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묘지는 참 단촐하게 꾸며져 있다. 우리와 달리 무덤에 봉긋한 봉분이 없고, 바닥에 고만고만한 비석이 서 있거나 누워 있다.
주택가 근처에 있기도 해서 흡사 잘 단장된 공원을 연상시키며, 또 공원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묘지도 드물지 않다. 그래서 꽃들이 즐비한 어느 공원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곤 한다.
이런 독일에 '프리트발트'(Friedwald)라는 새로운 형태의 묘지가 등장하고 있다. 독일 말로 묘지는 '평화의 뜰'이라는 프리트호프(Friedhof)인데, 새 묘지는 뜰(Hof) 대신 숲(Wald)이 더해져 직역하면 '평화의 숲'이 된다.
이 묘지는 숲이나 나무와 연결된다. 프리트발트에 묻히고 싶은 사람은 이 '숲 묘지'에서 마음에 드는 나무 한 그루를 고르고, 죽으면 그 밑에 재가 되어 묻힌다.
가족 전체가 하나의 나무를 택해서 가족묘지를 만들 수도 있다. 원한다면 나무에 이름과 생몰일을 적은 간단한 표식을 달아도 된다. 선택된 나무는 99년 동안만 자기 것이 된다. 비용은 기존의 무덤보다 싸다고 하지만, 길목 좋은 곳의 잘 자란 멋진 나무는 몇 백만원까지 한다.
이 새로운 형태의 숲 묘지는 1999년 이웃나라 스위스에서 시작되었다. 스위스에는 현재 40개가 넘는 프리트발트가 아름다운 숲에 자리잡고 있다. 독일에서는 2001년에 처음으로 '평화의 숲'에 '나무무덤'(Baumgrab)을 만드는 게 허용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프리트발트의 매장은 약간 밀교적이지만, 앞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며칠 전 이 숲 묘지를 다룬 독일방송 ZDF의 프로그램 '다른 형태의 묘지'에 출현한 사람의 말이다.
프리트발트의 지지자들은 이 묘지가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죽은 뒤 재가 되어 나무의 자양분이 되니 환경 친화적이기도 하다. 또 산책하는 사람들도 묘지라는 인상을 받지 않고 자연스레 숲을 거닐 수 있다.
이 나무무덤 만들기에 드는 많게는 수백만원까지의 비용을 생각하면, 상혼이 개입된 새로운 형태의 매장 사업이라는 의구심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왕 비용이 든다면 나무 밑에 묻히는 게 더 좋은 일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새로운 형태의 묘지'에는 유독 숲을 사랑하며 환경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유럽인들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는 듯하다.
좁은 국토에 묘지가 넘쳐나는 우리네 실상을 생각하면, '죽어서 나무로 돌아가기'라고 할 만한 이 새로운 묘지가 그저 예사롭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부산일보에도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