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개(犬)와 기자
개에 대해 인류는 상반된 두 가지 감정을 갖는다. 충직, 책임, 애정, 신뢰의 대상으로 느끼는 친구나 가족 같은 친밀감, 아니면 비굴하고 비열하며 하찮은 동물에 대한 혐오감이다.
1000개가 넘는 개 관련 한국 속담엔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든가 '개만도 못한 ×'처럼 비굴한 천격 또는 인간이하의 품성을 빗댄 것들이 더 많다.
서양에선 "나를 사랑하거든, 내 개도 사랑하라(Love me, love my dog)"는 속담이 무조건 승복을 요구하는 의미로 쓰이듯, 개와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한 경구가 많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 같다"는 욕이며 '개보다 못한 취급'은 받기 싫은 게 인지상정이다.
86년 5월 슐츠 당시 미국 국무장관의 방문에 앞서 미측 경호팀이 미8군 군견을 정부중앙청사 외무장관실에 끌고 들어와 폭약 냄새를 맡게 해 외교문제화한 일이 있었다. 그들은 보안점검수칙이라고 우겼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분통 터지는 주권침해였다. 95년엔 미군 헌병이 풀어놓은 군견에 한국인이 크게 물렸는데도 미군측은 영내 침입을 막기 위한 정당한 조치라 주장, 동두천 주민 시위사태를 불렀다.
이번엔 한국 방송 취재진 3명이 이라크에서 미군에게 수갑이 채워진 채 4시간 이상 억류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폭발물 탐지견이 취재진의 가방 옆에 앉은 게 화근인데, 우리 대사가 신원을 확인하고 수갑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는데도 거부했다고 한다. 한국 외교관이나 기자보다는 자기네 개를 훨씬 더 신뢰한 것이다.
연일 터지는 테러사건에 과민해진 미군의 처사는 이해 못할 바 아니나, 미국 내에서 기자들에게 '개만도 못한' 신뢰도를 보였다가는 엄청난 파문과 문책이 있었을 것이다. "개가 사람을 무는 건 뉴스가 안 되나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는 걸 배운 한국 기자들은 이럴 때 어찌해야 하나. 군용견을 물어야 하나. / 차미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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