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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2일 탄핵 이후 미국에서 후배녀석에게 온 메일.
3월 12일 탄핵 이후 미국에서 후배녀석에게 온 메일. ⓒ 김용운
그렇게 반년이 흐른 지금. 너로부터 뜻밖의 메일을 받았구나. 군대 있을 때도 그리 긴 편지를 쓰지 않던 녀석이 아주 장문의 글을 써서 보냈더군. 그 메일을 받으면서 반가운 마음과 한편 서글픈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너로부터 그곳의 소식과 안부를 들을 수 있어 반가웠고 네가 뜻밖의 메일을 쓰게 된 동기가 서글펐지. 그것은 이곳에서 내가 요즘 느끼는 감정과 동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쁘면서도 서글프고 서글프면서도 한편 기쁜 것이 요즘 이곳에 사는 내 감정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통령의 탄핵

안부를 묻는 첫머리가 끝나고 바로 메일을 쓰게 된 이유를 적었더구나. 한국에서 대통령이 국회로부터 탄핵 당하는 모습을 CNN뉴스 생중계로 봤다고. 가끔 텔레비전 뉴스에서 한국관련 뉴스를 봤지만 그 뉴스만큼 황당하고 화가 나고 부끄럽고 어이없는 뉴스를 보진 못했다고.

분을 이기지 못해 씩씩거리다 형에게 메일을 보내게 되었다면서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한 너의 그 격한 감정을 털어놓았더구나. 메일을 읽어보면서 만약 한국에 있었더라면 당장이라도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은 네 표현들에 다소 놀라기도 했었다.

대통령이 탄핵된 지 이주일째에 접어든 지금. 아직도 한국은 그 탄핵의 후유증으로 정신이 없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별다른 불상사 없이 예전의 그 복잡한 일상을 유지하고 있단다. 비록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상황이긴 하지만 가시적인 혼란이라던가 국가적인 불안은 발생하지 않은 셈이지. 이런걸 보면 탄핵을 가결시킨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의 높은 시민의식을 사전에 인식한 것도 같다.

자신들이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자신들보다 뛰어난 국민들이 있기에 국가는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그런 간 큰일을 어찌 저지를 수 있었겠니.

탄핵이 가결 된지 열흘 가까이 접어들었건만 아직도 그 날의 충격이 가슴속에 남아있는 듯 하다. 도서관에 갔다가 점심시간에 메일 확인을 하러 인터넷에 접속하니 난리가 났더구나.

그전에 국회에 대통령 탄핵이 상정되기는 했지만 설마 그것을 가결시킬까 했었거든. 전날 여당 국회의원들이 철야로 농성을 한다기에 저것들 쇼하는 구나 생각만 했었지. 아무리 야당 국회의원들이 감정적으로 대통령을 싫어한다고 해서 무리수를 둬가며 탄핵을 가결시킬까? 했었거든.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했었겠지.

경찰버스 사이로 보이는 탄핵 반대 집회 참가 사람들
경찰버스 사이로 보이는 탄핵 반대 집회 참가 사람들 ⓒ 김용운
총칼로 국민을 위협해 대통령이 된 사람도 있었고, 국민의 피를 제물 삼아 대통령이 된 사람도 있었고, 나라의 경제를 말아먹었던 대통령도 있었는데 그들에 대해 국회에서 탄핵을 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는 마당에 그래도 배웠다는 양반들이 대놓고 자기모순에 빠지는 행동은 차마 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을 했었던 것이지. 그것이 바로 국민들이 생각하는 상식이기에 탄핵 상정은 일종의 정치적 쇼로 끝날 것이라 사람들은 믿었고 그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지.

그런데 우리 모두 보았다시피 백주 대낮의 국회에서 대통령이 탄핵 당하더구나. 그가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찬탈했던 것도 아니고, 그가 온당치 못한 처신으로 국가의 기강을 심각하게 실추시켰던 것도 아니며, 그가 국민의 피를 제물 삼아 권력에 오른 것도 아니었지. 그를 감정적으로 싫어할 수 있고 그를 지지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는 우리의 헌법에 의거하여 정당한 절차를 거쳐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잖니. 그런 대통령을 선거법 위반과 경제파탄 등의 이유를 들어 결국 자리에서 끌어내리더구나.

