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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를 쓴 시인 칼릴 지브란이 로마를 여행하던 중, 중년남자 하나가 부서진 성터에 앉아서 옛 로마의 잔해를 오랫동안 응시하는 것을 보았다.

지브란이 그에게 물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삶을 바라보고 있소."

대답은 아주 짧고 명료했다.

"오, 그것뿐입니까?"
지브란이 다시 물었다.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요."

과거의 잔해 속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사람만이 갖고있는 그런 특성이 인류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해 가는 삶의 관찰자들.

반면에 '과거는 흘러갔다' '중단 없는 전진을 위해 죽은 시간은 버려야 한다'며 역사의 흔적을 마구 지워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류의 사람은 서울에도 있고 시드니에도 있다.

▲ 시드니 록스 지역 전경
ⓒ rocks.com
문화유산을 지켜낸 건설노동자들

최근 서울에서 전해오는 보도에 의하면, 청계천 복원공사 현장에서 문화재들이 속속 발견된다고 한다. 특히 동대문 쪽에서 발견된 오간수문지(五間水門址) 등은 조선 중기(영조)의 토목공사 구조를 알아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문화재들이 '서울시의 불도저 행정' 때문에 크게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아울러 문화연대, 참여연대 등 11개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올바른 청계천 복원을 위한 연대회의'가 공사 강행을 저지하고 있다는 뉴스도 접했다.

1960-70년대의 시드니도 그랬다. 도시산업화에 따른 인구의 도시집중으로 불가피하게 새로운 시드니를 건설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호주의 많은 문화유산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200년 가까이 된 주택과 공공건물은 한국의 문화유산에 비하면 하찮은 것들이지만, 200년 역사가 전부인 호주의 백인역사 속에선 이런 것들이 아주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 '캐드맨의 집(Cadman's cottage)' 호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랜된 건축물로, 시드니 하버에서 록스로 진입하는 길목에 있다.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과 가장 오래된 우체국, 선술집 등을 지키기 위해서, 시드니에선 시민단체가 아닌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나섰다. 그 건축물들이 사라지면 역사도 함께 사라진다며, 흙 묻은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파업을 결행한 것이다.

건설노동자들은 건물해체작업을 거부했다. 그들의 단체행동을 '그린 밴스'라고 불렀다.(Many workers refused to work on demolition jobs. These union actions were called 'green bans')

호주 최초의 마을인 '록스(The rocks) 사수작전'이 그린 밴스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1974년, 호주의 상징물인 오페라 하우스의 개관에 맞춰 그 근처에 위치한 록스를 재개발하려는 시드니 시 당국의 계획을 저지시킨 것이다.

수소문 하여 그린 밴스의 리더였던 잭 먼디(Jack Mundy, 65)씨를 인터뷰했다. 그는 "한마디로 전쟁이었다"고 말했다. 개발업자들이 동원한 불량배들과 싸우는 것도 힘들었지만,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고 회고했다.

노동조합(trade union)이 지원했지만 부분적이었고, 건설노동자들의 희생과 협조 속에서 투쟁이 계속됐다. 교대로 다른 현장으로 가서 일을 하거나, 저축했던 돈을 털어서 나누어 썼다.

지금은 은퇴하여 환경단체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잭 먼디씨는 가난하게 살고있지만 자신이 그린 밴스의 일원이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시드니 에쉬필드에 살고있는 그는 자기보다 형편이 더 나쁜 당시의 동료들을 위해서 주택공사장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한다는 얘기도 했다.

록스는 나중에 정부가 개입해서 호주의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있다.매년 5백만 명이 넘는 외국관광객들이 록스를 찾아와서, 개척시대의 생생한 현장을 둘러보면서 호주의 식민지 역사를 가늠하고 있다.

한국에서 온 어느 시인의 감탄

"지상에 이만큼 아름다운 물항(港)이 또 있을까? 내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이런 바닷가에서 살고싶다."

3년 전, 시드니를 다녀간 직후에 자살해버린 어느 한국 시인이 한 말이다. 그는 파란 바다와 게딱지같은 건물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오페라하우스 건너편의 록스 지역에 매료되어 '천사들이 살았던 마을' 같다고 했다.

그러나 록스는 1788년 아서 필립 선장(초대 총독)이 이끌고 온 최초의 죄수선단(The first fleet)이 닻을 내린 곳이고 주로 죄수들이 쇠사슬에 묶인 채 살아야 했던 비극적인 동네다.

그 시인은 시드니 시내에 즐비하게 늘어선 최신식 빌딩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호주의 광활한 대지와 남십자성, 캥거루와 코알라만 상상하다가 막상 눈앞에 펼쳐진 빌딩 숲을 보고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호주사람들 대부분이 캥거루와 코알라를 동물원에서 볼뿐이고, 내륙오지의 풍경도 TV를 통해서만 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국기에 그려진 남십자성을 정확하게 지목하는 사람도 극소수라고 한다.

호주 인구의 도시집중현상은 전 세계적으로도 손꼽을 정도다. 국민의 90% 이상이 인구 2000명 이상의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심화된 것은 1950년대부터 시작된 농업과 목축업의 산업화 및 이민개방에서 비롯됐다.

제한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 건물의 높이는 올라가게 된다. 1960년대와 70년대를 지나오면서, 시드니 시내(CBD)의 옛 건축물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사는데 적합한 새 건물을 짓기 위해서 대부분 허물어졌다.

그런 와중에 살아남은 동네가 록스다. 그 시인이 그토록 감탄해 마지않았던 록스의 옛 건물들이 다 허물어지고, 그곳에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다고 상상해보자. 과연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브리지가 지금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

'태산은 흙 한 덩어리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는 동양의 가르침이 있다. 하물며 청계천에 숨어있던 문화유산과 시드니의 첫 동네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런 것을 다 훼손시키고도 서울과 시드니를 세계적인 도시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청계천에서 발견된 오간수문지와 호주의 첫 동네 록스는 1770-80년대에 만들어졌다. 비슷한 시기에 생겨난 두 나라의 문화유산이 절체 절명의 위기에서 시민단체와 노동자들에 의해서 구출된 것은 두 나라가 서로 배워야 할 값진 교훈이다.

그러나 지상엔 옛것에 대한 가치를 망각하고 새것만 추구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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