 불의가 전도된 사회에서 정상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정의를 세우려는 사회적 기획과 실행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이다. 그리고 전직 독재자에 대한 엄정하고 공평한 처리야말로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 과거의 치명적인 잘못을 언제까지나 되풀이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브레이크뉴스에도 송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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