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다섯 돌을 맞는 3·1절 날 지리산 노고단에는 온 누리의 생명과 평화를 위한 뜻 깊은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여든 다섯 해 전 이 땅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함성이 있었다면 이날은 조용한 묵상과 참회가 있었다. 산기슭 곳곳에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쌓여 있고 등산로 그늘진 곳은 얼음이 녹지 않아 무척 미끄러웠다.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생명과 평화의 숙제처럼.
<지리산 생명평화 결사>(www.lifepeace.org)가 주최한 '생명 평화 탁발 순례' 출발 행사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탁발 순례에는 지리산에서 숨져간 좌·우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1000일 기도를 최근 3년 동안 끝낸 실상사 전 주지 도법 스님과 새만금 살리기 3보1배를 한 수경 스님, '지리산 시인'으로 알려진 이원규 시인, 지리산에 사는 황인중씨와 이복희씨 등 다섯 사람이 함께 나선다. 이들은 앞으로 3년 동안을 걸어서 전국 곳곳을 다니며 생명과 평화를 기원하게 된다.
| 생명평화탁발순례
전희식 기자 |
| 탁발 순례단 세 사람 인터뷰
전희식 기자 |
수원대 이주향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의 참석자들 대부분은 전날 실상사 대중방에 모여 하룻밤을 보내면서 탁발 순례의 취지와 일정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아침 8시에 출발하여 이곳에 모였다. 국제적으로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특히 우리가 사는 한반도에서도 남과 북 사이에, 이웃간에, 세대간에, 자연과 사람 사이에 진정한 평화나 생명 기운이 필요한 때에 탁발과 순례를 통해 이를 북돋우고자 하는 것이다.
대부분 사회적 요구나 주장들을 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행진이나 구호로 힘을 과시하고 그래야 주장이 통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평화로워지고자 하는 마음과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을 더욱 키워내서 이 세상의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이 행사는 비록 100여명만이 모여 조촐하게 치렀지만 3년 아니라 10년이라도 지치지 않고 이 일을 해나갈 뜻이 분명해 보이는 자리였다.
행사 중에 수경 스님이 독송한 '생명평화의 경'에는 이 행사의 뜻과 취지가 잘 나와 있다.
"…… 자연을 내 생명의 하느님으로 존중할 때 비로소 인간 생명이 건강하고 안전하며 이웃 나라를 내 나라의 하느님으로 존중할 때 비로소 내 나라가 안전하고 평화롭게 되는 것이며 이웃 가족을 내 가족의 하느님으로 존중할 때 비로소 내 가족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되는 것이며 만나는 상대 모두를 내 삶의 하느님으로 존중할 때 비로소 내 삶이 안전하고 행복해지는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
천주교 신부님과 원불교 교무님들도 오셨고 남영숙 목사님이 기도를 했다. 지리산 흙피리 소년으로 통하는 한태주군이 환송 연주를 했다. 순례단은 성삼재로 내려와 '평화의 주먹밥'을 나누어 먹고 구례와 남원, 하동과 함양 등 지리산 일대 45일간의 순례에 들어갔다. 4월 14일께 정유재란 때 왜병에게 죽은 만여 명 사람들의 귀를 묻어 두었다는 만인의총에서 생명평화 행사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 | "흥겹게 춤추면서 탁발 순례를" | | | [인터뷰]이병철 집행위원장 | | | | - 생명평화 운동을 어떻게 진행하는가.
"두 축으로 진행한다. 한 축이 삶의 현장,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는 탁발순례이고 다른 한 축이 도시나 직장 등에서 하는 ‘평화학교’다."
- 일반인은 어떻게 참여 할 수 있나.
"순례단이 자기 지역을 지날 때 함께 합류하여 걸을 수 있고 그 지역의 생명 평화 문제가 있을 시 함께 의논하고 노력하여 풀어 갈 수도 있다."
- 자발적 순례 조직을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각 지역의 생명 평화의 문제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순례조직을 할 수 있다."
- 생명평화탁발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
"탁발 순례는 생명과 평화에 대한 철학적 깊이를 더욱 깊게 하고, 현재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며 모두가 흥겹게 춤추면서 해 나갈 것이다. 그래서 각종 세미나와 문화 행사와 현실적 과제를 제기하면서 진행 될 것이다." / 전희식 | | | | | |
| | | "탁발은 빌려서 삶을 완성하는 것" | | | [인터뷰]도법 스님 | | | | - 왜 탁발인가.
"탁발은 빌리는 것이다. 남에게 빌리는 것이다. 밥을 빌어 육신을 지탱하고 스승에게서 지혜를 빌어 삶을 완성한다. 탁발은 상대를 더욱 값지게 한다. 밥과 평화와 땅을 탁발하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를 정화하고 한 차원 정화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모두에게 함께 유익한 것이 탁발이다."
- 순례단이 외국으로는 안 나가는가?
"외국으로 나갈 계획은 없다."
- 북한 땅까지 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한반도 전체에 생명과 평화가 넘치기를 바란다."
- 사회적으로 심각한 생명 평화의 의제가 돌출될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순례 일정이 바뀌거나 그렇지는 않겠으나 해당 지역이나 전국적 차원의 문제들을 외면하지도 않을 것이다." / 전희식 | | | | |
덧붙이는 글 | nuri78_151094_5[2].wm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