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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남자충동>
ⓒ 원호성
무대에 조명이 비치지면, 한 남자가 조용히 무대에 걸어나와 선다. 낮게 깔리는 베이스의 음을 들으며, 그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소개를 한다.

"내 이름이 장정이여, 이장정. 튼튼허고 기운좋은 '으른' 되라고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여. 이장정!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디 말여. 그기 '꼴레오네'여. 영화 <대부>으 '알 파치노'여."

연극열전의 네번째 작품 <남자충동>은 <대부>의 마이클 꼴레오네에 대한 장정의 동경과 감탄사로 포문을 연다. 한국 영화 속 조폭들이 빤스를 벗어던지고, 호랑나비 춤을 추며 관객을 웃기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는 시절에, <남자충동>의 장정은 남자가 진짜로 추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려고 한다.

"그기 정원이 넓직허고, 집 앞으 시퍼런 호수 있고, 뒤로 산책로 난 숲이여. 나으 패밀리들이 거서 산단 말이시! 내가 패밀리를 지키는 일이라믄 워떤 적이든 가차없이 공격해 부러. 사내라믄 그려야 안 쓰겄소. 존경받는 가장! 고거이 내 꿈이여."

장정은 연극 내내, 패밀리를 강조한다. 조직도 중하지만, 그는 조직을 위해 가족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그런 인간이 아니다. 상대 조직의 보스를 암습하러 가는 순간에도 그는 집안 문제에 신경을 먼저 쓰며, 내가 조직을 이끄는 목적은 집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남자충동>은 마초성을 지닌 남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남자의 우월성을 이야기하는 건달들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정정당당함은커녕, 별 볼일 없는 존재라는 것이 드러나고 만다. 힘을 이야기하지만, 그 힘을 올바르게 쓰지는 못한 채, 단지 '가오'를 잡는 것만 추구한다. 이러한 남성들의 허상은, 가장 남자답지 못한, 트랜스젠더 캐릭터인 '단단'의 대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머 그려도 가만 따질라믄 내 인생이 실패는 실패제. 집 앞이 시퍼런 호수, 뒤루는 산책로난 숲, 거서 내 패밀리가 살었으믄 혔는디, 실패혔제. '알 파치노' 겉은 보스가 못되고 죽었응께 실패여. '알 파치노'도 '꼴레오네'도 죽으. 봉께 혼차서 쓸쓸히들 죽으. 그기 사내여. 그기 멋이여. 참말이여. 사내으 멋이여."

장정은 죽어가는 순간에야 비로소 남성성의 허무함을 깨닫는다. 그가 죽어가며 본 것은, 생사를 함께 한 동생들이 아니라, 바로 집을 떠난 어머니, 그가 손목을 자른 아버지, 정신이 나간 여동생의 얼굴이었을 것이다. 남자가 태어나, 살아가며, 남자답게 사는 것보다, 가정을 지키며 사는 것이 훨씬 값된 것임을 그는 죽음으로 배운 것이다. 그래서 옛 말에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고 하지 않았던가.

<남자충동>을 보는 또 다른 재미는, 바로 욕설과 사투리의 만남이다. 건달 집단을 다룬 탓에, 이 연극에는 신랄한 사투리와 욕설이 등장한다. 그러나 마치 욕쟁이 할머니에게 욕을 들으면 푸근하듯이, 이 욕설은 거부감 대신 푸근함으로 다가온다. 거기에 1막과 2막의 사이에 관객에게 집에 가지 말라고 귀엽게 협박하는 건달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충분히 유쾌하다.

다만 아쉬웠던 점이라면, <남자충동>은 1997년도 초연 당시의 배우들이 그대로 출연한 A 캐스팅과, 안석환씨와 황정민씨 대신에 최광일씨와 조혜련씨가 출연한 B 캐스팅의 두 가지 캐스팅이 있다는 점이다. <남자충동>을 본 첫번째 느낌은, 완전히 안석환이라는 배우를 위한 맞춤 연극이라는 것이었다. 비록 최광일씨의 연기가 많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안석환씨의 능글맞은 미소를 표현해 내기에는 부족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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