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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만주침략 행위를 연구, 재발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중국 신양의 '9.18전쟁연구회' 회원들. 만주군관학교 1기 출신의 '주화'씨 모습도 있다(왼쪽에서 두번째).
일제의 만주침략 행위를 연구, 재발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중국 신양의 '9.18전쟁연구회' 회원들. 만주군관학교 1기 출신의 '주화'씨 모습도 있다(왼쪽에서 두번째). ⓒ MBC 제공

'잘못 꿰어진 첫 단추’ 친일파 청산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과제인가.

국회의 친일파 인명사전 예산삭감 논란과 이승연씨의 '위안부' 누드 파동, 누더기 상태로 국회를 통과한 친일진상규명법 제정 등 한국사회에서 '친일'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2001년 ‘반민특위, 승자와 패자’를 시작으로 이듬해 ‘53년만의 증언...친일경찰 노덕술’등을 통해 친일문제에 깊이 매달려온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또다시 친일파 청산을 위한 대장정에 오른다.

그간 방송된 친일파 관련 프로그램 가운데 특히 '반민특위'는 무려 다섯 차례나 재방송되는 기록을 세웠으며, '노덕술'편은 심야 교양방송으로는 드물게 두 자리수의 시청률을 기록한 바 있다

2004년판 <이제는 말할 수 있다-'만주의 친일파'는>는 친일파 문제의 마지막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만주의 친일인맥을 파헤쳤다. '만주의 친일파'는 7일 밤 11시30분 안방을 찾아간다.

일본 제국주의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병참기지로써 괴뢰국 만주국을 세운 이래 당시 많은 한국인이 일제에 협력했다. 이들은 만주군관학교, 간도특설대, 건국대, 대동학원, 협화회 등 여러 분야에서 일제에 기생하고 개인의 이익을 도모했으며 민족을 배신했으나 해방 뒤 친일파 청산 논의에서 벗어나 있다가 민족분단과 독재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으로 부상했다.

'만주의 친일파'는 일제 당시 만주국내 한국인들의 친일행적을 현지취재를 통해 살펴보고, 이들이 한국사회 주류로 부상하는 과정을 추적했다. 이로써 친일문제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지 성찰하게 될 것이다.

친일청산 논의에서 만주 친일인맥 문제는 친일 시비의 마지막 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만주 친일인맥 중 윤상필, 이범익, 서범석 등 거물들은 모두 사망하거나 소련군에 의해 청산당하였다.

만주신경군관학교 2기 졸업앨범에 실린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
만주신경군관학교 2기 졸업앨범에 실린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 ⓒ MBC 제공
반면 이 프로그램에서 거론되는 이선근,박정희, 정일권, 백선엽, 신현준, 이주일, 이한림, 최규하, 강영훈 등은 해방후 반민특위의 친일파 재판에서도 정보부족, 친일행적 경미 등으로 국내파 친일인사들에 비해 청산논의에서 상대적으로 한 발 비껴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수 개월간에 걸친 만주 현지취재 등을 통해 제작진은 그들의 만주시절 행적을 중국인 동창생(군관학교, 건국대학 등)을 통해 추적하였고, 또 당시 영상, 문헌 자료 등을 샅샅이 뒤져 만주시대를 복구하였다.

그 결과 제작진이 내린 결론은 만주국 시대는 한국의 타임캡슐이라는 것. 특히 박정희 쿠데타 이후 만주국과 한국은 거의 완벽한 상사관계라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아울러 해방후 20년만인 1965년에 체결된 한일협정은 양국간의 '만주인맥'이 주도한 것으로, 만주인맥은 해방 이후에도 실체적 존재로서 한일관계를 왜곡시켜 왔다고 할 수 있다.

만주에서 고위공직자, 군 장교 등으로 군무했던 인사들 가운데 생존자는 거의 없다. 생존자 가운데 군관학교 출신인 백선엽(봉천군관학교 9기, 전 육군참모총장), 이한림(신경군관학교 2기, 전 건설부장관) 등은 취재를 거부했고, 최규하(대동학원 졸업, 전 대통령)는 건강상의 이유로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끝으로 이번 프로그램은 단순히 만주지역 친일인사들의 행적 추적 이외에도 해방후 중국의 친일파 청산과정 취재를 통해 우리에게 뼈아픈 미청산의 역사의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와 달리 중국은 장개석의 국민당 지역이나 모택동의 공산당 지역이나 공히 나름대로 기준을 세워 친일파(한간 漢奸) 청산과정을 엄정하게 거쳤다. 특히 군관학교, 건국대학 졸업생들도 확실한 항일투쟁 경력이 있거나 엄정한 역사비판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새로운 중국 건설에 동참할 수 없게 하였다는 것을 적시했다.

이는 해방후 분단과 독재의 과정에서 청산은커녕 오히려 중용돼 한국사회의 상층부를 구성한 우리의 사례와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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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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