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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4일 한겨레 사설 '청와대는 선관위 결정 존중해야'와 3월24일자 사설 '공무원노조의 민노당 지지선언'은 각각 따로 보면 매우 균형 잡힌 사설로 흠잡을 곳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의 방송토론 기자회견 내용이 공무원의 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선관위의 결정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을 다루고 있는 4일자 사설은 우리나라 선거법이 정무직인 대통령의 정치활동 범위를 규정하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구체적 기준 마련의 필요성을 간과하지 않고 있다. 또 24일자 사설 역시 공무원 노조의 민노당 지지 선언이 현행 지방공원법과 선거법을 어기는 행위임을 지적하고 일리 있는 비판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설의 결론은 다른 데 있다. 4일자는 현행 선거법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선관위의 결정을 존중하라는 것이며, 24일자 사설은 현행법 테두리를 어긴 것은 사실이지만 달라진 사회변화에 맞춰 공무원에게 너무 엄격한 중립성의 의무를 지우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두 사설이 공통으로 인정하고 있는 문제는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과 사회발전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선거법이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나 공무원 노조가 선언한 내용 모두 특정 당에 대한 지지 발언 또는 선언이 선거법상 공무원의 중립 의무를 위반했느냐와 관련되어 있다.

이 같은 논란은 선거로 선출된 정무직 대통령에게 합당한 정치활동의 범위를 명시한 규정도 없으면서 직업공무원에게나 적용되는 중립성을 요구하고, 공무원이기 전에 국민으로서 당연히 갖는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큰 낡은 선거법에 근본 원인이 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현행법을 앞세워 이러쿵 저러쿵 하기 보다는 법과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를 개선하는 데 촛점을 맞춰 사회 담론이 형성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겨레는 두 사설을 모두 읽은 독자에게 모순까지는 아니어도 일관성 없어 보이는 주문을 대통령과 독자에게 하고 있다.

공무원 노조의 민노당 지지 선언을 다룬 24일자에서는 "공무원의 선거부정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 현실에서는 관련 법도 시대변화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면서 공무원의 직종과 직위를 나눠 직무수행에 지장을 주는 정치행위만을 규제하는 선진국형으로 관련 법을 개정하는 문제도 본격적으로 검토해볼 시점이 됐다면서 적극적으로 법 개정을 주문하고 있다.

반면, 6일자 사설에서 한겨레는 '지침이 마련되기 전까지는'이라는 단서를 달아 현행 선거법에 근거한 선관위의 결정을 존중해야 마땅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청와대가 선관위 결정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며 반발하는 모습이 썩 유쾌하지 않다고까지 했다.

부실한 선거법 때문에 비롯된 문제라면 공무원 노조에 대해서 관대한 이해를 설득하며 했던 것과 똑같은 논리로 "대통령의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직무 수행에 지장을 주는 정치행위만을 규제하는 선진국형으로 관련 법 개정을 검토할 시점이 됐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공무원 노조가 민노당 지지를 선언했다고 공무원들이 민노당을 위해 관권개입까지는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면, 똑같이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는 대통령의 발언때문에 공무원들이 대통령이 지지하는 정당을 위해 관권 개입을 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는 왜 하지 않는가.

대통령과 공무원 노조는 다르고, 대통령의 발언이 미치는 영향력과 노조의 지지선언이 가져올 영향력이 다르다고 강변한다면 24일자 사설에서 든 "예전과 달리 공무원의 선거부정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 현실"은 공무원 노조의 민노당 지지때만 해당되고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발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대통령의 지지 발언이 있자 공무원들이 모두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의식과 태도로 회귀라도 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4일부터 24일까지 20일 동안 일거에 세상도 바뀌고 공무원들의 생각도 바뀌어 관권개입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게 됐다는 뜻인가?

아직까지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듣고 공무원이 열린우리당을 위해 관권 선거를 하다가 고발됐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공무원 노조의 민주노동당 지지선언이 상징적 의미 그 이상의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고는 보지 않으며,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그 정도의 양식은 있다고 확신한다.

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을 한 것이고, 노조는 노조답게 정치적 지향을 분명히 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문제는 다시 지극히 당연한 것을, 누구나 인정하는 상식을 담지 못해 현실과 겉도는 선거법이다.

