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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회의가 끝나자 민주당 조순형 대표와 유용태 원내대표등 의원들이 짐을 싸 본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탄핵이라는 이름의 야만

기어코 한나라당과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탄핵을 발의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입버릇처럼 부르짖던 탄핵을 몸소 관철시킬 기세다. 그 장한 기개를 전두환에게 보여주었더라면 국민들은 열광적인 지지와 격려를 보였을텐데 참으로 아쉽다.

전두환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헌정을 능욕하고 피로 범벅된 권좌에 앉은 후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을 밥먹듯이 위반하였을 때 그들은 탄핵의 '탄'자라도 입에 올린 적이 있던가?

이번에 야당에서 발의한 탄핵소추안을 보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 원인은 크게 세 가지이다.

이를 요약하면 첫째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를 유도하고 총선민심에 영향을 미치는 언행을 반복하여 헌법 및 선거법을 위반하였고, 선거개입을 경고하는 중앙선관위 결정을 정면으로 묵살하여 법치주의 및 삼권분립을 근간으로 하는 헌법정신을 파괴하는 등 헌법을 위반한 점, 둘째 노무현 대통령 자신과 측근들 그리고 참모들의 권력형부정부패로 인해 국정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적 법적 정당성을 상실한 점, 셋째 국민경제와 국정을 파탄시켜 민생을 도탄에 빠뜨림으로써 국민에게 IMF위기 때보다 더 극심한 고통과 불행을 안겨주고 있는 점 등이다.

그런데 야당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전혀 설득력이 없다. 첫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의사를 인터뷰 등을 통해서 밝혔다는 점에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였다고 볼 근거가 미약하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법 위반결정에 대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납득하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존중한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대통령은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을 묵살한 사실이 없다. 더 나아가서 헌법과 법률의 기본정신을 훼손한 사실이 없다.

둘째 노무현 대통령 자신과 측근들의 권력형 부정부패사건은 현재 특검과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 중인 상태이다. 또한 아직까지 노무현 대통령 자신과 측근들의 부정부패혐의가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집행'과 연관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셋째 국민경제를 파탄시켰다는 것은 그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야 하는 헌법상의 탄핵사유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야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고 있는 헌법은 야당의 표현대로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을 근간으로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입법기관인 국회에 행정부를 견제할 최후의 수단으로 대통령 등에 대해서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였을 때 탄핵소추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는 대통령이 헌법이나 법률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행위를 하는 등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행위를 하였을 때로 한정해서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할 것임은 당연하다.

사정이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탄핵을 발의한 한나라당 및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159명의 무모함과 대담성(?)은 가히 경악스러운 수준이다. 누가 봐도 그들의 저의는 이번 4·15총선에서 의회권력을 송두리째 박탈당할지 모른다는 데 대한 공포와 의회권력을 잃지 않으려는 천박한 욕망에서 기인한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번 탄핵발의는 그 성격상 의회권력에 의한 쿠데타에 다름아니다.

또한 한편으로는 지난 대선에서의 패배를 아직까지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한국사회 주류(main current)들의 집단적 퇴행심리의 발로이기도 할 것이다.

대통령이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정신적 여당의 승리를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한 발언이 헌법상의 탄핵사유라고 한다면, 국세청을 동원하여 기업들로부터 선거자금을 불법모금하고 기업들을 협박해 차떼기, 책떼기 등을 자행한 정당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송두리째 위반하였으니 헌법이 명시한 정당 해산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것이 아닐까?

민주정당이라는 법통은 헌신짝 버리듯 내던지고 오직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적개심으로 민정당의 후신(後身)인 한나라당과 동거하고 있는 민주당에 대해서는 달리 언급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겠다. 이성을 잃은 그들의 행동은 마치 상처입은 짐승이 마지막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을 연상케한다.

이제 국민들에게 공이 넘어왔다

생각해 보면, 이 혼란과 진통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성숙하기 위해서 반드시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이며 성장통이라고 할 수 있다.

권위주의 시대에 대통령은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이자 거의 전부였다. 3권 분립이라는 헌법의 기본정신은 헌법교과서에서나 발견할 수 있었고 모든 헌법기관과 국가기관은 대통령을 위해서 존재하였으며, 대통령의 지시와 명령은 헌법과 법률보다 위에 있었다. 박정희가 남발한 긴급조치들을 한번 생각해보라! 사정이 이러할진대 국민의 기본권인들 제대로 보장이 되었을 리가 없다.

이제야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그리고 고귀한 피와 눈물과 땀으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의 진정한 출발선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가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 선거법 위반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과 검찰이 대통령의 측근을 위시한 정치권에 대해서 법률과 원칙에 입각한 수사를 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바야흐로 헌법과 법률이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가 그리 멀지 않은 것이다. 이제 공은 우리 국민들에게 넘어왔다. 대한민국을 진정한 의미의 민주공화국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힘은 바로 우리 국민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곧 치르게 될 4·15총선에서의 투표행위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의미의 민주공화국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아니면 일부 기득권층의 특권이 버젓이 용인되는 봉건사회로 남을지는 전적으로 우리 국민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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