더 웃긴 건 그들이 하는 말 중에서 대통령이 사과를 했었다면 탄핵을 시키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었지. 탄핵의 의결과 가결이 대통령 개인이 사과를 하고 말고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아득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자신들의 탄핵의결과 가결이 진정으로 국가를 위해서 그랬다면 그것에 있어 타협의 여지를 두면 안 되는 것이지. 법의 공공성을 망각하고 법을 그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만 적용하는 그네들을 보며 순간 섬짓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법 앞에 평등하다는 대한민국 공화정의 이념이 나를 보호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하물며 대통령도 저렇게 당하는데 일개 소시민인 나는 어떻게 될까? 만약 내가 어떤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 그것이 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법관이 가진 나 개인에 대한 감정에 의해 유죄와 무죄가 좌우된다면, 혹은 형량이 좌우된다면. 그런데 그 법관이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말만하면 법에 상관없이 없던 일로 해준다고 한다면. 나는 이 나라에서 도대체 무엇을 믿고 살아가야 하나.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며 일어나더구나.

탄핵에 찬성했던 국회의원들은 이번 탄핵가결을 통해 국민들에게 정신적인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을 과연 알고 있을까? 국민이 뽑은 대통령도 자신들이 마음만 먹으면 가당치 않은 이유로 합법적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 그 광경을 생중계로 보여주면서 국민들도 마찬가지. 너희들도 마음만 먹으면 저렇게 합법적으로 당할 수 있어. 이것이 바로 대 국민 협박이구나 싶었지.

3월 20일 광화문에서 인터넷 동호회 사람들의 탄핵반대 피켓팅을 하고 있었다.
3월 20일 광화문에서 인터넷 동호회 사람들의 탄핵반대 피켓팅을 하고 있었다. ⓒ 김용운
사실 대통령이 누가 되건 간에 나 하나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더 관심인 소시민이지만 별다른 잘못도 없는데 단지 누군가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졸지에 내가 합법적인 죄인이 된다면. 그 억울함을 어디 가서 하소연해야 하나. 대통령도 저렇게 되는 마당에 힘없는 소시민은 과연 누가 지켜주나. 탄핵 당일 하루 종일 뉴스를 지켜보면서 맥이 풀리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극단적인 비유지만 그 날 탄핵에 찬성한 국회의원들은 마치 누군가의 윤간 장면을 억지로 보여준 후 그 다음 대상은 바로 너 가 될 수도 있다고 협박하는 것 같았지. 게다가 만약 피해자가 잘못했다고 말만했어도 자신들은 윤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신들의 윤간은 피해자가 유도한 것 일뿐 자기들의 윤간은 잘못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듯한 그네들의 모습에 종내 심한 역겨움과 동시에 두려움이 일었단다.

다시 광화문에서

네 예상대로 나는 13일 토요일 광화문 탄핵반대집회에 촛불을 들고 서 있었다. 서울에서 경기도 북부의 한 소도시로 이사를 온 터라 광화문까지 나가기에는 수월하지 않았지만 도저히 도서관에서 책이나 보고 있을 수 없겠더군. 인터넷 카페에서 모여 함께 나가자는 공지도 있었지만 그 날은 주변에 친한 지인 몇 몇과 함께 단촐하게 나갔지.

광화문 교보문고 옆에서 지인들을 기다리는데 우연찮게 대학 때 동아리를 했던 녀석들을 그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단다. 함께 농활을 갔던 가대 후배들. 그리고 중앙집행부 했던 동기들. 뜻밖의 만남에 서로 무척 즐거워했지만 한편으로 또 씁쓸하기도 했지. 서로의 안부를 나누며 또 담배 한 모금씩 나누며 왜 우리는 이런 자리에서 또 만나야 하냐면서 헛웃음을 짓기도 했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서로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집회에서 다시 만나게 된 사람들이 비단 우리 뿐 만이 아닌 것 같더라. 그 자리에 우리를 모이게 만들었던 이유는 한없이 안타까운 것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그렇게 만난 사람들은 한없이 반가운 사람들이었지. 그 때 너 생각이 많이 났다. 만약 한국에 있었으면 틀림없이 네가 내 옆에서 촛불을 들고 함께 있었을 터인데. 예전 월드컵 때 그랬고, 효순미선 추모 집회 때 그랬던 것처럼.

광화문에서 종각까지 7만명 가량 모였다는 그 날 집회는 별다른 일없이 잘 마무리되었단다. 지금부터 탄핵무효를 위한 시작이라고 서로를 격려하며 집회를 마쳤지. 집회가 끝나고 같이 왔던 지인들과 함께 청진동 해장국 집에서 소주 한 잔 마셨다.

집회를 마치고 사람들이 가게 안에 가득했었는데 그 때 거기의 건배 구호가‘탄핵무효’ 였었다. 누군가‘탄핵무효’선창하면 가게 안에 모인 손님들 모두 그 구호를 함께하며 잔을 부딪쳤어.

