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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에 살던 백두산 호랑이 백호가 도망을 치고 말았답니다.
2004년 3월에 나온 일간신문 맨 첫 장마다 호랑이가 없어진 사건이 대문짝만하게 실렸습니다.
백두산 호랑이 동물원 탈출
백호 동물원 탈출, 종적 묘연
오늘 그 호랑이 때문에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난리가 났습니다. 그 호랑이가 어디로 도망을 가서 누구를 해치고 다닐까 염려가 되어서 그런 것이 염려가 되었기도 했지만, 그 호랑이가 어떻게 도망을 쳤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동물원의 식구들을 가장 처음 만나는 사육사가 그날 아침에도 여전히 먹이를 주러 호랑이 우리 옆을 지나가다가 백호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는, 모든 사람들이 그 자리를 샅샅이 뒤져보았습니다.
밤새도록 동물원을 지키던 수위아저씨도 호랑이가 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고, 하루종일 동물원 식구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촬영하는 꼬마 카메라에도 그 호랑이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잡히지가 않았답니다.
게다가 백호가 살고 있던 우리는 4미터 깊이로 파져 있었기 때문에, 호랑이가 아무리 높이 뛴다고 해도 거기까지 닿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철조망 역시 견고하고 높아서 호랑이의 억센 이빨로도 부러뜨릴 수가 없는 것이었거든요,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이 호랑이는 대체 어떻게 사라져 버린 것일까요?
사라져 버린 호랑이 백호는 한 달 전 백두산에서 잡아온 호랑이입니다. 털이 눈처럼 하얗고, 커다란 몸집에 동물원 우리 안를 어슬렁거리는 모습은, 정말 수 백년 동안 우리나라의 산을 호령해온 동물의 대왕이었습니다.
산신들과 함께 다닌다고 알려져 있던, 전설에만 남아있던 이 호랑이는, 백두산 호랑이 조사를 나선 탐사단의 눈에 자기 발로 나타나, 순순히 서울로 따라오더랍니다. 귀한 호랑이니 만큼 동물원에서도 아주 특별한 대우를 했습니다. 호랑이에게 해주는 특별한 대우라는 게 별거 있었을까요?
가장 신선한 고기를 먹고, 물도 백두산의 맑은 물과 비슷한 깨끗한 물만 먹고, 그리고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 있도록 우리도 아주 넓게 지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매일 던져주는 맛있는 음식들. 호랑이는 무엇이 싫어서 그 좋은 동물원을 빠져 나왔을까요.
사람들은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호랑이가 언제 서울 한복판에 나타나, 동화 속에 이야기처럼 사람들을 잡아먹기 시작할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 서울 시내의 경찰들이 다 동원되어 수색작업을 펼쳐도 호랑이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울 사람들은 점점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호랑이의 공격에 대비해 총을 사는 사람도 있었고, 곶감을 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호랑이는 정말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1998년 봄이었습니다.
그날은 바리의 일곱 번째 생일입니다. 게다가 마침 일요일이고, 날씨도 아주 화창한 봄 날씨였습니다. 매일 매일 힘들게 일하시는 아버지는 일요일 날 아침 늦잠을 주무셔서 하루 일과가 좀 늦게 시작하기는 했지만, 늦은 아침을 먹고, 바리는 오랜만에 아빠와 엄마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동물원에 가기로 했습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선물보다, 부모님과 같이 지내는 생일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내 이리 썰렁한 일요일은 처음 봅니다.”
바리에게 솜사탕을 건네주시던 솜사탕 아저씨는 부모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통 일요일이면 줄을 서서 솜사탕을 팔기 마련인데, 오늘은 왠지 월요일보다도 손님들이 적게 온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점심 때가 다 되어 가는 걸 보니 그렇게 이른 시각도 아닌데, 점심 먹고 많이들 오려나 보죠. 뭐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멋쩍게 웃고 있는 아버지는 그날 면도를 안 하셔서 턱이며 볼이 가무잡잡했습니다
사람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원숭이 우리며, 낙타 우리며 구경꾼들이 많이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나들이 나와서 가족들이 전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은데, 부탁할 사람이 없어 사진 속에는 두 사람만 들어갔습니다, 아빠와 바리, 엄마와 바리, 그리고 아빠와 엄마,
“저 호랑이 우리 앞에 누구 사람이 있네요. 저 사람한테 한번 부탁을 해볼까?”
