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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본 카와카와의 공중화장실. 화려한 색상의 세라믹 기둥과 풀들이 자라나고 있는 지붕이 인상적이다.
바깥에서 본 카와카와의 공중화장실. 화려한 색상의 세라믹 기둥과 풀들이 자라나고 있는 지붕이 인상적이다.
1970년대 초, 자신의 작품 전시회 준비를 위해서 처음 뉴질랜드 땅을 밟은 그는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매료돼 뉴질랜드를 제2의 조국으로 삼았다. 이후 20여 년을 오스트리아와 뉴질랜드를 오가면서 작업하다가 나중에는 뉴질랜드에 더 오래 머물렀을 정도로 뉴질랜드의 자연과 사람들을 사랑했다.

생애의 마지막 몇 년 동안을 뉴질랜드의 북섬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마을 카와카와(Kawakawa) 근처에서 보냈던 그는, 1999년 그 마을의 오래된 공중화장실을 헐고 새로 공중화장실을 짓게 되었을 때,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은 독특한 공중화장실을 설계해 마을사람들에게 선물로 기증했다.

곡선으로 처리된 벽들과 풀이 자라나는 지붕, 이국적인 세라믹 기둥과 재활용 병들을 벽에 박아 빛이 스며들어오는 창문으로 활용하는 등 자연과의 조화와 환경 친화를 무엇보다도 우선시한 그의 건축이념을 공중화장실 설계에 담았다. 마치 예술작품과도 같은 모습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카와카와의 이 공중화장실은 문을 열자마자 뉴질랜드 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화장실 덕분에 관광객 밀려들어

작년 4월 여행길에 들른 카와카와 공중화장실 앞에서 딸아이가 포즈를 취했다.
작년 4월 여행길에 들른 카와카와 공중화장실 앞에서 딸아이가 포즈를 취했다. ⓒ 정철용
이에 힘입어 이 화장실은 전 세계의 6000여 공중화장실의 장단점을 비교해 놓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 '화장실 일기'(The Bathroom Diaries)에서 여행객들이 뽑은 2002년 최우수 화장실로 선정되었다. 이전에는 그냥 차를 타고 지나쳐버리는 작고 볼품없는 촌락에 불과했던 카와카와 마을은 이제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호경기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훈데르바세는 이 공중화장실의 공사가 끝나고 두 달 만인 2000년 2월에 세상을 뜨는 바람에, 카와카와의 공중화장실은 그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아울러 이 공중화장실은 남반구 내에 남아 있는 그의 유일한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훈데르바세의 마지막 유작이 된 이 공중화장실은 단지 전시용이 되어버린 뒤샹의 '샘'과는 달리, 예술작품으로서의 심미성과 함께 실제로 그 안에서 급한 용무를 해결할 수도 있는 공중화장실로써의 기능성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앞서 있다.

카와카와 공중화장실의 내부. 크기가 제멋대로인 벽면과 바닥의 타일과 재활용 와인병 등을 이용한 창문 처리가 독특하다.
카와카와 공중화장실의 내부. 크기가 제멋대로인 벽면과 바닥의 타일과 재활용 와인병 등을 이용한 창문 처리가 독특하다.
그런데 뒤샹의 작품이 미술계에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듯이, 훈데르바세의 작품도 뒤늦게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다.

관광객이 너무 몰려도 문제

재활용 유리병 창문은 채광의 기능과 함께 오래된 고딕 성당의 스테인글래스 효과도 느낄 수 있다.
재활용 유리병 창문은 채광의 기능과 함께 오래된 고딕 성당의 스테인글래스 효과도 느낄 수 있다. ⓒ 정철용
별로 크지 않은 이 작은 공중화장실에 워낙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볼일을 보는 바람에 악취가 너무 심하게 나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여름철에는 하루에 4번이나 화장실 청소를 하지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악취가 가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3월 초에 열린 카와카와 주민자치회에서는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아 악취가 심하게 나자 이 공중화장실의 폐쇄 또는 유료화를 신중하게 검토했다.

주민자치회의 의장인 노마 쉐퍼드(Noma Shepherd)는, 공중화장실로서의 수용 한계를 초과하고 있으므로 화장실로서의 기능은 폐쇄하고 예술품으로서만 보존하자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주민자치회에서는 새로운 공중화장실을 짓기 위한 예산 12만 달러(한화로 약 9000만원)를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배정했다.

그러나 훈데르바세와 8년 간 함께 작업했던 리차드 스마트(Richard Smart)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는 <뉴질랜드 헤럴드>지에 "훈데르바세는 계속 이 화장실이 쓰여지기를 원할 것이다. 이 화장실은 사당처럼 모셔지는 죽은 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면서, 전일로 근무하는 청소부 겸 여행객 안내인을 고용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일제 청소부를 고용하라

이러한 리차드 스마트의 주장에 대해 오스트리아에 소재한 훈데르바세 재단도 동조하고 나섰다. 재단은, 카와카와 주민자치회의 계획은 한 예술가 및 그가 마을 주민들에게 남겨준 유산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비영리 재단인 이 재단의 이사장 요람 하렐(Joram Harel)은 <뉴질랜드 헤럴드>지에 밝힌 공개서한에서 카와카와 주민자치회에서는 전일제 청소부를 고용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강한 반대에 부딪힌 카와카와 주민자치회는 최종 결론을 주민들의 토론에 부치는 것으로 한발 물러섰으며, 분위기가 반전돼 전일제 청소부를 고용하는 방안이 유력시되고 있다.

그러나 카와카와 마을을 관할하는 파 노스 지역 의회(Far North District Council)는 훈데르바세의 공중화장실이 당초 설계한 용량을 초과해서 계속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또 다른 화장실의 추가 건설은 앞으로도 불가피할 것으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파 노스 지역 의회의 장기 계획안에는 카와카와 주민자치회에서 요청한 12만달러의 예산이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고 파 노스 지역 의회 대변인 릭 맥콜(Rick McCall)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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