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겨울추위 그토록 완고턴가
자목련 꽃망울 터짐이 두려울세라
아직도 추위에 입다물고
단풍새싹도 날개를 접었어라
봄처녀 그토록 시샘이 많으신가
화사한 연지곤지 피어날수록
에는 듯 냉가슴 깊어만 간다..."
탄핵정국 칼럼 게재거부로 잠정 절필을 선언한 도올 김용옥 중앙대 석좌교수가 총선을 앞둔 정국과 관련한 자신의 심경을 담은 시 '4월'을 공개했다.
| | | "투표권은 인류문명의 성과물" | | | 도올, MBC 특강에서 젊은세대 투표참여 호소 | | | | 15일 총선 투표일을 하루 앞두고 인터넷의 각종 게시판에는 젊은 세대의 투표참여를 독려한 도올 김용옥씨의 특강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도올은 지난 5일 MBC '도올특강' 말미에 약 30초간 유권자의 투표참여를 호소했다. 네티즌들은 해당 장면을 각종 사이트에 퍼다 나르며 투표 독려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다음은 도올이 투표를 독려한 발언이다.
"앞으로는 우리 (이번) 총선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투표장에 가야 됩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젊은이들, 한 명도 빠지지 말고 투표장에 가서 귀중한 한 표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세요.
무슨 얘기이냐 하면, 인류문명이 만 20세의 어린 아이들한테 투표권을 주기까지 희랍인들의 데모크라시부터 시작해서 2500년 동안 노력해서 오늘의 여러분들에게 투표권 한 표가 주어진 거에요.
이것은 인류의 2500년 동안 왕정과 투쟁해서 얻은 결과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살고 있는 여러분들은 나의 존재를 오늘의 우연적 존재로 생각하지 말고 기나긴 인류사 정신문명의 성취 속에서 나의 존재가 있다는 걸 깨닫고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해주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 | | |
도올은 12일 오후 중앙대학교 아트센터 1층에서 진행되는 '전통과 사상' 강의에서 '4월'을 낭독했다. 700여 명의 학생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이날 강의에서 도올은 "아침에 일어나 문득 서재 앞 꽃을 보고 쓰게 됐다"고 밝혔다.
도올은 "겨울추위가 터지는 꽃망울도 못 터뜨리게 하는가"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시상(詩想)'을 전달하기도 했다. 특히 도올은 최근 정국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비유한 듯한 "에는 듯 냉가슴 깊어만 간다"를 읊는 대목에서 다소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
도올은 이날 '4월'을 낭독한 뒤 '사회정의'에 대한 소견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회정의는 지켜져야 한다는 게 철학자로서 나의 생각"이라고 밝힌 도올은 "총선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사회정의는 확대되리라 믿는다"고 낙관했다.
도올은 또 "동학혁명 이래 2세기동안 진보를 향한 거족적 줄달음을 쳐온 역사의 수레바퀴가 한 사람의 말 실수로 좌절되는 듯하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이 총선 정국에 미친 영향을 빗댄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또 총선 정국 등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기춘 국회 소추위원이 대통령 탄핵을 해놓고 선거운동 때문에 변론을 미루자고 한 얘기는 매우 큰 문제다. 실수 정도가 아니다. 그런데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라디오 방송에서 '지금 저와 싸움하시자는 거예요'라고 한 말은 당찬 여자로 비쳐지고 재산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박세일 한나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의 해명은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공정한 게임이 돼야 하는데..."
그러나 도올은 "사회 진보를 위해 역사의 수레바퀴가 전진하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대세"임을 강조했다. 이어 도올은 천한 무당집 아들로 태어난 공자가 동양의 성인으로 발전하는 '혁명적' 생애를 열렬히 논했다.
도올은 "노나라에서 법무장관격 직위인 '대사구'까지 올라갔던 공자는 완전한 개혁을 시도하다가 수구 기득권에게 좌절됐다"며 "14년간 유랑의 길을 떠났다가 되돌아와 동양문명의 스승이자 교육자로 우뚝 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공자가 꿈꿨던 '완전한 개혁'은 요즘으로 치면 '혁명'이었다는 게 도올의 해석이다.
한편 도올은 최근 현직 판사가 지난 30일 <문화일보>로부터 게재를 거부당한 '민중의 함성이 헌법'이라는 칼럼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과 관련, "현직 법관답게 자기 논리에 입각해서 논리를 펴야지, '현학자의 독선'이나 '도올은 법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 비방하거나 헐뜯는 일은 삼가는 게 좋다"면서 "법조문을 해석하는 사람답지 않은 표현은 법관의 체통을 훼손시키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이날 밤 도올과 추가로 나눈 전화인터뷰 일문일답이다.
- '4월'을 보면 최근 정국에 대한 견해를 은유적으로 밝힌 듯한데.
