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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8일, 소르본느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빅토리아는 2차 지방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선거 당일 파리를 떠나 고향인 리용에 도착했다고.
지난 3월 28일, 소르본느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빅토리아는 2차 지방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선거 당일 파리를 떠나 고향인 리용에 도착했다고. ⓒ 박영신
프랑스 좌파 연합, 본토 22개 주 중 21개 주 점령 지방선거 휩쓸어

이번 지방의회 선거 결과, 프랑스 본토 22개 주 중 21개 주를 좌파 연합이 석권했다. 1988년부터 본토 22개 주 중 14개 주를 관리해 온 우파는 알자스 단 한 주만을 간신히 유지하게 됐다.

프랑스의 첫번째 주인 일드프랑스(파리를 중심으로 한 행정 구역)를 비롯해 전 프랑스 대통령을 역임한 바 있는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이 출마했던 오베르뉴, 심지어 장 피에르 라파랭 프랑스 총리의 지반인 까닭에 상징적 전장이 되기도 했던 푸라투 샤랑트까지 무너져 집권 여당의 참패를 한층 부각시켰다.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 전 장관은 푸라투 샤랑트에서 자신의 승리를 확인하는 순간, '우파 시스템의 종말'과 '참여민주주의의 시작'을 선언했다.

선거 이튿날인 29일 내무부 발표에 따르면, 공산당(PCF)과 사회당(PS), 녹색당(Verts)이 뭉친 좌파 연합의 지지도가 50.11%에 달한 반면, 우파는 36.94%를 획득하는 데 그쳤다. 극우당 국민전선(FN)의 경우, 12.54%의 표를 거둬들여 1998년의 15.3%, 2002년 대선 기간의 17.2%와 비교해 다소 감소했지만 무시할 수 없는 프랑스의 세번째 정치 세력임을 과시했다. 반면, 지난 대선에서 정치 해일의 주역으로 떠올랐던 노동자투쟁당(LO)과 혁명공산당(LCR) 등 극좌파는 다소 후퇴했다. 결선 투표 기권율은 34.21%로 지난 3월 21일의 1차 투표 때보다 3.6% 가량 줄었다.

시라크, 끝의 시작

유럽의 언론은 주 의회 선거에서 참패한 프랑스 우파를 지난 3월 14일 스페인 총선에서 승리한 사회노동당(PSOE)과 비교하며 2002년에 조직된 라파랭 내각이 노선을 수정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3월 29일자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이 사건을 일러 "시라크, 끝의 시작"이라 칭했다. 이번 선거는 집권 후반기로 들어서는 시라크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라파랭 총리의 운명을 점치기도 했다. 주 의회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라파랭 총리 체제를 유지한 것이 지난 21일 1차전 실패를 증폭시키는 역할만 했던 것이다.

2차 선거 다음날인 29일부터 당장 라파랭 총리 경질설이 나돌았고 차기 총리로는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과 도미니크 드빌팽 외무장관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다. 사르코지는 올해 초, 한 여론조사에서 40%를 넘는 인기도를 기록하면서 인기 하락세의 시라크 대통령과 라파랭 총리를 앞지른 바 있어 차기 총리로 유력해 보였다.

그러나 시라크 대통령은 라파랭 총리의 유임을 결정했다. 3월 30일, 엘리제궁을 방문한 라파랭 총리는 내각 총사퇴서를 제출했고 총 사퇴서는 수리됐다. 하지만 시라크 대통령은 재차 라파랭을 총리로 지명하고 새 내각 구성을 지시했다.

파리의 거리에는 유독 사회당 후보의 선전 포스터가 눈에 띈다
파리의 거리에는 유독 사회당 후보의 선전 포스터가 눈에 띈다 ⓒ 박영신
뒤집어진 4·21 정치 대지진

3·28 주 의회 선거 결과는 지난 2002년 4월 21일, 대선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대규모 선거인 까닭에 현 정부의 중간 평가로 볼 수 있다.

2002년 말부터 불거진 공무원과 공공운송 노동자 파업, 2003년 연금개혁 항의 시위와 교육지방 분권화에 반대하는 교사 시위, 실업수당 제도 개정으로 촉발돼 프랑스 각종 축제 마비 사태까지 불러온 공연예술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 살인적인 폭염 사태, 담뱃값 인상에 항의하는 역사상 첫 담배소매상 시위, 이슬람 여성의 머리 수건 히잡 착용 금지 법안에 따른 이슬람 항의 시위, 실업수당 감소로 인한 실업자 시위 그리고 최근에는 이공계 홀대에서 비롯된 과학연구원 시위까지 시라크 재선 이후 2년 동안 말 그대로 사회 문제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그러나 여론을 무시한 라파랭 내각은 '사회 개혁'의 '한길'로 부단히 내달려만 왔다.

정치 분석가들은 이번 우파의 완패를 가리켜 정부의 경제, 사회 정책에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라고 평가했다. 동시에 이것은 극우당 국민전선에 밀려 대선 1차전을 통과하지 못한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당시 총리의 정계 은퇴까지 야기시켰던 4·21 정치 대지진과 좋은 대비가 되기도 한다.

당시 프랑스인들은 결코 시라크를 '위해' 표를 던진 것이 아니었다. 극우당 후보 장 마리 르펜에 '반대'해 투표했던 것이다. 2002년 극우당 후보를 상대로 압승을 거둔 시라크 대통령이 2년간 잊고 지낸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결과적으로 시라크는 알랭 쥐페 당시 총리와 결별해야 했던 1997년으로 되돌아간 상황에 처했는데, 2년 전의 사회당 총리에서 오늘날 집권 여당 총리의 위기로 전환된 이번 선거는 그래서 '4·21 정치 대지진의 역전' 현상으로 읽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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