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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촛불행사는 500여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23일 촛불행사는 500여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아침에 눈을 뜨면 온몸이 무거워 '오늘만은 못간다'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오후가 지나고 6시가 되면 광화문에 가게 돼요. 이유요? 잘 모르겠어요."(웃음)

열하루째 광화문에는 여지없이 수백개의 촛불이 밝혀졌다. 23일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참가자들에게 초를 나눠주던 자원봉사자 양아무개(33. 고시생)씨는 위와 같이 말하며 "국민들이 승리에 도취된 것 같은데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4·15 총선까지 긴장을 늦추면 안된다"고 밝혔다.

이날도 촛불문화제에는 3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촛불준비, 질서유지 등을 맡았다. 이들은 매일 오후 6시가 되면 광화문 교보문고 앞으로 집결, 그날 행사 준비에 들어간다. 저녁 7시면 어김없이 광화문에 피어오르는 촛불은 매일 현장에 나와 애쓰는 자원봉사자들로 인해 더욱 아름다웠다.

광화문 촛불행사 열하루째... 어김없이 타오른 500여 촛불

매일 촛불행사에 자원봉사로 참가한 윤수정씨.
매일 촛불행사에 자원봉사로 참가한 윤수정씨.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아직은 제법 싸늘한 바람을 맞으며 진행된 열하루째 촛불행사는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 주관으로 열렸다. 500여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밝힌 가운데 이날 사회는 고등학교 교사인 백금렬(33)씨가 맡았다. 백씨는 걸출한 입담으로 촛불행사를 흥겨운 문화행사로 이끌었다.

이날 행사는 "(지난 20일 20만 촛불에) 도취되지 말고 4·15 총선까지 촛불을 밝히자"는 서주원 환경연합 사무총장의 발언에 이어 환경노래패 '솔바람'의 노래 한마당이 진행됐다. 또 시민들의 1분 발언대가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고, 마지막으로 노래패 '우리나라'의 신나는 어울마당이 펼쳐졌다.

이날 행사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을 쉽게 찾을 수는 없었다. 바로 전날 자원봉사자들 회식에서 "주말을 위해 평일에는 자발적으로 참여할 사람만 하기"로 결정을 모았기 때문. 실제로 이날 모인 3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촛불준비와 기본적인 행사 준비만 완료한 뒤 대부분 참가자들과 함께 자리에서 촛불과 '탄핵무효' 카드를 흔들었다.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평일엔 1백여명, 토요일 집회엔 5백명에서 1천명까지 자원봉사에 참여했다.

하루도 빼지 않고 촛불행사에서 자원봉사를 했다는 윤수정(59)씨는 "병원과 아파트에서 미화원을 해왔는데 이번 탄핵정국이 된 뒤 일을 그만두고 자원봉사로 나섰다"며 "노무현 대통령도 잘못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등에 비교하면 아직 미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국회의 일방적인 탄핵은 잘못"이라고 참가이유를 밝혔다.

윤씨는 "쓰레기를 줍고 초를 종이컵에 끼우는 작업을 주로 하는데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기쁘게 일할 수 있는 건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이 조금씩 뉘우치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씨는 또 "지난 20일 누가 나오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온 걸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분들게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만난 자원봉사자들은 하나같이 지난 토요일의 감격을 떠올렸다.

"빨갱이라고 욕해도 난 광화문에 나온다"

촛불행사 전 자원봉사자들이 행사에 쓰일 촛불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촛불행사 전 자원봉사자들이 행사에 쓰일 촛불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지난 20일 행사에서 대오의 가장 뒤에서 참가자들의 질서유지와 오물제거를 지휘했던 이혜림(56. 애니메이션 감독)씨는 "그날의 감격을 통해 아마 광화문에는 이런 일이 없겠구나 싶었다, 세상이 바뀌어 나올 일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씨 역시 매일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이씨는 '피곤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피곤한지 모르겠지만 입술이 부르튼 걸 보면 그렇지도 않는 모양"이라고 활짝 웃는다. 자세히 보니 이씨의 오른쪽 입술이 터져 있었다.

기자는 지난 주말 행사가 끝날 즈음 한 취객이 사람이 이씨를 포함한 자원봉사자들에게 이유 없이 시비를 걸고 있던 모습을 목격한 적 있다. 이씨는 그런 것들조차 기쁘게 감내할 수 있단다.

"이번 탄핵가결 정국은 친노 대 반노도, 민주 대 반민주도 아니다. 사식대 비상식의 싸움이다. 가만히 있으면 참가자들이 줄어들었다고 할 것 같아 이렇게 나온다. 조금 힘들더라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씨는 행사를 마친 뒤, 집에 가서 그날 마무리 못한 작업을 끝낸다고 한다. 그는 "탄핵정국에 대한 작품(에니메이션)을 구상하고 있는데 마무리되면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정부에서 미용사를 한다는 성준(29)씨는 "손님 중 탄핵 찬성자들이 있는데 자원봉사를 한다는 제게 어떤 사람은 바보라고 놀리고 노골적으로 '빨갱이'라고 욕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원봉사를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헌신적인 자원봉사자들에게 촛불행사를 주최하고 있는 범국민행동측은 고마울 수밖에 없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김혜애 상황실장은 "고맙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다, 돈 한푼 받는 것도 아닌데 자신들의 일처럼 헌신해주신다"며 "다음 주말 행사엔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감사표시를 전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촛불행사에 처음 참석했다는 최종훈(27. 학생)씨는 "오늘도 날씨가 쌀쌀한데도 일찍부터 고생하는 자원봉사자들게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하다"고 고마워했고, 김정현(35, 직장인)씨는 "시간을 내서 자원봉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을 안다"며 "아마 이런 분들 때문에라도 이번 총선엔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산은 산이로되 물은 셀프?
말풍선 만들기에서 그려진 표현들

▲ 참가자들이 말풍선 만들기 행사에 참여, 재치있는 표현들을 담고 있다.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열하루째 촛불행사엔 환경단체에서 마련한 '말풍선만들기 대회'가 즉석에서 열렸다. 이날 참가자들은 재치있는 표현으로 말풍선을 채웠다. 이 중 재미있는 것을 몇 개 모아봤다.

"산은 산이로되 물은 셀프." (조순형 대표의 KBS 방문 때 "물 한잔 안준다"는 민주당 측의 말에 빗댄 표현)

"이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진 나란데 - 박근혜 공주, 그래! 이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진 나라인데."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말에 국민들의 분노에 찬 발언)

"난 만원어치만 술먹어도 매우 행복한데 차떼기면 술이 몇 판이냐. 얼마나 많은 이의 행복을 앗은 겐지. 정말 너흰 아니야."

"너희는 국회를 떠나 집에 가서 애들이나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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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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