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일상인 전쟁
우리는 전쟁에 익숙한가? 그렇다. 전쟁을 직접 겪어본 세대가 아니라할 지라도 대답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젊은이들이 전쟁에 더 익숙한 지도 모른다. 그들은 전쟁을 더 '전쟁처럼' 그린 영화를 보고,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세계의 전쟁을 시청한다. 때로는 온라인게임을 통해 전쟁을 일으키거나 직접 전장에 뛰어들기도 한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역사를 배우고 가끔은 남한과 '대치한' 북한의 도발을 우려하며 전쟁의 위협을 실감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뿐이다. 우리는 전쟁을 두려워하지만 그에 익숙하다. 우리에게 전쟁은 잔인하지만 스펙터클한(혹은 그래야하는) 것으로, 무섭지만 우리와는 별 상관없는 일로, 때로는 짜릿하고 통쾌하기까지 한 사건으로 인식된다.
전쟁을 한순간의 오락거리나 단편적인 정보, 껄끄러운 과거쯤으로 여기는 우리는 어떤 이들에게는 전쟁이 일상이며 현실이라는 사실을,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니라는 진리를 곧잘 잊는다.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기록한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김현아·책갈피·2002)>은 우리가 잊고 있는 이러한 것들을 정확히 되새기게끔 하는 책이다. 이 책은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찾아 99년부터 3년간 매해 베트남을 답사했던 '나와우리'(www.nawauri.or.kr)의 기록을 담고 있다.
'비 내리는 부산항, 태극기를 흔드는 여고생, 화환을 목에 걸어주는 연예인, 자유의 십자군들에게 단호하게 승리를 명령하는 작달막한 체구의 대통령, 자유대한 위해서 님들은 모였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몇 가지의 장면만으로 남은 듯한 베트남 전쟁의 실상을 저자는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 진실들 중에는 만삭의 몸으로 총을 맞고 아이와 다리를 한꺼번에 잃은 릉 티 퍼이의 고통이 있고, 꺼우안푹마을에서 일어난 학살에서(273명 중 14명만이 살아남았다) 가족을 잃은 도안 응히의 안타까움이 있다.
"나는 한국군을 증오한다. 증오하고말고!"라고 단호히 외치는 응웬 또이의 분노가 있고, 죽어간 사람들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 시인 반 레의 슬픔이 있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남한 군인들에게도 전쟁은 오롯이 남아있다. 베트남 거리를 돌면서 '어쿠, 따쿵, 총소리가 들리는 것같아. 금방이라도 총알이 날아올 것같다'고 중얼거리는 남자의 머리 속에서, 답사를 와서도 베트남 사람들이 해코지할까봐 외출조차 하지 못하는 남자의 긴장 속에서 베트남 전쟁의 진실은 발견된다.
국가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어 사람을 죽였고, 나중에는 미쳐 날뛰면서 사람을 죽였다는 남자의 고백에, 어떤 날은 새우처럼 뛰고 구르고 어떤 날은 머리를 쥐어뜯는 남자의 발작에 그 진실이 담겨있다.
이들에게 베트남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여전히 베트남 전쟁은 현재진행 중
| | | 모윤숙의 <또 다른 전선에서 국군을 본다> | | | | 나도 몰라 예가 어딘가 / 사막으로 정글로 끝없는 길
저 잎새 무성한 푸른 가지에 / 향수에 흐느낀 적은 몇 번이었을까
(중략)
이제 나는 또 보노라 / 만리를 넘어온 국군들
억센 발걸음 멈추지 않고 / 이름 모를 강물에 입술을 적시며
깨어진 땅을 위해 공포와 살육의 / 음모를 막는 국군을 본다.
장하여라 그 얼 그 정신 / 굽힘없는 이 순신의 저항이다.
가도가도 깊어지는 밀림 수렁에 / 몰아오는 적의 고함을 따라
아시아의 열풍에 몸을 떨면서 / 죽음도 마다 않고 달리는 국군을 본다.
