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선 사진전 'DECCAN'은 한 눈에 그 독특한 맛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이러저리 살펴보고 또 들여다 본 후에라야 작은 액자 틀에 갇혀버린 몇 자락 빛줄기의 다양한 맛을 음미할 수 있다.
보통 첫 시선을 통해 ‘아 !’하는 감탄사를 나오게 만드는 다른 사진작품들과 달리 몇 번을 곱씹어 보아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보는 이를 곤란스럽게 하는 이유 가운데 우선 ‘인화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을 전시할 경우 보통 인화지에 올려놓는 것이 일반적인데 비해 이 번 작품들은 하나같이 ‘닥종이’ 질감이 나는 종이 위에 영상들을 담아 놓았다. 닥종이만이 가지는 이러한 독특한 질감은 마치 사진을 한 폭 서정적인 수채화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러한 질감에 의한 효과는 전시되어 있는 30여 점의 작품에 걸쳐 모두 나타나는데 이로 인해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보는 이에게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시선을 안겨준다.
사진이 인도 남부의 모습을 소재로 하고 있는 탓에 강렬한 인도풍의 원색이 상당수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화지의 독특함은 살아있는 인도를 엷은 비단 커튼이 쳐져있는 창문 사이로 거리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러나 단순히 인화지의 독특함만이 배정선의 사진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바라보는 다양하고 아름다운 남인도의 이국적인 모습이 다채롭다. ‘사진은 끊임없이 무한(無限)과 자유와 안식을 줍니다’라는 작가의 이야기처럼 액자틀 안에 담긴 빛 조각들은, 분명 이전에 보아오던 사진들과 달리 자유로운 작가의 시선이 담겨있다. 그것은 ‘예쁘고 멋진 사진’이나 ‘달력 사진’에서 볼 수 있는 틀에 박힘은 전혀 아니다.
그저 눈 가는데로, 작가의 발자국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여행가로서의 편안하고 자유로운 기억의 단편들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재들 또한 지극히 일상적이다. 나무 그늘 아래서 잠들어 있는 아이들, 빨래터에 널부러져 있는 옷가지들, 온갖 상품들로 가득한 구멍가게 등, ‘작품’으로서 사진이 갖는 중압감을 가벼이 털어낸 작가의 시선이 자유롭기만 하다.
부산 초량동에 위치한 프랑스 문화원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배정선 사진전은 오는 4월 15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