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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가 뒷 다리부터 나오고 있다
새끼가 뒷 다리부터 나오고 있다 ⓒ 전희식
새벽에 일어났는데 우리집 진돗개 '금이'가 낑낑대는 소리가 나서 순간적으로 '맞다. 새끼 낳는구나'싶어서 마당 구석에 있는 개집에 가 봤는데 정말 금이가 새끼를 낳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금이' 목줄이 말뚝에 칭칭 감겨 있고 개 집 속에 깔아 준 몇 장의 수건은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밤새 진통이 오죽 심했으랴 싶어 부랴부랴 말뚝에 감긴 개 목줄을 풀어주고 마른 수건을 가져다 다시 깔아주었는데 자리를 만들어 주자마자 새끼 한 마리를 툭 낳아버렸다. 새벽 여섯시가 조금 못 된 시간이었다.

어른 팔뚝만한 강아지가 태반을 쓰고 나오자마자 금이는 얼른 태반을 벗겨내서 다 삼키고는 강아지를 정신없이 핥았다. 마침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어서 우산을 갖다 씌울까 했는데 그럴 새도 없이 두 번째 강아지를 또 낳았다. 첫 번째 강아지가 꼼지락거리기에 개 집 속으로 옮겨 놓았다.

이때부터 자그만치 세 시간동안 '금이'는 강아지를 여섯 마리나 낳았다. 나는 그 세 시간동안을 성실한 조산부가 되어 강아지를 받아냈다. 우리 '금이'가 어릴 때 내가 술을 먹여 취하게 해서 겨우겨우 목 굴레를 씌운 일 하며 목줄이 풀어져 앞집 할아버지 남새밭을 뛰어다녀 야단맞던 일. 다시 '금이'를 개집에 묶어 놓기까지 치렀던 여러 사건들이 떠올랐다. 내가 맡은 조산부의 역할은 아래윗집 개나 할아버지들이 지나가다가 우리 '금이'를 놀라게 하는 일이 없게 하는 것 뿐이었다.

밤새 산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개집에 깔아 준 수건을 갈갈이 찢어 놓았다.
밤새 산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개집에 깔아 준 수건을 갈갈이 찢어 놓았다. ⓒ 전희식
새날이와 새들이가 전날 각자 자기 학교로 돌아가면서 새끼 낳는 걸 못보고 간다고 그렇게 애통해 했는데 그네들이 가자마자 이렇게 새끼를 낳으니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애들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었던 것이다. 나는 세 시간을 쪼그리고 앉아 새끼 낳는 광경을 찍었다. 어릴 때 송아지 낳는 건 봤는데 강아지 낳는 것은 처음 보았다. 개는 주로 마루 밑에 어둑어둑한 곳에서 새끼를 낳았었고 어머니가 애들은 얼씬도 못하게 했기 때문에 그렇다.

'금이'는 10분에서 30분 간격으로 새끼를 낳았는데 네 마리 째 낳고나서는 몹시 지치는지 축 늘어져서 숨을 헐떡거렸다. 눈을 스르르 감고 맥을 놓고 있을 때도 새끼들이 깨갱거리면서 젖꼭지를 파고들면 눈을 번쩍 뜨고는 본능적으로 새끼들을 핥아 주었다.

그러다가 다시 '금이'는 신음소리와 함께 산통을 시작하고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새끼를 낳았다.

지난 겨울방학 때 집에 있던 새날이와 새들이가 '금이' 짝짓기 하는 걸 봤다고 하기에 그렇잖아도 '금이'를 시집보낼 때가 되었는데 생리를 하나 어쩌나 살피던 중이여서 어느새 짝짓기를 다 했나 싶어 여간 반갑지가 않았었다.

그런데 새날이 이야기가 걸작이었다. 수캐가 누구네 개냐고 했더니 동네 돌아다니는 못 생긴 수캐 한 마리가 있지 않느냐면서 그 못생긴 놈하고 짝짓기를 하기에 쫒아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럼 짝짓기가 제대로 안 된 거냐고 하니까 새들이는 됐다고 하고 새날이는 안 됐을 거라고 했었다.

출산이 임박해서는 양지바른 곳에 누워 쉬곤 했다. 불뚝한 배가 보인다.
출산이 임박해서는 양지바른 곳에 누워 쉬곤 했다. 불뚝한 배가 보인다. ⓒ 전희식
그 후로 나는 목을 길게 빼고는 멀리 동구 밖에 혹시나 그 못생겼다는 수캐님이 오시려나 학수고개 하고 기다리게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못 보던 수캐 한 마리가 '금이'한테 얼씬거리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못 생긴 개였다.

명색이 진돗개는 진돗갠데 몇 배 잡종인지 보통의 진돗개가 가진 품위라고는 전혀 없고 빌어먹는 거렁뱅이 개 행색이 졸졸 흘러 내렸다. 눈빛도 흐리멍텅 하고 어딘지 비굴해 보이기까지 해서 당시에는 ‘아이구 내 팔자야’ 싶었다. 우리 '금이'가 어떤 갠데 저런 거렁뱅이 놈한테 시집을 보내다니 싶어서 한숨이 나왔다.

주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금이'는 좋아 죽을 지경이 되어 연신 싱글벙글 킁킁대면서 서방님을 환대하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이왕 엎질러진 물인데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네 놈이 안 그러면 어디 가서 평생 수놈 구실 한번 제대로 하랴 하면서 체념했는데도 마음 한 구석이 켕겼다. 속으로 못마땅한 내가 구시렁대면서 '금이' 서방 개 몫 까지 두 마리 먹을 개밥을 가져갔는데 내 눈치를 챘는지 그 수캐는 금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그 후로 두 번 다시 눈에 띄지 않았고 우리 <금이>도 사람들이 하는 짓과는 달리 울고불고 사네 못 사네 그립다느니 하는 헤어짐의 아픔도 없이 오늘 이렇게 새끼를 낳은 것이다.

여섯마리의 새끼들
여섯마리의 새끼들 ⓒ 전희식
족보 있는 개니 혈통이 어떠네 하는 이야기도 사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고 동물들이 서로 구별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섯 번째로 막내둥이 강아지를 낳을 때는 처음부터 카메라로 잡을 수가 있었다. 세 시간을 쪼그리고 있었던 덕분에 강아지가 나오는 전 과정을 다 찍었다.

동물들은 어쨌든 제 힘으로 새끼 낳고 제 힘으로 새끼 돌보고 산후 조리도 따로 없이 가볍게 몸을 일으켜 바로 정상 생활을 하는데 사람은 참 더디다는 생각을 했다. '금이'의 남산 같던 배가 홀쭉해져서 나는 금이 밥을 특식으로 챙겨 주었다. '금이'는 새끼를 낳기 전날은 온 종일 개밥은 물론 물도 안 마시고는 진통을 했었다.

시골로 내려와서 개를 여러마리 키워 봤지만 새끼까지 낳기는 처음이었다. 자동차에 깔려 죽고, 쥐약 먹고 죽고, 닭은 여러마리 물어 죽여서 개 장사에게 넘겨버리고 등등 개를 키우면서 하도 여러번 실패를 하여 개하고는 인연이 아닌가보다 싶어서 개 기르는 것을 그만 둘까 하던 차에 '금이'가 여섯마리씩이나 새끼를 잘 낳으니 마음에 짐이 내려 놓아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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