그 내뿜는 정의의 분노를 본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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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우리는 '국익'을 위해 참전했다. 미국의 원조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정권을 위협하는 움직임이 늘어났다. 이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박정희는 파병이라는 돌파구를 선택했으나 이러한 속내를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국익'이라는, 누구도 대거리할 수 없는 이유만이 제시되었을 뿐이었다.
마틴 루터 킹이 미국 젊은이들에게 양심을 따라 징집에 응하지 말라고 촉구하는 동안, 버트런드 러셀이 '베트남에서 전쟁범죄에 관한 국제재판소'를 조직하고 장 폴 사르트르를 비롯한 대표자들이 미국의 무차별 살상을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동안 우리는 무얼 했는가?
정치인 박순천은 남의 나라에 군대를 보낸 것에 감동하며 "이 비옥하고 광활한 땅이 우리의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라는 헛소리를 지껄였고, 시인 모윤숙은 '자유를 잉태하러' 가는 길이니 '죽음도 마다않고' 잘 싸우라며 참전군인들을 격려했다.
어린 젊은이들은 "부모님께 황소 한 마리 사드리려고" 참전을 자원하고, 사람들은 귀신잡는 해병대의 어설픈 신화에 감격하며 위문편지며 위문품을 보내기에 바빴다. 모든 것이 국익을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남한은 10억 달러를 벌어들였고 박정희는 안정된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 참전군인들은 몸이 이유없이 아프거나 가렵고(심지어 그의 자식들까지도) 전쟁의 기억으로 마음을 앓기도 했지만, 어쨌든 '대한 남아'로서의 소임을 다한 자랑찬 국민들이 되었다. 그들 중 5천명이 생명을 잃고 1만명이 부상을 입고 2만명이 고엽제 피해로 고통받고 있지만 어쨌거나 말이다.
이에 대한 김현아의 지적은 정확하다.
"…그러나 그 10억이라는 숫자는 우리가 벌어들인 것만 계산할 뿐, 우리가 치러야했던 대가나 파병을 하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거둘 수 있었던 경제적 성과를 의미하는 기회비용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게다가 미국의 용병이었다는 역사적 오명은 영원할 것이고, 이러한 명분이 쿠데타를 정당화시키고, 인권탄압을 자행하고도 국가의 이름으로 이것을 정당화하는 역사를 만들기 시작했다고도 할 수 있다. … 장기집권, 의문사, 고문, 전두환의 집권과 광주학살 등이 베트남전으로 배태되었다고 한다면 그 10억 달러는 이후 한국 현대사가 두고두고 갚아야할 부채가 된 셈이다."
또 다시 '지금' 우리가 내세우는 명분은 '국익'
이 책이 보여주는 진실은 참혹하다. 너무 참혹해서 독자들은 눈과 귀를 막고 고개를 흔들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가 없다. 이미 서희·제마부대가 이라크에 가있고 늦어도 6월까지 또 한번의 파병이 행해질 계획이다. '국익'과 '재건'이라는 명분으로 '평화'라는 이름을 내걸고서 말이다.
그러나 엄연한 주권국가에 군대를 왜 보내는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일부 국가의 억측임이 진작에 드러났고, 사실상 더 위험한 무기를 고루 갖춘 쪽은 그 일부 국가들임을 직접 확인했으면서도 왜 우리는 군대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평화재건을 목적으로 한다고 해도, 자위권 차원의 반격만 허용한다고 해도 전쟁이라는 통제불능의 상황에서 또 다시 고통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현지인의 상당수가 파병군대를 점령군으로 간주한다고 수차례 공언해온 상황에서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로 시작되는 베트남의 증오비가 이라크에서도 세워지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확신하는가.
또 다시 '지금' 우리가 내세우는 명분은 '국익'이다. 몇십년의 상처를 돌고 돌아 겨우 원점으로 닿은 셈이다. 우리는 아직 덜 배웠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아픈 과거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라 할 때 우리는 한참 더 배워야 한다.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은 그런 우리를 호되게 꾸짖는 한 권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