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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시절, 나는 이유를 다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겨울을 무작정 좋아하게 된 후에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를 만들어내, 그 맘 때 적던 수첩에 적었다.
우선 겨울엔 크리스마스가 버티고 있는 연말이 있었다. 한 해를 보내고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하는 그 설렘이 마음에 들었다.
두 번째 이유는 밤이 제일 긴 계절이었기 때문이었다. 홀로 깨어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온갖 공상을 할 수 있었던 겨울 밤은 아무리 길어도 늘 아쉬웠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내가 겨울을 좋아했던 이유는 눈 때문이었다. 아스팔트만을 보고 자란 나에게 눈은 내가 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연의 섭리로 다가왔다.
눈이 오는 날이면 내 마음은 누렁이마냥 좋아서 ‘공중부양’을 했고,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마냥 즐거웠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고등학교에 올라가던 해 겨울 밤에도 이렇게 눈이 왔다. 나는 워크맨을 들고 나가 음악을 들으며 공중전화 부스에서 좋아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에 몰래 집 밖으로 나오느라, 내 방한대책은 최악의 상태였다. 내 발에는 슬리퍼가 신겨져 있었다. 하지만 꽁꽁 얼어붙은 발을 비비며 나는 가지고 나간 한 움큼의 동전을 다 쓸 때까지 전화 통화를 했다. 거리의 가로등 불빛에 온 도시가 환하게 빛나던 밤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눈 내리던 그 날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전화를 하면서 즐거웠던 그날의 느낌과 떨림만은, 꽁꽁 얼어붙어가는 발가락의 추위만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었다. 이제 눈이 오면 더욱 혼잡해지는 도심의 교통상황과 녹고 나면 질척해지는 거리 풍경이 먼저 떠오른다. 자동차에 부동액을 넣었나, 스노우 체인을 사둘 걸 그랬어. 이 양복은 드라이크리닝을 해야하는데….
이제 내게 더 이상 눈은 낭만과 설레임이 아닌 현실의 기상 변화일 뿐이다.
봄이 온 도시에 엄청나게 눈이 내린다. 아마도 올해의 꽃샘추위가 유난히 심술궂은 모양이다. 창 밖으로 도시를 내려다보다가 문득 그 옛날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언 발을 비비던 내가 생각났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사라져가는 낭만과 설렘을 기억하며, 그 느낌을 되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눈의 낭만은 무슨 놈의 낭만이냐고 핀잔을 주시는 분이 있다면 이외수의 책에서 보았던 문구를 들려드리고 싶다. ‘낭만이 밥 먹여주냐’고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이외수는 대꾸했다. ‘밥은 돼지도 먹는다. 낭만을 아는 돼지를 보았는가.’
덧붙이는 글 | - 김태우 기자의 다양한 글을 싸이월드 클럽 '태우의 글상자(writinglife-woo.cyworld.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