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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연 '위안부'테마 영상화보집 파문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하는 기획토론회가 26일 오전 10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렸다.

나눔의집,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한국정신대연구소 등이 주최한 이번 토론회는 화보집 사건을 통해 제기된 다양한 시각의 의미와 문제점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이날 토론회에는 많은 보도진이 몰려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의 높은 관심을 실감케했다.

▲ 이날 토론회 사회를 맡은 한국정신대연구소 윤명숙 연구원
ⓒ 송민성
이승연 개인에게 행해진 광기와 폭력들

▲ 한국정신대연구소 이선이 연구원(왼쪽)과 성공회대 여성학과 정희진 강사
ⓒ 송민성
네띠앙엔터테인먼트가 "여인의 장중한 삶을 표현하고 한·일 관계를 역사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해 추진했다"고 밝힌 영상화보집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되자마자 '위안부' 피해자와 네티즌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위안부' 누드를 반대하는 사이트는 개설 3일만에 회원수 4만여명을 넘어섰고, '위안부' 문제에 관한 논의들이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누드로 인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기조발제에 나선 한국정신대연구소 이선이 연구원은 이러한 평가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이승연'과 '누드'만 강조되는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이 연구원은 '위안부' 문제가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누구나 재현할 수 있고, 과거를 기억하려는 재현은 필요하다고 전제했다. '위안부' 문제를 재현하려고 한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원은 문제의 핵심이 "누가 어떻게 왜 재현하는가"라고 할 때, "이번 화보집이 실제로 누드집이었는지, 그리고 여성의 신체를 선전수단으로 사용하는 포르노의 코드를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검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승연을 이라크의 위안부로' 등의 구호들을 예로 들며 사회가 정의와 상식, 합리성이라는 미명 아래 이승연이라는 개인에게 광기와 폭력을 휘두른 것은 아닌지 반문했다.

성공회대 여성학 강사 정희진씨 역시 기획사와 해당 연예인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가장 보수적이고 위험한 태도라고 주장했다. 이 문제를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접근한 정씨는 "화보집의 촬영이 중단될 수 있었던 것은 여성의 인권과 존재를 몸으로 환원하는 포르노와 누드산업 자체에 반대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프로젝트가 민족주의 담론과 충돌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를 가장 극단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남성관객의 쾌락을 최대화시키는 '위안부' 누드는 "황당한 사건이 아니라 남성의 이윤과 쾌락을 보장하려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비판했다.

또한 정씨는 '위안부' 누드를 향한 시민들의 분노와 '~양 비디오'들에 쏟아진 관음증적 관심을 대조하면서 "일반 누드는 괜찮다는 사고방식이 그 차이를 발생시켰다면 이는 문제의 원인을 은폐하려는 남성사회 전략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언론, '위안부' 문제를 똑같이 상업화하지 않았나?

▲ 민언련 김은주 사무처장(왼쪽)과 나눔의 집 안신권 사무국장
ⓒ 송민성
이번 파문을 보도한 언론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이를테면 '종군위안부'라는 용어는 '일본군을 자발적으로 따라가[從] 위안을 제공한 여성들'이라는 의미로,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성노예 생활을 해야했던 피해자의 시각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 잘못된 표현이다. 또한 노동·의료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동원된 여성과 남성 모두를 일컫는 '정신대'라는 말도 적당하지 않다.

그러나 많은 신문들이 이번 파문을 보도하면서 '종군위안부' '정신대' 등의 표현을 혼용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 김은주 사무처장은 그 외에도 '정신나간 누드', '배신의 누드'와 같은 자극적인 제목, 통렬한 비판을 담은 사설과는 달리 피상적인 보도에 그친 기사 등의 사례를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위안부' 누드를 비난하면서 누드사진을 게제한 행위는 '위안부'를 상업화한 똑같은 행위라고 꼬집었다.

이날 발언자들은 '위안부' 누드로 모아진 국민적 관심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다.

