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가까운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떠나는 시점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지만 후배들에게 남겨 줄 것이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기쁩니다."
지난 13일(토) 공무원 생활을 마감하며 공로연수에 들어간 김시겸(61) 전 아산시 사회산업국장가 화제가 되고 있다. 공직생활을 하며 틈틈이 구입한 도서 650여권을 아산시공무원 직장협의회에 기증한 것.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도서로서는 적지 않은 분량이다. 김 국장은 이 도서들을 지난 94년, 세무과장 재직시 자신의 책상 옆에 미니문고를 만들어 직원들에게 무료로 대여해왔다.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아리랑>, <태백산맥> 등 장편 소설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도서들이 가득하다.
"책은 지식 습득의 효과도 있지만 마음의 수양을 쌓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합니다. 우매한 사람을 일깨우게 하고 자신의 닫힌 사고를 열어주기도 하죠. 부디 후배들에게 유익한 선물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직원들 사이에 ‘김시겸 문고’로 불려진 김 소장의 도서들을 열람한 직원은 어림잡아 7백여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얻어 왔다.
김 국장의 도서들을 기증 받은 윤인섭 공직협회장은 “선배 공직자의 고마운 뜻을 깊이 새겨 동료 직원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화답했다.
김 국장이 도서를 가깝게 접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 면장 발령을 받은 이후 부터다. 당시 대민업무로 주민들의 고충을 들어주며 일상을 술로 보내던 김 소장은 건강이 악화되자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술을 끊기 위해 김 국장이 접한 것이 ‘책’이다. 책에 빠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자연스레 술과 멀어졌고, 그런 그를 주민들과 직원들도 더 이상 술로 괴롭히지 않았다.
평소 후배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배려를 하며 호인으로 불리던 김 국장이 책을 잡고 있는 것을 본 직원들은 김 국장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라며, 성격이 원래 그래서인 것도 있지만 책 때문에 배려의 정도가 더 깊어 진 것 같다고 말을 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배운 것이 참 많습니다. 물가에 가지 않고 수영을 배우려 했던 내 자신을 보게 된 거죠. 굳이 말하자면 시간 낭비를 한 것이죠. 조금만 일찍 깨달았으면 시와 시민들을 위해 조금은 더 많은 일을 했을텐데…. 앞으로 많은 시간동안 시민들에게 봉사를 하고, 시의 발전을 위해 일을 해야 할 후배들이 나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책들에 담겨져 있습니다.”
김 국장은 퇴임 후 현재 아산시 득산동에 소재한 아산 득산농공단지에서 관림사무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평소 대인 관계와 리더십에 관심을 갖고 있던 김 국장은 최근 또 다른 책에 빠져 탐독의 시간을 갖고 있다.
인재 활용에 관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이용범의 저서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6가지 불변의 법칙이 담겨져 있는 애리조나 주립대학 석좌교수 로버트 치알디니(Robert B. Cialdini)의 저서 ‘설득의 심리학’이다.
“처음에는 술을 끊기 위해 책을 손에 들었지만 지금은 책이 없으면 심심해요. 나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죠. 이렇게 표현하고 보니 후배들에게 좋은 친구 한 명 소개시켜주고 나온 격이 됐네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