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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리지 '시목리지'의 표지
향토 리지 '시목리지'의 표지 ⓒ 지요하
지난 3월 27일 오전 11시, 충남 태안군 소원면 시목2리 마을회관에서는 매우 색다르고도 뜻깊은 행사가 있었다. 마을의 지리 역사 문화와 총체적인 면모를 담은 <시목리지(枾木里誌)>를 출간하고, 온 주민들이 모여 출판기념회 행사를 가진 것이다.

토요일 오전이라 학생들과 젊은층이 없는 것이 다소 아쉬웠지만, 주민들이 마을회관 마당에 꽉 차게 모여서 잔치분위기를 실감케 했다. 그리고 태안군과 소원면의 다수 기관장 외에도 서울 등지에서 여러 출향인들이 와서 이 잔치를 축하해 주었다.

기념식 자리에서 맨 먼저 축사를 한 정우영 태안문화원장은 "향토지라고 하면 대개들 시·군지나 읍·면지를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리지가 향토지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호남이나 영남지방에 가면 많은 리지들을 볼 수가 있는데, 양반동네라고 하는 충청도에서는 이상하게도 리지가 귀한 실정이어서 자괴감과 함께 아쉬움이 크다"는 말을 했다.

그래도 우리 고장 태안에서는 리지(里誌)들이 있는 편이다. 1998년 이원면 내리 주민들이 동네 이름을 딴 '만대'라는 규모 있는 리지를 발간하여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만대'는 우리 고장 리지의 효시가 되었다. 그리고 2000년에는 안면읍 승언리의 리지가 출간되어 승언리 주민들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우리 고장에서는 세 번째 리지가 되는 소원면의 '시목리지'는 매우 탁월한 향토지로 보인다. 규모나 내용 면에서 웬만한 읍·면지나 시·군지에 필적할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4*6 배판 크기에 352쪽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쓸데없는 중량감 대신 친근한 느낌을 준다. 모두 6개의 큰 갈래 속에 7개의 장과 62개의 항목을 담고 있다.

최기철 이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는 원고 집필자 조기상 노인
최기철 이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는 원고 집필자 조기상 노인 ⓒ 지요하
6개의 큰 갈래들과 7개의 장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 제1편 우리 마을의 지리와 역사(1장 우리 마을의 자연지리 및 인문지리/2장 우리 마을의 역사) ▲제2편 우리 마을 문화의 향기(1장 우리 마을의 민요/2장 우리 마을의 교육현황/3장 우리 마을의 사당과 비석, 수상자/4장 우리 마을의 종교 현황, 어제와 오늘/제5장 우리 마을 선인들의 생활문화) ▲제3편 리 행정 ▲제4편 우리 마을의 농업 및 축산 ▲제5편 우리 마을의 성씨 현황 ▲제6편 우리 마을의 민속.

이 '시목리지'의 원고를 집필한 이는 오랜 토박이 주민인 조기상(72)님이다. 자료 수집에 2년이 걸렸고, 집필 기간은 4년, 그리고 출판사를 오가며 작업한 기간이 1년이었으니 도합 7년이라는 시간을 바쳐 '시목리지'를 낳은 것이다.

나는 일차 완성된 원고를 받아서 검토해 드리는 일을 했다. 원고지가 아닌 종이에 연필로 씌어진 원고를 일단 출판사에 넘겨 컴퓨터 작업을 하게 한 다음 그것을 디스켓으로 받아서 내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놓고 세심하게 교열과 교정 작업을 해드렸다. 이렇게 '시목리지' 출간에 도움을 드린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내빈과 주빈들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내빈과 주빈들 ⓒ 지요하
교열 작업을 하면서 조기상님의 노고와 열정에 경탄을 하고 했다. 낮에는 논밭에서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원고 집필을 하는 노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숙연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기록'의 가치와 필요성을 절감한 나머지 이 일을 기획하고 시도하면서 이런저런 회의와 고달픔을 참으로 많이 겪었을 터이다. 그럼에도 그분이 그 일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향토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사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기상님은 '사목리지'의 '편집후기' 안에 이런 말을 적고 있다.

"조사와 연구를 병행하며 원고 작업을 시작한 것은 결국 수렁에 빠진 듯한 형국이 되고 말았다.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나로서는 감당 못할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진행과 포기 사이에서, 그 진퇴양난의 협곡에서 갈등과 번민을 거듭하며 깊은 시름 속에 빠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을 조기상님은 왜 했을까? 그 이유를 그는 '시목리지'의 '발간사'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마을회관 안에서 잔칫상 보는 일로 바쁜 마을 아주머니들
마을회관 안에서 잔칫상 보는 일로 바쁜 마을 아주머니들 ⓒ 지요하
"향토라는 말처럼 정이 가고 훈훈하고 포근하고 안정감을 주는 말이 또 있을까? 향토―즉 고향 땅은 선인들의 삶의 시발지요, 생활문화의 터전이다. 대대로 이어온 귀중한 삶의 터전이기에 선인들의 얼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향토에 대하여 연구하고, 향토문화를 더욱 아름답게 가꾸고 꾸며서 길이 보존해야 함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당연한 의무가 아니겠는가."

조기상님의 그 의무감을 시목2리 주민 모두가 깊이 이해하고 동의하며 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에 그는 그 의미 있는 대 작업을 완수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시목2리 주민 모두에게도 깊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더욱 영광스럽게도 '시목리지' 출판기념회 자리에 초대를 받아가서 정우영 문화원장 다음에 축사를 할 수 있었다. 그 축사에서도 한 말이지만, 다시 한번 '시목리지' 원고 집필자 조기상님과 시목2리의 모든 주민께 경의를 표하고, '시목리지' 출간을 도와주신 태안군, 태안문화원, 그리고 시목2리 출향인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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