나눔의집 안신권 사무국장은 "'위안부' 피해의 역사를 기록하고 다시는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교육하는 추모사업과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의 교사 정용윤씨도 교육의 중요성에 동의하면서 인권과 평화교육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씨는 "국가라는 정체성을 뛰어넘는 인권과 평화교육을 통해 르완다, 코소보 등지에서 여전히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성적착취와 학살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정희진씨는 "단순한 인권과 평화교육이 아니라 성(性)인지적 관점에서의 교육이 근본적인 대안"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언론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이 해결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언론이 되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순간 반짝하는 사건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인터뷰]토론회에서 만난 정대협 강주혜 부장

- 가처분 신청을 취하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된 것으로 보이는데.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네띠앙엔터테인먼트가 2월 5일 '위안부'에 관한 자료를 문의한 바 있다. 그때 정대협측에서는 어떤 형식과 내용인지 알 수 없으니 제작기획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보내온 기획서 역시 모호했다. 그리고 기자회견을 통해 화보집이 발표되었다. 그것도 우리는 기자회견에 참여한 기자를 통해 알게 되었다. 누드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삭발했다는 것 역시 네띠앙 항의방문 의사를 밝힌 직후 기자들로부터 들었다. 진정한 사과라면 피해자와 관련단체, 국민들에게 분명히 해야하는 것 아닌가?

이승연씨 역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은 사실이므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17일 많은 언론에 보도된 대로 이승연씨가 나눔의집, 정대협 등을 방문했다. 그 이후 이승연씨에 대한 옹호론, 동정론이 제기되고 동시에 지독한 할머니들이라는 비난이 제기됐다. 일단 네띠앙측에서 배포금지와 촬영중단을 선언했으므로 가처분신청을 취하한 것이다."

- 한바탕 전쟁을 치루고 난 느낌 일 것 같다.
"그나마 사태를 빨리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정대협을 비롯한 관련단체들이 발빠르게 대처한 덕분이었다고 본다. 이번 사건이 여론의 관심을 높이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한 측면도 없진않다. 14년 운동하면서 연예부 기자가 정대협을 방문하기는 처음이었으니까."

- 앞으로 어떤 활동을 펼칠 계획인가.
"이렇게 모아진 여론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더 이상 '위안부' 문제가 한순간의 반짝하는 사건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 송민성

“바위처럼 든든히 살아남아 일본 사죄받겠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솔직한 이야기들

이날 토론회에는 강일출씨를 비롯한 여섯 분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참석해 '위안부' 누드에 관한 자신들의 의견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강일출씨"내가 (그 소식을 듣고) 몸이 아파서 며칠을 드러누워 있었다. 몸이 아픈데도 우리 일이므로 (이 자리에) 나왔다. 우리 할머니들은 슬픔을 마음에 묻고 문제 해결될 날만 기다리며 피눈물을 쏟고 있자니 몸이 떨어져나갈 것같다. 이런 말을 누구에게 하겠는가? 젊은 세대들이 우리같은 고통을 다시 겪어서는 안되지 않는가?"

김순덕씨"우리는 '위안부'가 아니다.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이다. '위안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치가 떨린다."

김군자씨 "('위안부' 누드 파문이) 해결된 걸로 생각하지 않는다. 50년이 넘도록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정치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하루 빨리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박옥련씨"내가 올해 나이 86살이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어서 정부에서 나서서 일본이 '앗따 한국 사람들 대단하구나' 싶어서 얼른 해결하도록 해야하지 않겠나."

이옥선씨 "16살에 '위안부'로 끌려가 58년만에 고국에 돌아왔는데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 중국, 미국, 일본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다. 우린 어드메 나라 사람이냐? 1년 넘어 고생해서 국적 취득했지만 포기하겠다고 했다. 그 심정이 어떻겠는가? 내 몸에 그때 상처가 남아있는데 그걸 볼 때마다 내 마음이 어떻겠는가? 일본은 우리가 다 죽기만을 기다린다. 안넘어가겠다. 바위처럼 든든히 살아남겠다." / 송민성

덧붙이는 글 | 한편 이날 토론회를 진행하는 가운데 '위안부' 피해자 정서운씨의 사망소식이 전해져 참석자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고(故) 정서운씨는 1924년 하동출생으로 1937년 '위안부'로 끌려가 인도네시아 수마리아에서 8년간 '위안부' 생활을 했다. 1992년 '위안부' 신고를 한 이후 일본, 미국 등지에서 활발히 증언활동을 함으로써 '위안부' 문제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04년 2월 26일 이른 7시 30분 81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장례식은 3일장으로 28일 치뤄질 예정이며 장례비를 모금하고 있다. 후원계좌: 농협 818-12-307082(예금주 심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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