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밑으로는 장수도깨비들이 사용하는 붉은 뿔직인이 선명히 찍혀있었습니다.

“그 장수도깨비는 왜 나에게 미리 이야기 하지 않았더란 말이냐.”

연기 속의 얼굴은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무언가 사정이 있었을 것이외다. 그런데 여기 직인도 있지 않네까? 이 장수도깨비님의 뿔직인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거 잘 알지 않수다? 헤헤헤.”

장수도깨비들은 산오뚝이들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도깨비들입니다. 내용이 어찌 되었건 간에 장수도깨비의 뿔을 이용해 찍어내는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있었고, 그 직인은 아무나 사용하지 못하는 신성한 것이었습니다.

연기는 다시 땅 밑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산오뚝이는 잠시 주춤거렸습니다. 잠시 후 사천꽃밭의 육중한 문 가운데가 우두둑하며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산오뚝이는 주춤주춤 고개를 문 사이로 넣어 둘러보고는 뒤뚱뒤뚱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문 사이에 서성이면서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 무엇하느냐?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

연기 속의 얼굴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산오뚝이란 놈은 들고 있던 장수도깨비의 편지를 땅에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편지는 즉시 어마어마한 돌덩이로 변해 그 철문의 양날개를 틀어막아 문을 더 닫히지도 열리지도 못했습니다

산오뚝이는 말했습니다.

“놀라운 능력을 한번 보시오. 산 속에서 바위나 지키고 살던 산오뚝이들은 이젠 없수다.”

그 산오뚝이 등 뒤에서 무언가 파르륵 돋아나더니 공중으로 스윽 날아올랐습니다. 공중을 한바퀴 휘 돌더니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그러자 뒷편 숲에서 날개를 단 무엇가가 그 문틈 사이로 날아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서천꽃밭으로 날아들어오는 그것들은 잡히는 대로 꽃들을 뜯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꽃들을 쥔 손에서는 핏물이 뚝뚝 떨어지기도 했고, 꽃밭에서는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습니다.

갑자기 벌어진 습격에 꽃들을 지키는 꽃감관들은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꽃감관들은 온갖 방망이를 휘두르며 그 날아다니는 것들을 쫓아보았지만, 쫓아도 쫓아도 그 것들은 계속 날아왔습니다, 꽃감관들과 서천꽃밭을 지키고 있는 도깨비들은 연기막을 만들기도 하고, 번개방망이로 쫓아보면서 꽃들을 지켜보려고 했지만, 메뚜기처럼 몰려들어오는 그 날개 달린 것들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그 산오뚝이들이 꽃들을 닥치는대로 뜯어가자 정성스럽게 가꾼 꽃밭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

그 놈들이 날아들어오는 문을 닫으려고 수십 명이 철문에 모여서 돌덩어리를 들어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것들은, 산오뚝이들이잖아. 어떻게 저것들이 하늘을 날 수가 있지?”

그들을 자세히 보고 있던 한 꽃감관은 놀라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그 꽃감관의 투구 위에 그 산오뚝이가 살포시 앉아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산 속의 요괴로 살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가? 이제 우리들의 힘을 만방에 보여줄 때가 되었두다. 두고 보외다, 이제 이 세상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그 산오뚝이는 말은 마치자마자 꼬리를 들어 그 꽃감관에 얼굴을 내려쳤습니다.

“ 내 눈, 내 눈….”

눈을 맞은 꽃감관은 사지를 버둥거리며 괴로워하기만 했습니다.

“ 저 놈들은 산오뚝이들이야, 꼬리를 잡아! 꼬리를!.”

누군가 뒷쪽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날쌘 도깨비 하나가 꽃을 낚아채어 달아나던 산오뚝이의 꼬리를 잡아 땅으로 내동댕이쳤습니다. 꼬리가 잘린 산오뚝이는 돌덩어리나 나무조각으로 변하여 철퍼덕 하고 떨어졌습니다. 꽃감관들과 도깨비들은 방망이와 연기막으로, 날아다니는 산오뚝이들을 공격하기도 하고, 하늘을 향해 붕붕 뛰면서 산오뚝이들의 꼬리를 잡아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전부 돌덩어리가 되어 퍽퍽 쓰러졌습니다. 미처 땅으로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서 꼬리가 잘린 산오뚝이들은 돌덩이나 큼지막한 나무조각으로 변하여 꽃감관들과 도깨비들의 머리 위로 사정없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투구와 도깨비들의 단단한 뿔로 조각조각 부서지긴 했지만, 돌덩이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꽃감관들 역시 많았습니다.

산오뚝이들이 만드는 바람과, 꽃들의 울음소리와 연기와 방망이, 산오뚝이들을 피해 뛰어다니는 색동옷 입은 사람들…. 서천꽃밭은 갑자기 전쟁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엄청난 소란도 잠깐, 그 많던 산오뚝이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듯 한꺼번에 전부 사라져 버렸습니다. 철문에 꽂혀있던 그 바위덩어리는 이미 장수도깨비의 직인이 찍힌 편지로 다시 변해 있었습니다. 꽃감관이 편지를 들자마자, 손에서 먼지가 되어 하늘로 풀풀 날아올랐습니다. 꽃감관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큰일이다. 큰일이야!!!

그 소리를 서천꽃밭 주변의 숲들을 쩌렁쩌렁 울렸고, 숲 속에 살고 있던 새들이 전부 파르륵 날아올랐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