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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를 당산나무에 걸고 비틀어 꼬아 튼튼한 새끼줄을 엮는 '줄들이기'
새끼를 당산나무에 걸고 비틀어 꼬아 튼튼한 새끼줄을 엮는 '줄들이기' ⓒ 최연종
음력 이월 초하루인 지난 20일, 동복면 가수리(佳水里) 상가(上佳)마을.

짐대를 세우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다. 마을 어귀에 있는 당산나무 앞으로 모인 주민들은 당산나무 가지에 새끼줄을 걸어놓고 세 사람이 한 가닥씩을 잡고 비틀어 꼬아 튼튼한 새끼줄을 엮는다. 짐대로 사용할 나무를 메고 오거나 세울 때 쓰기 위해서다. 주민들은 이를 '줄들이기'라 부른다.

곧게 자란 육송을 베고 있다.
곧게 자란 육송을 베고 있다. ⓒ 최연종
줄들이기를 마치자 마을 주민 10여명은 경운기를 타고 마을에서 1km 떨어진 앞산 ‘절터굴’로 장대를 베러 간다. 예전에는 몸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않는 깊은 산 속에서 나무를 골랐다. 짐대로 사용할 장대는 곧게 자란 제일 큰 육송을 사용하는데 며칠 전에 미리 골라 놓는다.

풍물패의 징과 꽹과리 소리가 숲 속의 정령들을 깨우는 순간, 지름 20여cm, 길이 10m가 넘는 소나무가 순식간에 넘어갔다. 이때 징과 꽹과리를 치는 것은 베어질 나무의 영혼을 달래고 숲의 정령들에게 허락을 받기 위해서다.

마을 사람들이 짐대로 사용할 나무를 끌고 오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짐대로 사용할 나무를 끌고 오고 있다. ⓒ 최연종
짐대로 선택된 장대는 새끼줄로 묶은 뒤 길 아래로 끌어내려 경운기에 싣고 마을 앞에 내려놓는다. 이때 마을 주민들이 달려들어 새끼줄을 어깨에 메고 당산나무 앞까지 100여m를 끌고 오는데 풍물패의 장단에 맞춰 입으로 전해오는 구성진 소리 가락을 한다. 이 가락 속에는 주민들의 정성과 소망을 가득 담고 있는 듯싶다.

이 나무를 찾으려고 / 이 산 저 산 돌고 돌아 / 어렵사리 찾았구나/
이 나무를 촌전 앞으로 / 조심조심 모셔 오세 / 당겨주소 당겨주소/
나무는 크고 사람은 작네 / 당겨주소 당겨주소 / 일심으로 당겨주소/
이 나무는 팔자가 좋아 / 촌전 앞으로 행하시네 / 이 나무를 오늘부로/
짐대님으로 모셔보세 / 우리 마을 짐대님은 / 화재 예방 해주시고 / 우리 마을 짐대님은/ 질병 예방해주시고 / 우리 마을 짐대님은 / 풍년농사 지어 주시네/ (이하 생략)


화기를 품고 있는 산을 향해 세워진 짐대.
화기를 품고 있는 산을 향해 세워진 짐대. ⓒ 최연종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인 1700년대 말 동복 가수리 상가마을에 원인 모를 불이 자주 났다. 마을 사람들은 ‘등잔솔’이라고 불리는 앞산이 화기(火氣)를 품고 있다고 믿고 이때부터 매년 음력 이월 초하루만 되면 마을 어귀에 짐대를 세웠다.

장대 위에는 나무로 물새인 오리를 깎아 얹었다. 이때 오리의 머리는 앞산을 향하고 꼬리는 마을 쪽을 향하게 했다. 오리가 마을의 화기를 물고 날아갈 뿐 아니라 오리의 배설물은 마을의 화기를 덮는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오리는 물과 하늘, 그리고 물 속까지 자유롭게 드나든 새로서 마을 사람들은 짐대가 마을의 화재를 막아주고 가물 때는 비를 몰고 오는 신으로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6.25 직전에 짐대 세우는 것을 멈추기도 했고 1970년대에는 새마을사업을 펼치면서 짐대를 없앤 적도 있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당산나무와 짐대가 불에 탄 뒤로 마을에 궂은 일이 잦고 짐대를 없앤 70년대에도 불이 자주 발생하자 다시 짐대를 세우기 시작했다. 짐대는 태풍에 부러져 없어지기도 해서 현재 마을 입구에 올해 세운 것을 포함, 5기가 있다.