마치 월드컵 때 ‘대~한민국’하며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술잔을 부딪쳤었듯이. 그 때 느낄 수 있었던 사람들과의 일체감은 거리에 나와 본 사람들만이 마음속으로 가져갈 수 있는 특별한 느낌이겠지.

그 후 일주일 동안

그 다음 날 네가 격한 감정을 실어 쓴 메일을 받았다. 자신도 그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서 서 있고 싶었다고. 그래서 형이 무척 생각났다고. 토요일 오후의 귀찮음 속에 집에 있었더라면 너의 그 메일을 읽으며 다소 부끄러웠을 터인데. 다행히 너 앞에서 떳떳한 선배 노릇을 할 수 있어서 기뻤다. 그건 너 앞에서뿐만 아니라 후에 내 자식들이 국사 교과서에 기록된 대통령 탄핵사건을 설명해달라고 할 때. 그 탄핵의 무효를 주장하기 위해 광화문 어딘가에 촛불을 들고 서 있었다고.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기 위한 일이기도 했지.

20일 탄핵반대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세대와 성별을 초월하였다.
20일 탄핵반대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세대와 성별을 초월하였다. ⓒ 김용운
광화문에 모였던 사람들을 두고 여당의 총무라는 사람은 단단하지 못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거나 실업자들이라고 폄하를 하고 또 어떤 국회의원은 국민들이 어리석어 아직 사태의 본질을 보지 못했다고 하고, 또 야당의 대변인이라는 사람은 누군가 조직적으로 동원을 했다고 텔레비전에 나와 목청을 높이더구나. 그러면서 하는 말이 차츰 그런 열기는 식을 것이고 국민들은 냉정하게 판단하여 결국에는 자신들의 선택을 지지할 것이라고.

애꿎은 방송 탓을 하면서 보도국에 지침을 내려 공정한(?)방송을 하라고 다그치는 의원도 있었고 친북 좌파 빨갱이들이 사회 혼란을 부추키며 선동하고 있다고 대통령 탄핵은 그래서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지. 몇몇 신문들은 대통령 탄핵을 모호한 태도로 보도하더니 결국 국민들보고 정치에 관심 끄고 각자 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라고 타이르더구나. 도대체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국민인지 국회의원인지. 자신들도 뻔히 알텐데.

그 후 광화문 촛불집회를 놓고 정치적 행사이기 때문에 금지하겠다는 경찰청 발표도 있었고. 문화 행사라는 주장도 있었고, 막아야 한다 허가해야 한다 갑론을박 속에서 탄핵 후 일주일이 흘러갔다. 하지만 결국 지난 20일 토요일에도 나는 또 광화문에 가서 촛불을 들고 있었단다. 국민들의 열기가 식을 것이라고 냄비근성을 가진 국민들이기에 이러다 말 것이라고 뒤에서 확신하고 있을 그 국회의원들에게 무언가 보여주고 싶었거든.

그런 사람들이 나 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지. 어림잡아 13일 집회 때보다 두 배는 넘게 온 것 같았다. 광화문에서 시청 앞 광장까지 촛불로 가득 찬 그 장관을 너도 뉴스를 통해 보았을 테지만.

연대를 통한 소통의 즐거움

20일 집회에는 지난 번 보다 일찍 갔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간 사람들을 기다리다 보니 집회의 맨 끝자리에서 참가할 수 있었다. 아장아장 걷는 꼬마부터 시작해서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까지 모두 한 마음으로 촛불을 들고 탄핵무효와 민주수호를 외쳤지. 물론 지금까지 경험했던 집회들에 비해 무척이나 흥겨운 분위기였었고 나중에는 거의 거리 콘서트를 방불케 할 정도의 열기가 그 늦은 시각까지 지속되었었지.

20일 오후 6시경. 과연 광화문에서 시청앞까지 사람들이 들어찰수 있을까 의문이었으나
20일 오후 6시경. 과연 광화문에서 시청앞까지 사람들이 들어찰수 있을까 의문이었으나 ⓒ 김용운
사실 집회에 한번 나갔다오면 매우 피곤하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몇 시간 노래를 따라 부르고 어깨춤이라도 들썩이다 보면 체력적으로 버겁기도 하고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 게다가 3월의 밤은 생각보다 쌀쌀했단다.

가벼운 봄 잠바를 걸치고 나왔다가 지난 번 집회 때는 낭패를 보기도 했었지. 이번에는 나름대로 단단히 옷을 여미고 갔었지만 그래도 나중에 추워서 손에 입김이 자연스럽게 가더군. 그런데 이런 피곤한 일을 자청하며 되레 돈을 주고 참석한다는 사실을 높으신 국회의원들은 알까 싶더라. 돈주고 사람들을 사봤던 그 사람들의 경험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겠지.

