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시간이 가까워 오면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저녁6시 무렵, 넓은 광장 가운데에 동그랗게 둘러선 채 머나먼 이국땅 베를린에서 탄핵규탄집회를 시작했습니다. 집회는 한국의 여느 집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잠시 민주열사를 추모하는 묵념을 한 후 본 집회 순서를 가졌습니다.
탄핵 전후의 상황에 대한 경과 보고 이후 진행된 자유 발언 순서. 많은 교포들은 미리 준비해 온 원고를 직접 낭독했습니다. 한국을 떠나 있지만 여전히 그분들이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조국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날이 어두워 준비해온 온 원고가 잘 보이지 않아 한참 동안 들여다 보시며 읽으시느라 시간이 꽤 갔지만 모두들 웃음과 박수로 끝까지 격려했습니다.
한 유학생은 최병렬, 조순형 대표가 살신성인 정신으로 양당을 이끌고 낭떠러지까지 갔다고, 우리가 할 일은 이제 그들을 낭떠러지로 미는 일이라고, 이번에 확실히 밀어주자고 해서 참가자들의 큰 호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부슬 부슬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70여명의 참가자 대부분은 한국의 촛불시위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계속 자리를 지켰습니다.
집회 중간에 계속 '탄.핵.반.대. 민.주.수.호' 구호를 외쳤는데 세번씩 반복해 외치다 말이 엉켜 탄핵수호라고 외치고 나서 서로를 바라보며 웃으며 즐거워 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시국선언문을 함께 낭독한 후에는 누군가의 즉석 제안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노래를 부르며 원을 그리며 몇바퀴를 빙글 빙글 돌았고 다시 구호를 외친 후 아쉬운 마음으로 집회를 마쳤습니다.
집회를 마친 후 교포분의 제안으로 평가회를 겸해 인근 한인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평가와 함께 이후 대책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40여명이 참석한 뒷풀이 모임은 각자 바쁘게 살아가면서 좀처럼 함께 할 기회가 없었던 교포, 유학생들이 인사를 나누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참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집회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하며 한 유학생은 87년 6월 항쟁에 참여했던 경험을 나누기도 했고 한 교포분은 태어나 '친정부' 데모를 해보기는 처음이라고 이야기 하셔서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후 대책에 대한 논의에서는 일단 한국의 상황을 주시하며 계속 연락망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한국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몸싸움하는 장면이 독일 TV에 방영된 후 이곳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안그래도 창피한 데 얼마나 더 나라망신을 시키려고 시위를 하느냐"는 식의 글들이 제법 올라왔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는지 아직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정치인들에게 이렇게라도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적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니네 나라 국회의원들이 저러고 있는데 너는 지금 뭐하냐'는 반응을 보이는 독일인들도 제법 있었구요.
'제발 다시는 이런 일로 머나먼 이국땅에서 양초를 손에 들고 집회를 하는 일이 없었으면....'
비바람에 이내 꺼지는 초에 연신 다시 불을 붙이며 마음속에 품고 또 품었던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