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었습니다.
하여 꽃이 집니다.
다른 꽃들은 이제야 꽃망울을 매만지는데
동백꽃은 모가지를 툭툭 꺽으며 벌써 지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동백꽃을 아름다워하지 않았습니다. 봄에는 한들한들 화사함으로 무딘 사내들 마음까지도 심난하게 하는 예쁜 꽃들 많습니다. 그런 꽃과 비교하면 무덤덤해 보이는 동백꽃이 마음에 차지 않았습니다. 아름답다고 소문난 선운사 동백을 서너번이나 찾아갔지만 시큰둥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부터인가 동백꽃의 예쁜 구석이 조금 보였습니다. 꽃이 질 때 하나씩 잎이 지는 것이 아니라 툭툭 모가지를 꺽은 채 뒹굴고 있는 그 모습 말입니다. 애처롭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였습니다. 땅에 떨어진 이후에 비로소 시들기 시작하는 그 모습이 맘에 들었습니다.
대학교 2학년 쯤, 철학시간의 일입니다. "내일 죽어도 두렵지 않은 사람 손들어보세요"라는 질문을 교수께서 던졌습니다. 저는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손을 들은 것은 저뿐이었습니다. 다들 제가 재미 삼아 손을 들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정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날그날 최선을 다한다면 삶의 마지막이 언제가 되든 두려운 일은 아니라고 늘 생각해 왔었습니다.
동백이 모가지를 꺽고 떨어지는 모습이 제가 생각했던 그런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어제까지 맘껏 봄날을 즐겼던 꽃이, 오늘 구차하지 않게 땅에 떨어집니다. 그래서 동백을 기개가 있는 꽃이라고도 합니다. 정자와 동백이 잘 어울린 서천의 마량리 동백나무 숲에도 동백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지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그곳을 찾았을 때 아이들은 텔레토비 집을 생각했습니다. 그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미 꽃이 지고 있습니다. 툭툭 모가지를 꺽고 누워 있습니다. 환한 모습으로 꽃이 지고 있었습니다. 동백나무 숲 아래 서해바다로 해가 집니다. 봄날의 하루도 모가지를 툭툭 꺽고 사라져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