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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술, 전쟁같은 사랑의 기록>
책 <술, 전쟁같은 사랑의 기록> ⓒ From BOOK
사람들은 왜 술을 마실까? 세상의 고통을 잊기 위하여, 술이 주는 몽롱한 즐거움을 찾기 위하여, 모임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하여 등등 술을 마시는 이유도 가지가지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술을 마심으로써 이성에서 벗어나 한가닥 풀린 정신으로 일상에서 탈출하려 시도한다는 점이다.

이 책 <술, 전쟁 같은 사랑의 기록>은 원제가 '술 마시기, 그 러브스토리'(Drinking, A Love Story)다. 도대체 얼마나 술을 사랑했기에 '러브스토리'라는 제목을 달아 놓았을까? 이 책은 잘 나가는 한 여성 언론인이 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인생이 망가지는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알콜 중독자라고 하면 왠지 떠오르는 편견이 '우리 주변에는 없을 거야'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책의 저자는 '사회적으로 유명하고 잘 나가는 당신 또한 알콜 중독자가 될 수 있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녀는 책의 서문에서 자신은 사랑에 빠졌지만 그 사랑이 자신이 아끼던 모든 것을 망쳐버렸기 때문에 결국 헤어졌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물론 그 헤어짐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그녀 스스로 '알콜 중독자'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너무나 많은 시련과 고통의 긴 강이 흘렀다.

나는 술 마시는 느낌을 사랑했고, 세상을 일그러뜨리는 그 특별한 힘을 사랑했고, 정신의 초점을 나 자신의 감정에 대한 고통스런 자의식에서 덜 고통스런 어떤 것들로 옮겨 놓는 그 능력을 사랑했다. 나는 술이 내는 소리도 사랑했다. 와인 병에서 코르크가 뽑히는 소리, 술을 따를 때 찰랑거리는 소리, 유리잔 속에서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 술 마시는 분위기도 좋아했다.

그녀는 술을 좋아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거기에 중독되기까지 서서히 진행되는 알콜 중독의 실체를 밝힌다. 그녀는 평범한 술꾼이 알콜 중독이라는 구체적인 선을 넘어버리는 것은 어떤 단순한 이유, 어떤 한 순간, 어떤 단일한 심리적 사건을 통해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녀의 표현처럼 '아주 느리고 점진적이며 집요하고도 불가해한 형성의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그녀 자신이 알콜 중독 과정에 놓여 있으면서도 자신이 중독되어간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그녀는 알콜 중독자들을 위한 모임에 나가면서 차츰 나아지는데 이 모임에서는 알콜 중독을 '삶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간략하게 정의한다. 그녀는 이 표현을 간략하지만 상당히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렇게 유약했고, 사람들의 반응에 과민했으며(남들에게 오해를 받으면 내 영혼의 일부가 허물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근원적 열등감, 외로움과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 (중략) 우리는 하루 종일 전문성의 가면 뒤에 숨어 지낸다. 그리고 일터를 떠나서는 다시 술병 뒤로 숨는다.

저자는 '내가 술을 좀 많이 마시긴 해. 하지만 상황이 이런데 어쩌겠어? 나는 좀 마셔도 돼' 라는 생각이 매우 위험한 판단임을 이야기한다. 어떠한 상황도 술 뒤에 숨는 비겁함을 용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술을 마시면서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남을 속이는 것은 이미 심각한 알콜 중독 상태다. 남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는 그것이 부족하다고 느껴 2차, 3차를 가고 집에 와서 또 한 잔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위험한 수준인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것을 위험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이것이 문제다.

결국 그녀는 만취한 상태에서 친구의 두 딸을 업고 안은 채 아스팔트길을 미친 듯이 달리다가 넘어져 무릎을 13바늘이나 꿰매는 사고로 정신을 차린다. 자신의 심각성을 깨닫고 알콜 중독자 모임에 참여하면서 본인이 매우 심각한 알콜 중독 상태임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이 뒤죽박죽한 삶에서 빠져 나온다. 그 과정은 힘들고 지친 괴로움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이 진흙탕에서 겨우겨우 몸을 건진 행운아다. 알콜 중독자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 중에서 겨우 사 분의 일만이 이런 과정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게다가 알콜 중독에서 벗어났다고 하여 안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다시 중독 상태에 들어갈 수 있는 위험에 아무렇지 않게 노출되어 있다. 끓임 없이 술을 권하는 사회, 술이 없이는 원활한 사회 생활 또한 사라져 버리는 사회가 알콜 중독 치유자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최근에는 알콜 중독이 정신력 약화로 인한 허무감에서 오거나 유전자 조합 구조나 유전 요인에 의해 비롯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알콜 중독이 더는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일종의 치료해야만 하는 '질병'인 것이다.

이 책은 소위 말하는 이 시대 최고의 '엘리트 여성'이 밝히는 알콜 중독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 있다. 기존의 알콜 중독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냉대를 버리고 그들의 치유를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할 때에 이 세상은 좀더 편하고 밝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술, 전쟁 같은 사랑의 기록

캐롤라인 냅 지음, 고정아 옮김, 나무처럼(알펍)(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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