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4월은 유채꽃 소식부터 시작된다. 길이 열리는 곳에는 어디든지 꽃이 있다. 도심지의 자투리 빈 공터에서부터 제주의 섬 끝까지. 하늘에서 바라보는 제주의 풍경은 노란 물감을 엎질러 놓은 듯, 섬 전체가 노랗게 물들어 있다.
사람들은 제주를 삼다(三多)의 고향이라 하지만, 검은 돌담 사이에서 방울방울 피어나는 유채꽃 봉오리 역시 수를 셀 수 없으리 만큼 넓은 벌판을 이룬다. 더욱이 도로주변에서 파도처럼 출렁거리게 하는 꽃물결은 비록 가로수는 아니지만, 오가는 이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든다.
잠시 차를 갓길에 세우고 꽃 속의 그림에 취해 보는 사람들. 유채꽃의 향연은 쪽빛 바다와 함께 어우러질 때 더욱 환상적이다. 투명한 바다만큼 말고 깨끗한 것이 있다면, 티없이 맑게 피어있는 꽃들의 표정이다. 꽃잎을 따서 바다 위에 띄워볼까?
어린 시절, 강가에서 종이배를 만들어 어딘가에 띄워 보냈던 생각이 났다. 주소지도 없이 띄워보낸 종이배의 사연을 누가 받았을까?
그리고 잠시 차에서 내려 유채꽃잎 하나를 툭 땄다. 어디로 띄워 보낼까?
어릴 적 내가 종이배를 띄웠던 곳은 아주 먼 나라로 떠나 버린 아빠가 사는 하늘나라였다. 그래서 그 종이배에는 하늘나라 주소가 적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마 지금 그 종이배의 소식은 아빠의 품에 안겼을 것이다.
갓 피어난 노란 꽃망울이 수줍은 듯 봄볕에 그을어 있다. 꽃잎 사이로 살며시 얼굴을 내미는 모습은 마치 병아리의 모습과도 같다. 여린 꽃잎 사이에는 꽃잎만큼이나 가느다란 줄기가 있다. 세찬 바람에도 부러지지 않고 꽃잎을 지탱하는 모습에는 강한 생명력을 낳게 한다.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 벌판. 제주에서는 어느 곳에 가든지 끝없이 이어지는 유채꽃 벌판을 만날 수 있다. 그 노란 벌판은 꿈과 낭만은 물론, 마음속에 끼어 있는 때를 벗기게 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제주시 노형로타리 5거리 부근, 이곳은 출퇴근 시간에 유난히 차들이 밀리는 장소이다. 이 5거리의 넓은 안전지대에 마치 탑을 이루듯 유채꽃이 장관을 이뤘다. 자동차에 갇혀 있던 사람들도 유채꽃의 향긋함에 취해 보기 위해서인지 살며시 창문을 연다.
펄럭이는 깃발처럼,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유채꽃 물결은 자연의 이치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시내를 벗어나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유채꽃의 향연에 몇 번이나 브레이크를 밟게 만든다. 이곳에서는 꽃향기와 꽃물결에 도취되어 자동차의 속력을 늦춰도 서두르지 않는다.
문명의 이기를 밝혀 주는 전봇대를 사이에 치달리고 있는 유채꽃의 물결은 문명과 순수가 함께 공존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거리를 가공하고 있는지.
항상 동쪽 하늘에는 하늘이 먼저 열린다. 그곳은 바다가 열리기 때문이다. 투명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기다림을 낳게 하는 일송정의 일출봉 바다가.
제주시내에서부터 유채꽃 물결을 따라 달려갔던 일출봉의 입구에는 벌써 봄이 쉬어가고 있었다. 남도의 꽃 소식을 따라 동쪽의 끄트머리까지 찾아온 많은 관광객은 추억을 담느라 한창이다.
그 초가를 배경 삼아 가슴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 순간 얼마나 행복할까? 바람이 불어오자 유채꽃 틈새로 보이는 섬 속의 섬은 또 하나의 환상으로 다가왔다
더욱이 제주에서는 오는 4월 17일부터 19일까지 '제 22회 유채꽃 잔치'가 열린다. 관광객들과 제주도민이 함께 어우러진 유채꽃 잔치는 유채꽃길 건강 걷기 및 등반대회. 관광객 도전열전 및 사물놀이 공연이 남제주군 표선면 가시리 '정석 항공관'에서 열리게 된다.
또한 행사장내에는 조랑말을 이용한 승마체험과 가훈 써주기. 농특산물 홍보관 및 직판코너 운영과 관광사진 전시회와 유채꽃 사진 전시회도 열리게 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남국의 정취에 실컷 취해 보는 순간, 어디서 날아 왔는지 꿀벌 한 마리가 유채꽃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열심히 일하는 벌의 모습은, 다시 나를 생존 경쟁의 세상 속으로 인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