키가 좀 작은 사람이 호랑이 우리 철조망에 등을 기대고 서있었습니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러 가시는 어머니를 보자마자 자리를 떠나 바쁜 걸음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바지 사이에 허리띠가 풀려있는지 뭔가 덜렁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 사람.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 사진 좀 찍어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더니.”
어머니는 실망스러워 하시면서 몸을 돌려 바리와 아빠에게 돌아오려고 하시던 순간이었습니다. 순간 호랑이의 포효소리가 하늘을 흔들었습니다
놀란 바리는 아버지의 다리를 꼭 붙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머니 앞에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가로막아 서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악!”
바리는 크게 소리를 질렀고, 엄마 역시 놀라서 비명을 질렀습니다.
“여보!”
아버지는 순간 바리와 엄마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바지를 잡고 있는 바리의 손을 놓고 얼른 어머니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도와줘요, 여기 아무도 없어요? 여기 호랑이가 빠져 나왔어요!”
이렇게 큰 소리로 도움을 청하면서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버지는 갑자기 검은 색 물감이 물에 풀리듯이 호랑이 몸에 그어진 줄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엄마 쪽으로 돌리고 엄마 역시 몸 속의 줄 안으로 집어 넣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바리 쪽으로 서서히 다가왔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기에 바리는 어쩔 줄 모르고 움찔대고 있다가, 호랑이를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
“이 나쁜 호랑아! 우리 아빠 돌려줘, 우리 엄마 돌려줘!”
호랑이는 다시 포효하며 바리 쪽으로 성큼 뛰었습니다. 겁이 난 바리를 등을 돌려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 호랑이는 이미 등뒤에서 바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순간 바리는 호랑이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그 호랑이의 눈은 불꽃이 이글거리는 것처럼 온통 빨갰습니다. 바리가 그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사이, 호랑이는 뒤로 주춤하여 물러서기만 하고 바리를 공격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바리도 호랑이도 서로 눈을 바라보기만 하고 주춤주춤 시간이 흘렀습니다.
갑자기 호랑이의 포효소리는 간 곳이 없어지고, 주변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해졌습니다. 바리는 잠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둘러보았습니다.
“엄마, 아빠.”
엄마, 아빠는 아무 곳에도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바리는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습니다. 울면서 솜사탕 아저씨에게 달려갔습니다.
바리의 이야기를 들은 솜사탕 아저씨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관리자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관리자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꼬마야, 정말 호랑이가 네 부모님을 데려가는 걸 봤어?”
“예, 그 눈이 시뻘건 호랑이가 우리 부모님을 잡아먹어 버렸어요. 엉엉.”
“그 호랑이가 저 호랑이 맞아?”
바리는 호랑이 우리를 쳐다보았습니다. 우리에는 아직도 호랑이 몇 마리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고, 어떤 호랑이들은 졸고 있기만 했습니다.
“어떤 호랑이도 뛰어 나올 수 없어, 이렇게 높은 곳까지 뛰어오를 수 있는 호랑이는 없단 말이야. 게다가 호랑이가 뛰어나온다면 이 철조망에 걸려있는 감시카메라에 걸려서 내가 제일 먼저 알고 달려왔을거야. 꼬마야, 다시 한번 생각해보렴. 혹시 그 사이에 부모님이 화장실에라도 가신 게 아닐까?”
관리자 아저씨의 말 역시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두 눈으로 똑똑히 호랑이를 보았는데…. 그렇게 이글거리듯 붉은 눈을 가진 호랑이를 보았는데…. 부모님들이 먹물이 번지듯 호랑이의 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아무도 바리의 말을 믿어주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바리는 관리자 아저씨를 따라 미아보호소에 갔습니다. 그리고 바리의 부모님을 찾는 방송이 수 십번 나가도록 누구도 바리를 찾아와 주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후 바리는 고아원에서 새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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