얼추 5시간이 넘게 진행된 집회에 참여하면서 찬찬히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했었다. 우리 일행 앞에는 일가족으로 보이는 분들이 자리잡고 있었어. 그런데 그 분들이 보기 좋았던 것은 3대가 함께 나왔다는 것이지. 할아버지와 아들 며느리 손녀들 이렇게 온 가족이 모여 촛불을 들고 집회에 참여하고 계시더구나. 며느리로 보이시는 분은 가족의 모습과 집회 풍경을 연신 캠코더로 담으며 "지금 우리 가족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현장에 있다"고 스스로 나레이션 집어넣기도 하더라.

손녀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있는 할아버지.
손녀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있는 할아버지. ⓒ 김용운
꼬마들은 엄마의 캠코더 앞에서 한마디씩하고 할아버지도 한마디하시고, 앞의 진행이 재미없다 싶으면 가족끼리 도란도란 도시락도 나눠먹고. 그런 가족이 우리 일행 곁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도처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이 그간 우리가 참여했었던 집회와는 다른 점이었다고나 할까?

거의 20여만에 육박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자신들의 의사를 한 목소리로 표현한다는 것.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정겨운 춤사위를 나눠본다는 것. 그런 가슴을 터 놓은 연대를 통해 모르는 타인과 소통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기에 20일 광화문 촛불집회에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 공화국에 사는 맛이라고. 말로만 국민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정치인들이 진정 그 하나됨의 느낌 그 소통의 느낌을 알고 나 있는지. 역설적으로 그런 정치인들 때문에 국민들이 자신들의 바쁜 일상을 포기하고 한 밤에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 졌지만.

텅빈 거리를 보며

원래 길이란 사람이 걸어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탈것이 사람보다 우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사람 나고 탈것이 만들어졌지 탈것이 만들어지고 사람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현대산업사회에서 이런 생각은 매우 한가하고 엉뚱한 생각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좁다란 인도가 아닌 저 넓은 차도 위를 걸어 다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

20일 오후 11시경 집회의 열기는 막자지에 다 다르고.
20일 오후 11시경 집회의 열기는 막자지에 다 다르고. ⓒ 김용운
개인적으로 집회에 참석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그런 내밀한 반항을 합법적으로 상쇄시킬 수 있다는 것. 길의 주인은 차가 아니라 사람이다. 이런 생각을 평소에 행동으로 옮겼다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지만. 집회 때만큼은 그 생각을 행동에 옮겨도 아무런 탈이 없거든. 그 사소한 전복의 기쁨마저 반사회적이고 친북 좌파적 감상이라고 몰아붙인다면 할말이 없긴 하다.

20일 광화문 집회가 거의 마무리 될 무렵 함께 온 사람들과 추운 몸을 녹이고자 술집에서 소주 한잔씩을 나누었다. 끝나면 함께 정리정돈을 해야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몸이 너무 추워 견딜 수 없더군. 연단에서는 가수의 열정적인 노래가 흘러나왔지만 그것을 뒤로하고 집회 장소를 떠났던 것이지. 여지껏 우리도 집회 후에 항상 마무리까지 하고 갔다고 핑계를 대면서.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다소 어수선하기도 했지만 먼저 가는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이 가져온 것들을 되가져 가는 모습들도 많더군.

집회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자정이 넘어 술집에서 나왔단다. 우리 일행들은 함께 구호를 외쳤고 노래를 따라 불렀던 그 거리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이어졌어. 불과 한 두시간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내고 이런 저런 집회 소모품들로 다소 지저분했던 그 거리. 하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 거리에는 다시 차들이 쌩쌩 달리고 주변은 말끔히 치워져 있었지. 집회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밀려오더구나.

21일 오전 1시경 불과 한 두시간 전에 그 거리가 인파로 가득찼었다고 누가 믿을수 있을까?
21일 오전 1시경 불과 한 두시간 전에 그 거리가 인파로 가득찼었다고 누가 믿을수 있을까? ⓒ 김용운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들이 자기들이 집회한 다음 그 거리를 깨끗이 치우고 사라지는 국민들이 또 있을까? 그런 국민들을 보고 어리석다는 둥 선동에 휘둘린다는 둥 되먹지 않는 말들만 하는 정치인들에게 와서 보라고, 한번 참석이나 해보고 그런 헛소리를 하라고 말해주고 싶더라. 이것이 선진시민의식이 아니면 무엇이 그런 의식이냐고,

어쩔 수 없는 그 마음을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하더니만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닌 모양이다. 대통령 탄핵을 보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 보다 오히려 더 염려하는 마음과 분노가 묻어나 있는 네 편지를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누구보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있었던 너였기에 어쩔 수 없는 그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후에도 이 곳 소식에 너무 지나친 관심을 갖지 말기를 바란다.