대통령의 경우이든 공무원 노조의 경우이든, 한겨레가 주의 주장에 일관성을 가진 언론이라면 대통령을 대통령답지 못하게 하고 노조를 노조답지 못하게 막는 선거법 개정의 필요성을 똑같이 결론으로 삼아 강조했어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이 선거법의 허점을 제기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변호하는 것은 곤란하다면서, 공무원 노조가 법을 어기는 방식으로 선거법의 맹점을 드러내자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너무 좁게 해석하지 말라고 달라진 말을 하는 것은 이해는 하지만 납득하기는 어렵다.

혹여, 공무원 노조와 민노당에는 그토록 너그러우면서 대통령에 대해서는 모질게 몰아세우는 것이 언론다움이라고 생각해서인가? 그런 것은 아닌가? 진정으로 묻고 싶다.

한겨레를 사랑하기에 이런 섭섭한 질문을 던진다. 그래도 나는, 오늘밤도 컴퓨터 앞에서 잠 못이루다 새벽녘 문간에 던져지는 한겨레 소리에 맨발로 문을 열 것이다.

한겨레 사설 전문

공무원노조의 민노당 지지선언

전국공무원노조가 어제 대의원 총회에서 민주노동당 지지를 선언했다. 공무원노조의 이런 선언은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국가·지방공무원법과 선거법을 명백히 어기는 행위다. 이에 따라 공무원노조의 위법행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공무원이 앞장서 법을 무시하고 있으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라는 한탄에서부터, 나라가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공무원들까지 나서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 등 온갖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이런 비판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개탄이나 비판만 하고 있기에는 사회 흐름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이번 사태는 잘 보여주고 있다. 우선 공무원들이 여당이 아닌 진보정당 지지를 선언했다는 것 자체가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양상이다. 사실 우리 법률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다른 나라보다 훨씬 강도높게 규정하고 있는 것은 역대 정권에서 공무원들이 여당을 위해 선거부정을 자행해온 데 따른 반사적 성격이 짙다. 하지만 ‘공무원=여당’이라는 공식 자체가 무너지면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 의미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생겼다.

또 한가지 유의해 볼 대목은 공무원노조의 선언이 과연 개별 공무원들의 선거 개입으로까지 이어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 공무원노조의 선언은 선거 국면에서 나온 ‘노조 차원의 상징적 정치 행위’ 성격이 짙어 보인다. 일선 공무원들이 민노당을 위해 ‘관권 개입’을 할 것으로 우려할 정도는 아닌 듯하다.

이번 기회에 현행법이 너무 과도하게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전과 달리 공무원의 선거부정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 현실에서는 관련 법도 시대변화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 공무원의 직종과 직위를 나눠 직무수행에 지장을 주는 정치행위만을 규제하는 선진국형으로 관련 법을 개정하는 문제도 본격적으로 검토해볼 시점이 됐다.


청와대는 선관위 결정 존중해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에 대해 공무원 선거중립 의무규정 위반 결정을 내린 것은 매우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번 결정을 두고 ‘줄타기 결정’이니 ‘절충형 결정’이니 등의 비판도 많으나, 어쨌든 선관위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언행에 대해 선거법 위반 판단을 내린 것은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선관위의 결정을 두고 청와대와 야당에서 불만족스럽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선거법상 대통령의 합법적인 정치활동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규정 자체가 모호한 탓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직 공무원의 정치활동 허용 범위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사실 총선 결과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큰 영향을 끼치는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선거에 무관심하라고 무작정 강요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대통령의 정치적 의사표시가 행정직 공무원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을 두루 살펴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 수 있도록 지혜를 짜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지침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일단 선관위의 결정을 존중해야 마땅하다.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 개정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형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가 선관위 결정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며 반발하는 모습은 썩 유쾌하지 않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와 달라진 상황에서 대통령의 합법적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는 청와대의 주장도 일리는 있으나, 노 대통령이 ‘뭐가 잘못이냐’는 식으로 계속 발언하는 것은 곤란하다. 대통령이 먼저 법을 어기면서 어떻게 국민에게 준법의식을 강조할 수 있겠는가.

야당 한쪽에서 노 대통령의 탄핵을 검토한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과연 그럴 만한 사안인지는 의문이다. 걸핏하면 탄핵을 들고 나오는 것은 이제 너무 식상하다. 야당도 상식에 바탕을 둔 정치를 펼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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