"지금 상황에서 어느 한편에 손을 드는 게 아니다. 다만 철학자로서 사회정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현실을 보면 동학혁명 이래 굴려온 혁명의 수레바퀴가 단순한 말 실수 하나로 깎이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 단순한 말 실수는 무엇을 말하는가.
"구체적으로 꼭 누구를 가리킨다기보다 말 실수가 정치인의 자질을 평가하는 잣대가 돼버린 듯해서 유감이다. 실수는 누구나 하는 것인데 마치 한 사람만 하는 것처럼 비치고 있다. 가령 김기춘 국회 소추위원이 대통령 탄핵을 해놓고 선거운동 때문에 변론을 미루자고 한 얘기는 매우 큰 문제다. 실수 정도가 아니다. 그런데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라디오 방송에서 '지금 저와 싸움하시자는 거예요'라고 한 말은 당찬 여자로 비치고 재산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박세일 한나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의 해명은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공정한 게임이 돼야 하는데..."
- 왜 그렇다고 보는가.
"거대신문이 이같은 문제를 취급하는 방식 때문이다. 정동영 의장의 말 실수에 대해 일방적으로 치우치는 발언을 계속 하고 있다. 어찌 보면 골병들게 하는 형국이다. 어설픈 선거전략 속에 진실이 있을 수도 있는데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그려지는 이미지에 국민 마음이 동요한다든가, 사회정의를 향한 마음이 흔들리면 안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 최근 한 현직 판사가 지난 30일 <문화일보>로부터 게재를 거부당한 '민중의 함성이 헌법'이라는 칼럼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는데.
"법조계에서 그런 논쟁이 벌어질수록 좋다. 그러나 그 판사와 나는 근본적으로 입각점이 다르기 때문에 반박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본다. 법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드러나 있다. 논란이 되려면 동일한 대상에 대한 입각점이 같아야 한다."
- 그 판사는 '선동적인 다중의 힘으로 실정법을 거스르는 것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폭력이거나 혁명'이라며 칼럼 내용을 반박했다.
"그 판사는 실정법 중 성문법 입장에서만 얘기하고 있다. 거기에 좁은 해석이 있다. 나는 불문법의 전통에서 법을 바라보는 것이고, 성문법도 자연법 전통의 관점에서 얘기한 것이다. 그러나 그 판사의 주장은 현역 법관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이다. 내용은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직 법관답게 자기 논리에 입각해서 논리를 펴야지, '현학자의 독선'이나 '도올은 법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 비방하거나 헐뜯는 일은 삼가는 게 좋다. 법조문을 해석하는 사람답지 않은 표현은 법관의 체통을 훼손시키는 행위이다."
- 또 '실정법이 민중에 의해 언제든 거부될 수 있다는 주장인 듯해 법조인으로서 모욕당한 느낌'이라고 밝혔는데.
"법관이 오히려 법에 대해서 더 모를 수 있다. '악법도 법'이라는 논리가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있고, 아닌 상황이 있다. 국민이 법에 대해 말하는 것을 법조인 영역을 침해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그것은 만약 누가 철학을 얘기한다고 해서, 철학자 영역을 침해하는 것이니 '하지 말라'고 하는 바와 같다. 얼마나 웃긴 얘기인가. TV에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의료 및 건강상식을 얘기하면 그것도 (의사들의) 의료권 침해인가? 마찬가지로 법이라는 것도 법관이 독점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미국 등 서구에서는 민중의 법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배심제도를 발전시켜온 것 아닌가."
- '법'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다른 듯하다.
"나는 법은 존재의 세계가 아니라 생성의 세계라고 본다. 그 판사는 법에 대한 나의 입각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누차 강조했지만 이번 탄핵정국을 계기로 국민들이 법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헌법은 국민이 건드릴 수 없는 영역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도 죽었다'고 얘기하는 시대 아닌가. 니체는 19세기에 벌써 '신은 죽었다'고 말했는데 법학자들이 왜 '헌법은 죽었다'고 말을 하지 못하는가."
다음은 도올이 공개한 시 '4월'이다.
사월
(도올 김용옥)
뜨락 잔디사이로
제비꽃 살곳이 고개들고
개나리 노란빛
새벽안개 물들인다
기나긴 겨울추위
그토록 완고턴가
자목련 꽃망울
터짐이 두려울세라
아직도 추위에 입다물고
단풍새싹도 날개를 접었어라
봄처녀 그토록
시샘이 많으신가
화사한 연지곤지
피어날수록
에는 듯 냉가슴 깊어만 간다
봄이여 오소서
꽃버선 내팽기고
맨발로 달려오소서
봄이여 오소서
흰너울 창공에 벗어날리고
내품에 안기소서
사월 십이일 아침
무정재에서
http://www.dosu.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