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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방송기자클럽초청 회견에서 처음 밝힌 경선자금을 둘러싸고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자 이병완 청와대 홍보수석은 참여정부 출범 1주년인 2월25일 춘추관을 찾아 기자들에게 "대통령의 경선자금 발언은 (패널들의) 질문에 성실히 답변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한 것이지 의도된 발언은 아니다"고 적극 해명했다.
이병완 "경선자금 발언은 허물이나 비밀을 담아두지 못하는 성격 탓"
이병완 수석은 "대통령이 허물이나 비밀을 마음속에 담고 가지 못하고 가는 성격이기 때문에 어제 경선자금 발언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 수석은 또 “어제 대통령이 말한 경선비용(십수억원)은 2002년 2월말부터 그해 4월말까지 진행된 민주당 경선과정에 쓰인 돈이 아니고 2001년 해수부 장관을 그만두고 대통령 출마를 위한 1년여 과정에 쓴 전체 비용을 의미한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대통령은 그 당시 경선이 끝난 이후 당시 '관계자'로부터 경선 기탁금 2억5천만원을 포함해 십수억원이 들었다는 얘기를 듣고서 개략적인 경선자금 규모를 파악한 것으로 안다”고 이 수석은 덧붙였다.
이 수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의 경선비용은 다른 후보에 비견해서 '신기록적인 저비용'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같은 청와대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선자금 불법성 논란은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너무 많이 나간' 노 대통령의 '경선자금 십수억원' 발언
일단, "(패널들의) 질문에 성실히 답변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한 것이지 의도된 발언은 아니다"라는 청와대측 해명부터가 어제 발언의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한 것이다.
어제 노 대통령의 '경선자금 십수억원' 발언은 한 패널(문영기 CBS 해설주간)이 '대선자금 수사의 형평성에 논란이 있다'고 질문하자 "500억 대 뻥(0)원이라는 (야당의) 문제제기 자체가 맞지 않다"고 적극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즉 패널은 경선자금에 대해 질문했던 것이 아니고 대선자금의 형평성에 대해 질문했던 것인데, 노 대통령의 답변이 경선자금까지 '너무 많이 나갔던' 것이다.
노 대통령은 '500억 대 뻥' 발언에 이어 "옛날 민주당 선대위에 5대 재벌로부터 10억, 20억원 안팎의 돈이 들어왔고 대개는 영수증 처리되었지만 일부는 편법 영수증 처리됐다"면서 "어떤 대통령후보도 그만한 불법 없이 대통령선거 치러낼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서 "(민주당에서) 내가 쫓겨날 뻔했는데 마지막까지 나를 지켜준 사람들은, 교도소 용어지만 '개털'들만 모였다"고 소회를 밝히는 대목에서 경선자금 발언을 이렇게 했다.
"경선을 마치고 나서 우리 선관위에서 30억원의 합법적 경선자금을 인정해주겠다는 보도를 보면서 그렇게 인정해주고 돈 주면 훨훨 날았겠다는 마음을 후보가 된 다음 먹었다. 합법적인 여윳돈이 없어 (경선자금으로) 십수억 썼을 것이다."
노 대통령과 청와대측 해명 불구하고 불법성 논란 여전히 남아
노 대통령은 또 "(경선자금의) 진실을 밝힐 경우 야당과 언론이 선거자금 문제의 본질을 끊어버리고 다른 후보와의 상대적 비교도 생략하고 '노무현 후보 경선자금 십수억 실토' 이렇게 나올까봐 (경선비용을) 고백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노 대통령이 대선자금 형평성 문제에 답변하면서 자신의 경선자금을 털어놓자 그 다음 패널(윤덕수 KBS 해설위원)은 한화갑 민주당 의원이 제기한 경선자금 수사의형평성 문제를 거론하며 "경선자금을 스스로 공개할 용의는 없는가"라고 후속질문을 던졌고, 이에 노 대통령은 "한화갑 의원에 대한 수사는 제 의지와 아무 관계없다"면서 "지금까지 누구도 표적수사 하라고 어디 한 군데 주문한 일이 없다"고 반박했다.
노 대통령은 또 "검찰은 경선자금 수사한 일이 없고 여기저기 기업체에 단서가 있는 것 조사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면서 "어떤 기업의 정치자금이나 비자금 혐의가 있어 조사하다가 장부에 사람 이름 나왔는데 경선자금이니까 덮자고 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경선 때 십수억원 썼다고 털어놓은 것을 지금 어찌하면 좋겠냐?"고 반문하고 “제가 '저비용' 후보인 것은 당시 출입기자들도 다 안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불법성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선, 청와대측 해명대로 십수억원의 경선비용이 2001년 해수부 장관 사퇴 이후 대통령 출마를 위한 1년여 동안에 쓴 전체 비용을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그중 상당액은 불법성 시비를 벗어나기 어렵게 돼 있다.
