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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 헤럴드트리뷴' 27일자에 실린 관련 기사.
'인터내셔널 헤럴드트리뷴' 27일자에 실린 관련 기사. ⓒ 오마이뉴스 신미희
"'중국은 큰 형'이라는 인식이 한국인 심리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해마다 수만명의 여자를 중국에 보냈다."

구삼열 아리랑TV 사장이 한 영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특히 기본적인 사실조차 맞지 않는 주장이 해외홍보 국책방송사 대표의 입을 빌어 외신에 실렸다는 점에서 우려를 사고 있다.

구 사장은 미국의 영자신문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 27일자에 실린 'China-mania in South Korea as Beijing's interest shifts'(중국의 이해관계 변화 속에서 한국의 중국 열풍) 제하 기사에서 한국과 중국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 기사는 뉴욕타임스 동아시아 담당 기자가 작성했다.

구 사장은 해당 기사에서 "역사적으로 한국인들은 중국을 무역은 물론 문화의 원천으로 보고 유교와 한자를 받아들였다"며 "중국에 대한 종속 관계는 때로 억압적이었다"고 말했다.

구 사장은 또 "'중국은 '큰 형'이라는 인식이 한국인의 심리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다"면서 "그러나 한중 관계는 순수한 호혜평등 관계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구 사장은 그같은 사례로 "우리는 해마다 수만명의 처녀를 보냈다"고 언급했다.

구삼열 아리랑TV 사장은
외신기자·유엔관료 출신...지난해 12월 부임

▲ 구삼열 아리랑TV 사장
ⓒ아리랑TV 홈페이지
구삼열 아리랑TV 사장은 43년생으로 고려대 법대를 나와 65년 코리아헤럴드에 기자로 입사하면서 언론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미국 AP통신 기자와 미국의소리(VOA) 해설위원, 유엔 공보처 국장 및 특별기획국장, 유니세프 보좌관 등을 역임하면서 오랫동안 외국생활을 경험했다.

아리랑TV 사장은 지난해 12월부터 맡고 있다. 국가 이미지 제고를 목적으로 97년 2월 국제방송교류재단이 개국한 아리랑TV는 외국어 방송을 전문으로 하는 국책 홍보방송이다. 사장은 국제방송교류재단 이사회 제청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이 임명한다.

현재 위성을 통해 140여개국에 전파를 쏘고 있으며 해외로 방송되는 위성TV 2채널과 국내TV 2채널, 라디오 1채널(제주방송) 등 5개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 신미희 기자
구삼열 사장 "수천명이라고 했지, 수만명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마다 수만명의 처녀를 보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고려 중기부터 조선 중기까지 원·명나라의 요구로 보내진 '공녀'의 경우 해마다 제공된 것도 아니며 그 규모도 수십명 내지는 수백명으로 기록돼 있다.

'중국은 큰 형''종속관계' 등으로 나타난 편협된 역사 인식의 문제점도 비판의 대상에 올랐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놓고 국가 차원의 대응 모색까지 나선 지금, 국책방송사 대표의 주관적 견해가 외신에 공표되는 게 적절하느냐는 지적이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의 한 구독자는 "방송사 사장의 올바르지 못한 역사 의식도 문제지만, 우리 나라의 역사 문제를 함부로 언급하는 신중하지 못한 태도에 매우 실망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외국 사람들이 이런 기사를 보면 우리 나라를 어떻게 보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이에 대해 구 사장은 27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오보로 인해 자신의 발언이 왜곡됐다고 해명했다. 구 사장은 "수천명이라고 했지, 수만명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서 "'해마다'라는 표현도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뉴욕타임스 기자와 정식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구 사장은 "그 기자와는 친분 있는 사이로 막역한 사이인데, 사적으로 나눈 대화로 알았는데 기사화된 것을 보니 매우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구 사장은 '수만명의 처녀를 보냈다'는 대목과 관련, "학교 다닐 때 (중국에) 처녀를 보냈다는 사실을 배우면서 말도 안되는 일로 생각하며 의분강개했다, 그만큼 중국과 한국이 언제나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든 사례"라고 답했다.

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도 무감각

한편, 외신에 잘못된 한국 관련 정보가 나갔을 경우 이를 바로잡아야 할 국정홍보처의 해외홍보원은 아직 사태를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해외홍보원 책임자는 27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전화 통화를 할 때까지 관련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대응을 묻는 질문에 "우려 있는 부분에 대해 알아보고 연락주겠다"고만 답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트리뷴>은 <뉴욕 헤럴드트리뷴>의 사주가 1887년 파리에서 <파리 헤럴드>라는 이름으로 창간한 신문이 모체가 됐다. 이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합작 투자로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 현재 180개국에서 23만여부를 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녀'는 일제시대 정신대와 흡사
고려 중기부터 조선 중기까지 계속

공녀는 원나라와 명나라의 요구에 따라 고려 및 조선 왕조가 여자를 바치던 일을 말한다. 일각에서는 강제로 다른 나라에 끌려가 노동력 착취와 성적 학대를 받았다는 측면에서 당시 공녀를 일제 시대의 정신대와 흡사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공녀는 12세기 초 국호를 원이라 고친 몽골이 복속정책, 친근정책을 구실로 고려에 여자 제공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는 1274년(원종 15)에 징발한 여자 140명을 원에 보냈고, 1275년(충렬왕 1)부터 1355년(공민왕 4)까지 약 80년간 원나라의 공녀 요구는 계속 됐다. 이들 대부분은 궁녀가 되거나, 원나라 제왕후비의 심부름꾼으로 배치됐다.

그러나 고려 백성들은 공녀 징발에 불응, 조정에서는 역적의 처나 파계한 승려의 딸 등으로 징발을 했다고 전한다. 공녀를 처녀 중에서 징발했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조혼 풍속이 생겨났다. 공민왕의 반원정책으로 원나라에 대한 공녀는 끝났다.

그러나 원을 대신해 중국을 차지한 명나라에도 공녀를 바쳐야만 했다. 명나라는 많은 공녀를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조선은 공녀를 보내기도 하고 중단하기도 하다가 1521년(중종 16) 공녀 철폐를 요구한 게 받아들여져 일단락됐다. / 신미희 기자

덧붙이는 글 | 다음은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 기사 중 구삼열 사장의 말이 인용된 부분이다.

Historically, Koreans have viewed China as a source of culture as well as commerce, adopting Confucianism and Chinese characters, among other things. 

On the other hand, the relationship of vassal state to China was often oppressive. "It is ingrained in the Korean psyche that China is the big brother," said Samuel Koo, president of Arirang TV, South Korea's English-language broadcaster. 

"But Chinese-Korean relations were far from being an unmitigated love affairs. We used to ship to them tens of thousands of virgins every year." 

역사적으로 한국인들은 중국을 무역은 물론 문화의 원천으로 보고 우엇보다 유교와 한자를 받아들였다. 한편 중국에 대한 종속 관계는 때로 억압적이었다. 

한국의 영어방송인 아리랑TV의 구삼열 사장은 "중국은 '큰 형'이라는 인식이 한국인의 심리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다"며 "그러나 한·중 관계는 순수한 호혜평등 관계는 아니었다. 우리는 해마다 수만명의 여자를 중국에 보냈다(바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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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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