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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경기도 광주시 특전교육단에서 열린 '이라크 평화·재건사단 창설식'.
지난달 23일 경기도 광주시 특전교육단에서 열린 '이라크 평화·재건사단 창설식'.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정부의 이라크 파병이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2차 파병을 요청 받았을 때 "국민여론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결정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약속은 여론이 불리하게 형성되자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비전투병 위주로 파병하겠다"는 당초 파병 계획 역시, 미국으로부터 "지금 뭐 하자는 거냐"는 핀잔을 듣고서는 전투병 위주로 슬그머니 바꾸었다. 국민들한테 사과는 고사하고 해명 한마디 없이….

정부의 추가파병동의안에 배치 지역도 없고 부대의 편성과 정확한 임무도 명시되지 않았으며, 정부의 자의적인 예산 집행을 막기 위해 헌법에 명시된 '예산안'도 없는 것이 확인되면서 절차상의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도, 일단 국회에서 통과시켜주면 미국과 협의해서 정하겠다는 태도로 '백지수표'를 받아내기도 했다.

키르쿠크로 파병 지역이 결정되자, 여러 언론과 시민단체는 이 지역이 새로운 분쟁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재고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키르쿠크는 안전한 지역"이라고 강변하면서 파병을 강행하려고 했다가, 미군과의 공동 주둔 및 작전 문제가 불거지자 "키르쿠크는 위험해 평화재건 활동이 어렵다"면서 발을 뺐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미국의 '지침'을 기다리다가 미국 측에서 쿠르드족 자치지역인 아르빌과 술라이마이냐 중 택일하라는 통보를 받고서는, 왜 그 지역에 가야 하는지 제대로 된 설명 한번 없이, 6월 파병을 전제로 현지조사단을 파견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묻지마 파병'인 것이다.

이미 여러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자치지역은 1991년 걸프전 이후 미영연합군이 비행금지구역(no fly zone)으로 지정해 후세인 세력의 유입을 차단한 사실상의 독립 지역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번에는 '전쟁의 화마(火魔)'를 피할 수 있었다. 전쟁을 치르지 않은 지역에 '전후복구와 평화재건'을 위해 간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 뿐만이 아니다. 이라크 북부 지역은 독립국가 건설을 원하는 쿠르드족과 분리 독립을 저지하려는 아랍계 사이에 첨예한 갈등을 잉태하고 있는 곳이다. 이 지역에 제3세력이 잘못 발을 디뎠다가는 아랍권 전체의 분란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경고도 이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쿠르드족의 독립을 지원하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면, 그 곳에 갈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평화재건군'인가, '부시 재선 지원군'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이라크 추가 파병을 강행한다는 것은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부시 행정부의 체면을 세우는 것에 불과하다.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려고 이라크 전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대량살상무기(WMD)는 나오지 않았다. 애초부터 WMD는 이라크가 아니라 부시 행정부의 마음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위세에 눌려, 혹은 '떡고물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이라크 침공에 함께 발을 디뎠던 많은 국가들이 "부시한테 속았다"며 철군 방침을 밝히면서 부시 행정부는 더욱더 궁지에 몰리고 있다. 한국의 이라크 추가 파병이 애초부터 성립할 수 없었던 '평화재건'과는 거리가 먼 '부시의 체면 살려주기'라는 초라한 정치적 구색 맞추기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이라크에 대규모로 파병하면, 부시 행정부가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적극 나설 것처럼, 노무현 정부는 국민들에게 말했지만, 부시의 대북정책은 날로 강경해지고 있다. 협상에는 나서지 않으면서 과거 팀스피리트 훈련에 버금가는 훈련을 실시하는가 하면, 북한을 염두에 둔 미사일방어체제(MD)와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한 파병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그것도 수많은 국민들이 빈곤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데, 3천억원에 가까운 국민혈세를 아무런 명분도 실리도 없이 퍼주면서 말이다.

'평화개혁세력' 자처하는 정당은 뭐하고 있는가?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온통 총선에 정신이 팔려, '묻지마 파병'에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있다. 특히 '평화개혁세력'을 자처하면서 선명성 경쟁을 벌여온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침묵'은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당초 '전투병 반대, 비전투병 찬성'을 당론으로 정했던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정부의 '정신적 여당'을 운운하면서 이라크 추가 파병안에 백지수표를 주는데 앞장섰다. 이러한 결정에 책임을 지겠다던 열린우리당은 파병이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데 아무런 언급조차도 없다. 의원직을 걸고 전투병 파병을 막겠다던 임종석 의원도, 고뇌에 찬 결단을 이해해 달라던 김근태 이원도 '묻지마 파병'의 공범이 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어떠한가? 논란 끝에 정부의 파병동의안에 반대를 당론으로 정했던 민주당은 국회의 파병동의안이 통과되면서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파병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의 적개심에 불탄 나머지 '탄핵'이라는 트로이의 목마를 가지고 노무현 정부를 무너뜨리려고 했지만, '민주주의의 위기'를 본 성난 민심 앞에 존폐를 걱정해야 할 상황에 내몰리고 말았다.

만약 민주당이 탄핵이 아니라 '파병 반대'라는 트로이의 목마를 가지고 국회 입성을 시도했다면 어떠했을까?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했던 탄핵을 추진하면서도, 과반수 이상의 국민이 반대했던 '파병 반대'를 선거전략으로 삼지 못한 민주당의 우매함이 측은해 보이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열린우리당은 당론까지 뒤집어가면서 정부의 파병동의안에 대해 찬성하면서 그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그 책임을 져야 할 시점은 바로 지금이다. 평화재건군이 아니라 부시의 재선 지원군이 되고 있는 어이없는 파병 계획을 17대 국회에서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말해달라. 그렇지 않으면 열린우리당이 말하는 '평화개혁세력' 앞에는 '사이비'라는 수식어가 영원히 따라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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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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