그곳에서 이루고자 했던 목표가 일단은 너에게 최우선이 되어야 할 테니까. 그간 동아리나 그 밖의 활동 때문에 네가 가진 기운들이 모두 소진한 것은 아닌가? 그 뜨거운 마음들을 미리 다 써버려 나중에는 오히려 냉소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곁에서 지켜보며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거든.

그러던 참에 네가 미국에 갈 기회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참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었지. 비록 그 나라에 대한 마음이 따사롭지 않다는 것을 나도 안다만 배울 것은 배워야 우리가 그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겠냐? 넓은 세상에 간다는 것은 네 발전을 위해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금도 확신하고 있다.

서글픔과 기쁨을 동시에 전하며

가끔 어줍지 않게 배웠다는 이유로 스스로 남들보다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고는 한다.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을 탄핵하는 사태를 보며 결국 저 국회의원들을 뽑은 국민들이 잘못한 거 아니냐. 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지. 나는 저런 국회의원들을 뽑지 않았으니까 그런 일에 대해 책임이 없다. 라는 생각과 더불어. 그것이 바로 배웠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교만함임을, 그것은 국민을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정치인들과 결코 다르지 않은 태도임을 광화문 집회에 나가 다시 한번 반성할 수 있었지.

물론 그렇다고 국민들이 무오류의 절대선 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국민을 위한다는 말을 앞에 달고 살면서 정작 자신들의 당리당략에 연연하며 국가를 농단 하려는 정치인들보다 확실한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그것을 확인하면서 서글픔과 기쁨의 양가감정은 광화문에 있었던 내 마음의 풍경이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유지 될 것 같구나.

이렇게 메일을 보내고 앞으로 또 언제 메일을 보낼지 잘 모르겠다. 예상치 않은 일 덕분에 석봉 어머니의 그 모진 결심(?)이 무너진 것 같아 섭섭하지만 한편 그것을 핑계로 또 너에게 그간 이곳의 소식을 전할 수 있으니 어차피 벌어진 일 위안을 삼으련다.

20일. 시청앞까지 꽉 들어찼던 탄핵반대 촛불시위 참가자들의 모습
20일. 시청앞까지 꽉 들어찼던 탄핵반대 촛불시위 참가자들의 모습 ⓒ 김용운
한국에 있었다면 이런 이야기를 가지고 밤새 소주 한 병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겠지. 그리고 종내 어깨를 걸면서 노래 한 자락 부르고 크게 웃었을 우리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떠오르는 구나. 하지만 그런 것을 대신 할 수 있는 지난 시절의 추억이 아직은 넉넉하다는 것이 우리가 가진 재산이겠지.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또 하나는 대통령 탄핵 과정을 지녀보면서 예전 80년대 학번 형들의 그 분노와 행동을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 내 눈앞에서 광주학살이 이뤄지고 박종철, 이한열 같은 동기들의 죽음을 보았다면 그네들이 집어들었던 화염병과 돌멩이들은 극히 정당했다고. 머리로는 80년대 선배들의 분노를 이해했으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그런 선배들의 행동을 낭만적 혁명주의 혹은 과격한 소영웅주의라고 다소 백안시했던 내 마음이 너무나 부끄러워지더구나.

쓰다보니 본의 아니게 장문의 편지가 되어버렸다. 사시사철 가을 같다는 그곳의 날씨에 비해 이곳은 서서히 봄의 기운이 느껴진단다. 햇볕의 온기도 따스해져가고. 조금 있으면 봄꽃들의 향기가 코를 간질이겠지. 봄바람이 느껴지던 지난 며칠 전 문득 너와 함께 자갈치 시장에서 곰장어에 소주를 먹던 몇 해전 이맘때의 기억이 떠오르더구나. 부산에 들렀던 나를 곰살 맞은 사투리로 반겨 주던 그때 너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다음 번에 소식을 전할 땐 부디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메일을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더러 뜨거운 열정이 사람을 감동시킬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랫목처럼 은근하고 지속적인 온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해 줄 수 있다고. 그 온기를 유지시키기 위한 땔감을 그곳에서 풍성히 쌓고 있으리라는 기대를 너에게 버리지 않고 있다는 말로써 편지의 마지막 인사를 대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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