경선자금 '출구'(사용처)는 공개했으나 '입구'(자금 출처)는 비공개
노 대통령은 어제 회견이 끝난 후 오찬 석상에서 경선자금 발언에 대해 해명하면서 “대체로 기간은 1년간, 그중 본격적으로는 전북 무주 지지자 단합대회(2001년 11월10일) 이후 6개월간이었고 기탁금 2억5천만원, 캠프 조직 비용, 경선기간 숙박비 등 이었다”고 지출내역을 소개했다.
문제는 경선자금의 ‘출구’(사용처)는 공개했으나 ‘입구’(자금 출처)는 공개하지 않은 점이다. 따라서 ‘입구’도 공개하라는 야당의 요구가 거세질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현행 정치자금법에 비추어 당시 부산 북강서을 지구당위원장이었던 노 대통령은 지구당을 통해 선거가 없는 해는 3억원, 선거가 있는 해는 6억원 한도 내에서 모금할 수 있게 돼 있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당시 2001년, 2002년에 각각 1억2천650만원, 5억9천620만원을 지구당 후원금을 포함한 수입으로, 같은 해에 각각 1억2천357만원, 5억7천880만원을 지출액으로 선관위에 지구당 명의로 신고했다.
따라서 두 해에 걸친 1년여의 기간에 모금한도를 초과한 수억원의 사용금액을 어디서, 어떻게 조달했는지는 여전히 청와대측의 해명으로 설명되지 않은 대목으로 ‘불법성 시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 스스로 경선자금 불법성의 ‘단서’를 제공
이는 결국 다시 대선자금 문제의 출발인 ‘형평성 문제’로 환원될 수밖에 없다. 특히 경선자금이 문제된 한화갑 의원의 경우 노 대통령이 해명한 것처럼 표적수사의 결과는 물론 아닐 것이다. 또 어떤 기업의 정치자금이나 비자금 혐의가 있어 조사하다가 장부에 사람 이름 나왔는데 경선자금이니까 덮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문제는 검찰이 한 의원 건을 덮을 수는 없지만 노 대통령이 ‘경선자금을 십수억원 썼다’고 범죄구성 요건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 이상, 이를 ‘인지’한 검찰이 노 대통령 경선자금의 불법성도 수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기자회견에서 “당시 실제로 경선에 들어간 홍보비용, 기획비용 등 여러 가지가 합법적인 틀 속에서 할 수 없었고 경선후 자료를 다 폐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동영 당의장의 경선비용처럼 노 대통령에 대해서도 경선비용에 관한 근거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검찰이 수사를 안 해도 비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검찰이 당장 노 대통령의 경선자금 발언을 계기로 ‘노 대통령 경선자금도 들여다보겠다’고 운을 뗀 것은 '단서'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은 어제 회견에서 “대통령을 포함해 경선자금을 밝히는 게 법과 정의를 바로잡고 정치개혁을 하는데 꼭 필요하다면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결단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지금 대선자금만 갖고도 고통스럽고 힘든 만큼 경선자금 문제는 공방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희망을 피력했다.
그러나 여당과 야당이 모두 서로들 모든 것을 걸고 올인(all in)하는 선거판을 앞두고 ‘경선자금 문제는 공방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노 대통령의 '호소'가 먹혀들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노 대통령의 발언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검찰 수사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수사의 칼끝을 무디게 만들었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왜 아무런 ‘실익’이 없는 경선자금 발언을 꺼냈을까
앞에서 보았듯이 ‘경선자금 십수억원’ 발언은 '의도된 발언'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 대선자금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나온 발언일 수는 있으나 적어도 ‘질문에 성실히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노 대통령은 야당의 경선자금 공개 요구에도 그동안 회계 자료를 폐기했기 때문에 밝히기 곤란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왜 아무런 ‘실익’이 없는 경선자금 발언을 불쑥 꺼냈을까.
이에 대해서는 불법정치자금 2억5천만원 수수 혐의로 검찰의 출석 요구를 받은 이인제 자민련 의원이 검찰 출석을 거부하면서 ‘정적에 대한 정치탄압’이라고 노 대통령을 걸고넘어진 것이 노 대통령의 이날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결국 그 계기가 우발적이건, 실수이건, 허물이나 비밀을 마음속에 담고 가지 못하고 가는 성격 탓이건, 노 대통령은 ‘안해도 될 말’을 함으로써 ‘검찰이 경선자금도 수사해야 한다’는 정치적 논란과 사회적 갈등비용을 자초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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