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동독쇼' 같은 TV 프로그램들이 생겨나 '동독의 추억'을 재미나게 포장해서 수백만 시청자의 시선을 브라운관 앞에 묶어 놓으며, 유사 프로의 편성에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구 동독에서 부의 상징이었지만 세계 최고의 자동차를 만드는 서독인들의 비웃음을 산 '트라반트'라는 자가용은 이미 없어서 못 파는 귀중한 골동품 대접을 받으며 수집가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동독 시절 물건들이 벼룩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가 하면, 동베를린에서만 볼 수 있던 신호등의 '꼬마 신사' 모양이 베를린 시민들의 사랑을 등에 업고 새로 교체되는 신호등을 장식하게 되었다.
이 앙증맞은 모양의 '꼬마 신사'는 신호등을 넘어 캐릭터 상품화의 길을 걷고 있다. 옷걸이나 목걸이 상품이 나오더니 꼬마 신사 모양의 퍼즐까지 상품으로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베를린의 '동독 미술 전시회'도 호평 속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 전시회는 의도적으로 체제 지향적인 그림들을 구석으로 몰고, 체제 저항적이거나 순수미술에 가까운 그림들을 중심에 배치해 상업적이라는 의심을 샀지만 대대적인 언론 보도의 지원 속에 성공을 거두었다.
국내외의 각종 영화제를 휩쓴 영화 <굿바이 레닌> 열풍은 이러한 '동독의 추억'에 불을 질렀다. 영화처럼 통일 직후 동베를린 지역에서 동상들이 일제히 수거되는 수난을 겪은 장본인인 레닌의 얼굴을 큼지막하게 박은 티셔츠나 포스터가 영화의 인기에 편승해 상점에 내걸리고 있다.
바야흐로 동독이 '상품으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만물의 상품화'라는 자본주의의 정언 명령에 걸맞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복고풍 바람이 불기 전에 동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일까?
사라진 '동독의 흔적'은 이 부활과 무관하게 이전부터 베를린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깔끔하고 활기찬 풍경의 서베를린 지역에 비해, 동베를린의 시가나 건물은 여전히 우중충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직도 서베를린 사람들은 뭔가 음산한 느낌을 주는 동베를린 쪽으로의 출입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으며, 동베를린 지역의 기숙사는 상대적으로 빈 방이 많고 값도 싼 실정이다.
또 통일 이후 정부가 동독 지역에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지만 동서독인의 삶은 아직 많이 다르다. 동독의 실업률은 서독 지역의 두배가 넘으며, 생활 수준의 격차도 현저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통일 후 15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도 주민의 식습관까지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독일에는 지금까지 엄연히 사용되고 있는 '오씨'(동독인)와 '베씨'(서독인)라는 말과 나란히 동독인과 서독인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씨'들의 눈에 '동독적인 것'의 상품화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 곱게 보일지는 의문이다. 독일에서 냉소의 대상이던 '동독'이 열심히 부활하고 있지만, 진정한 통일의 길은 멀고 험한 모양이다. '베를린 장벽'은 독일 국민들의 마음 속에서 아직 무너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산일보 2월 25일자에 송고한 글을 일부 보충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