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500만 내외의 네티즌이 방문하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정운현(45) 편집국장이 '다 떨어진 헌 고무신짝을 부여잡고'라는 칼럼을 통해 친일진상규명 특별법 처리와 친일인명사전 편찬 예산 삭감을 통탄하고 나선 것은 연초인 지난 1월 7일.
특히 국회에서 친일인명사전 편찬비 5억원이 전액 삭감된 것을 비판한 이 칼럼은 네티즌들의 들불같은 호응을 얻어 모금운동을 개시한지 열하루만에 5억원의 사업비를 민족문제연구소에 안겨놓고 말았다.
인터넷상에서 네티즌들의 친일인명사전 편찬기금 5억원을 들풀처럼 살려낸 <오마이뉴스> 정운현 편집국장을 5일 서울 종로구 내수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정 국장은 10여년째 친일문제를 연구해온 이 분야의 전문가다. 다음은 정 국장과의 인터뷰 요약.
- 친일인명사전모금 11일간의 감동 드라마 어디서나 화두입니다. 그 숨겨진 얘기들을 듣고 싶어 오늘 정국장님을 찾아뵙습니다만.
“어허, 그거 이제 다 끝난 얘긴데요. 당초 예정했던 5억원 모금을 끝낸 후 모금 창구를 민족문제연구소로 넘겼습니다. 특별히 숨겨진 얘기라 할 것까진 없고... 그러니까 지난 1월 7일이었지요. '다 떨어진 헌 고무신짝을 부여잡고'란 제 칼럼에 부산에 사는 한 네티준이 댓글을 달았습니다. 얘긴즉 국회에서 삭감한 인명사전 편찬 예산을 네티즌이 모아보자는 아주 조리정연하고 설득력 있는 내용의 글이었지요.”
- 정말 의외의 말씀을 듣게 되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제가 그 댓글을 우리 오마이뉴스 사내게시판에 퍼온 글로 올려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괜찮다는 의견이 나와 이번엔 다시 네티즌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해보자, 오마이가 앞장서면 참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튿날인 8일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에게 이 제안을 했지요. 당일 오후3시 바로 임헌영 소장과 조문기 이사장을 모시고 친일인명사전 편찬 모금운동을 시작했지요.”
- 인터넷상 네티즌들의 약속이란 게 사실 오프라인, 현실에서 이어지기가 만만치 않았을텐데요.
“네티즌들이 기사에 댓글을 다는 것과 실지로 성금을 내는 문제는 좀 다릅니다. 은행을 찾아가거나 텔레뱅킹 등으로 모금구좌에 돈을 직접 내는 것은 엄청난 적극성을 요하는 것이지요. 5억원을 모금하는데 무려 3만명에 달하는 네티즌들이 동참했다는 것은 엄청난 것이지요. 당초 계획은 3월1일까지 1억원, 이어 8월15일까지 5억원을 모금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죽은 친일인명사전을 네티즌들이 살려낸 셈이죠”
- 그런데 11일만인 지난 1월19일 5억원을 달성하지 않았습니까. 도대체 그 저력이 어디서 나온 겁니까.
“무엇보다 친일문제 청산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었던 것이 가장 큰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같은 분위기는 있엇지만 이를 하나로 모아줄 구심점이 없었는데 이번 친일인명사전 편찬비 모금운동이 그 열기를 하나로 모은 셈이지요.
그리고 우리나라 네티즌 수가 엄청납니다. 최근에 나온 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네티즌 수가 3천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4에 해당하는 숫자지요. 그들은 컴퓨터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의사소통을 하며 자기주장을 펼칩니다. 이제 오프라인이 의제를 설정하고 또 확산하는 시기는 가고 있는 것 아닌가요.”
- 하긴 촛불집회나 친일인명사전 등이 모두 종이신문에서는 불가능했다는 국장님 지적이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그렇지요. 특히 이번 모금에는 해외 네티즌동포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했지요. 인터넷 정치가 곧 선거문화 변화로, 또 촛불집회가 집회문화 변화로 나타나듯이 이제는 인터넷이 세상의 변화를 견인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 친일인명사전 모금운동을 계기로 충분히 제2, 제3의 프로젝트들이 가능할 듯싶습니다만.
“5억원을 10여일만에 달성했다는 건 다른 분야에서도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또 국민적, 네티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아이템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리라 봅니다. 이를테면 정치개혁, 청년실업해소, 사회고질적 문제인 소수자 인권 개선 등도 하기나름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 | | 정운현 편집국장은 누구? | | | | 경남 함양출생
대구고 졸업
경북대 도서관학과 졸업
고려대 언론대학원 졸업(석사)
중앙일보 조사부, 현대사연구팀 기자
대한매일 문화부 차장
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저서]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친일파 1, 2, 3> <창씨개명> <서울시내 일제유산답사기> <증언 반민특위>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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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후 승전국가에선 전범재판이, 또 외세지배에서 해방된 국가들은 반민족행위자 처단에 나섰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볼 때 한 시대가 끝나면 그에 걸맞는 과거사 청산이 있아왔다. 우리 역시 조선시대에 매서우만치 엄정한 역사청산이 있었다. 그러나 유독 해방후 친일반민족 행위자 청산만 실패한 셈이다. 이는 미군정3년이 하나의 장벽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대체 이놈의 나라는, 이놈의 백성들은 언제까지 친일파 논쟁으로 세월을 보낼 것인가, 대체 언제나 정신을 차릴 것인가'를 서두로 문을 연 정 국장의 칼럼이 5억원의 성금모금으로 이어진 단초가 됐지만 해방 이후 50여년을 거북이처럼 걸어온 친일청산 분노가 가슴가슴 서렸기에 우리는 <오마이뉴스>가 올려놓은 이 화두에 불처럼 입안을 데었더라도 기꺼이 울컥 삼켜버렸던 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3월8일자 <수원일보>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