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시각으로 지난 달 14일 오전 11시30분. 뉴욕 JFK 공항 로비에 들어선 한 중년 여성의 휴대폰에 벨소리가 울렸다.
"어디야?"
"공항"
"갑자기 공항은 왜?"
"한국 가려고…"
"……."
수화기 건너편에서 이내 상황을 직감한 듯한 중년 남성의 격앙된 흐느낌이 들려왔다.
"아버지,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지…."
오열과 함께 내뱉은 사내의 목소리에는 짙은 한이 서려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지난 1996년 미 해군 기밀을 한국 측에 넘겨준 혐의로 미국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로버트 김(64·한국명 김채곤)이었고, 장성한 아들과 함께 서 있던 백발의 중년 여성은 그의 부인 장명희(61)씨였다.
상봉을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아들은 아버지의 부음을 그렇게 들었다. 최근 집 근처로 이감되면서 1년만 더 기다려 달라며 그토록 애절하게 부탁했건만, 아버지는 끝내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짧은 통화를 마칠 즈음 아들은 부친이 영원히 잠든 서쪽하늘을 향해 두 번 절했고, 아버지가 누워 계신 서울 하늘은 이날따라 유난히도 뿌옇게 흐려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흐른 지난 달 20일 오후 1시.
장명희씨는 남편을 찾아 윈체스터 교도소로 향했다. 그녀의 손에는 자그마한 봉투가 들려 있었다. <오마이뉴스>가 제공한 로버트 김의 부친 고 김상영 옹의 영결식 사진이 담긴 봉투였다.
부인으로부터 그토록 사랑하던 아버지의 장례식 사진을 받아든 로버트 김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결국 가셨구나…'하는 안타까움과 장남으로서 효도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아쉬움에 한스런 눈물만이 조용히 뺨을 타고 흐를 뿐이었다.
임종은커녕 재회도 이루지 못한 비통함을 가슴에 안은 아들은 이역만리 타지의 육척 담장 안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그렇게 배웅했다.
50여분간의 이날 면회에서 부부는 주로 아버지의 장례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로버트 김은 이 자리에서 "너무나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뿐"이라며 고국의 국민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또 "아무리 말로 해도 사진으로 보는 것만큼 실감이 나지 않을텐데, 큰 도움이 되었다"며 <오마이뉴스>에도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보내왔다. 이 사진에는 고인의 가장 최근 모습이 담겨 있기도 했다.
한편, 박관용 국회의장, 김수환 추기경, 이세중 변호사, 조용기 목사 등 각계 인사들은 지난달 출국에 앞선 장씨를 만나 '(가칭 )로버트 김 돕기 범국민지원센터'의 고문직을 수락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을 약속했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이 자리에서 "조국을 위해 고생한 사람이 잘되는 선례를 남겨야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언급했으며, 김수환 추기경은 "그동안 아무 힘도 되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라며 거듭 후원의 뜻을 밝혔다.
장명희씨는 "모든 걸 잃었지만, 한국을 위한 선택에 후회는 없다"며 "남편이 출감 후 보호관찰 3년을 사면 받아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적극 나서 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