상가마을 터줏대감인 이진수(79)씨는 “우리 조상들이 이월 초하룻날에 짐대 세우는 일을 200여년간 해왔다”며 “날씨가 궂어도 날짜를 바꾸지 않고 전통을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200년이 넘게 해마다 같은 날 전통방식으로 짐대를 세우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장대라는 명칭도 지방마다 다르다. 다른 지역에서는 보통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장대’라고 해서 ‘솟대’라고 부르지만 상가마을을 비롯해 솟대가 가장 많이 세워진 전남 지방에서 대부분 ‘짐대’라고 부르고 있다. 아마 ‘긴 대’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보인다.

오리부리에 대여섯 가닥의 대나무살을 물린 모습.
오리부리에 대여섯 가닥의 대나무살을 물린 모습. ⓒ 최연종
당산나무 주변에서는 짐대로 사용할 나무껍질을 벗기는 일이 한창이다. 한쪽에서는 짐대 위에 얹을 오리를 깎고 오리 부리에 물릴 대나무를 다듬는다. 가늘게 쪼게 늘어뜨린 대여섯 가닥의 대를 오리 부리에 물린다. 주민들은 댓살을 오리 수염으로 부르는가하면 버드나무 가지로도 비유한다.

버드나무는 물을 많이 머금고 있어 오리가 화기를 품고 있는 산쪽으로 날아가 화재를 막아달라는 주민들의 소박한 소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대나무살은 마치 오리 날개를 연상케 하는데 금방이라도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을 향해 훨훨 날아오를 것 같다.

짐대를 세우고 있는 모습.
짐대를 세우고 있는 모습. ⓒ 최연종
짐대 세우기는 마을 축제로 열린다.
짐대 세우기는 마을 축제로 열린다. ⓒ 최연종
짐대 세울 준비가 끝나자 마을 사람들은 막걸리로 목을 축인 뒤 새끼줄로 짐대를 묶는다. 좌우 양쪽과 가운데에서 각자의 새끼줄을 잡고 놓고 당기기를 반복하며 짐대를 일으켜 세운다. 이때 한쪽으로 힘이 쏠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게 중요하다. 뒤쪽에는 나무 사다리를 받쳐 짐대가 넘어지지 않도록 한다.

하지만 급속한 이농과 노령화 때문에 짐대 세우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대부분 노인들만 마을을 지키고 있어 200여년간 전해오는 소중한 문화유산의 맥이 끊길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김정준(62) 이장은 “조상님들이 수백년 전부터 해왔던 전통을 이어받기 위해 매년 짐대를 세우고 있다”며 “동네에 젊은 사람들이 없어 갈수록 짐대 세우는 일이 힘에 부친다”고 말한다.

짐대가 세워지는 동안 풍물패를 앞세워 구성진 소리를 내며 흥을 돋운다. 짐대세우기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경건함도 있지만 흥겨움을 가미한 놀이적인 요소가 강하다. 상가마을 짐대세우기는 전통 민속놀이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마을 공동 경비로 돼지를 잡고 술과 푸짐한 먹거리를 준비해 마을 축제로 열리고 있는데 풍물패와 어울린 소리 가락은 덩실덩실 어깨춤이 절로 나게 한다. 짐대를 세우고 나서 이장이 막걸리 한 사발을 올린 뒤 절을 하면 마을 사람들도 짐대를 향해 절을 하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 마을 사람들은 막걸리 잔을 서로 주고받으며 본격적인 마을 잔치를 연다.

짐대를 세운 뒤 당산나무 주변에서 점심을 들고 있는 마을 주민들.
짐대를 세운 뒤 당산나무 주변에서 점심을 들고 있는 마을 주민들. ⓒ 최연종
마을 앞으로 동복천 상류를 끼고 있어 예로부터 물이 맑고 풍부하다는 가수리(佳水里). 화순에서도 깊은 산골에 위치해 전통산간문화의 원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가수리는 만수동, 상가(上佳) 하가(下佳)마을로 이뤄졌다. 짐대를 세우는 상가마을은 ‘윗가무래’, 하가마을은 ‘아랫가무래’라 불렀다. 가수리는 검은내(玄川里)에서 유래됐다.

상가마을은 가무래 위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으로 현재 17세대 5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하가마을 입구에는 길 양쪽에 2기의 벅수가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매년 정월 보름날 ‘벅수제’를 올린다.

솟대신앙은 청동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상가마을 짐대세우기는 올 4월에 열리는 고인돌축제 때 고인돌 현지에서 새롭게 선보인다. 뿐만 아니라 올 10월께 열리는 남도문화제에도 출전할 계획도 갖고 있다. 화순군은 지난해 향토문화유산 제17호로 지정, 보호 관리하고 있는데 지난 19일에는 솟대 주변에 안내판도 설치했다.

마을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을 천상에 전달하는 희망의 메신저 짐대. 짐대세우기는 가꾸고 보존해야할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이다.

덧붙이는 글 | 상가마을은 200년 넘게 해마다 같은 날 짐대세우기를 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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