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오는 잡지나 단체의 회보가 한 달에 엿 댓 종류나 있어 꼼꼼히 다 읽기도 전에 다음달 잡지가 우편으로 배달되곤 한다. 계간지가 오는 달에는 윗목에 차곡차곡 쌓아 둔 채 다음달 치 읽을 거리들을 받아보기 일쑤다.
이중 겉장 표지에서부터 뒷장 광고까지 다 읽는 잡지가 꼭 한 권 있으니 바로 <귀농통문>이라는 잡지이다. 이번 봄호 역시 내가 아는 사람들 사진과 글이 수두룩하다. 나는 <귀농통문>을 <녹색평론> 보다 훨씬 생동감 있는 생태잡지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몸소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쓰는 글이 수록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 저런 인연으로 대충 인사만 나누었던 사람의 농사이야기나 생활 글을 대하면 하루 밤을 새워 술잔을 기울인 것 못지 않게 친숙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특히 이번 호에서는 박종관님의 글을 보고 그분이 신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유기농 단체인 '정농회'의 농민 모임에서 여러 번 만났고, 경북 상주에 있는 그분의 포도 농장에도 작년 겨울 방문한 바 있었다. 3년 동안이나 남의 집 머슴살이까지 하면서 귀농을 결행했다는 것을 읽고는 이제 30대 초반의 그가 어디서 그런 용기를 냈을까 신기하고 반가웠다. 포도농사를 친환경적으로 지으면서 겪는 애환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이점에서는 배동분님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으로만 뵙던 분인데 곡절 많은 귀농 과정이 그분의 뛰어난 글 솜씨와 어우러져 재미있는 '라이프 스토리'를 듣는 기분이다. 특히 이번 호에 실린 송한내 양의 홈 스쿨링 이야기는 잊었던 안부를 확인하는 꼴이었다.
내 딸 새날이와 같은 날 실상사 작은 학교 예비모임에 왔던 송한내 양을 2년 전,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에 부모님과 함께 걸을 때 만나고는 <귀농통문>에서 지면으로 다시 만난 것이다.
스스로 배우고 읽혀 가는 송한내 양의 홈스쿨 이야기에서 그 아이가 학교 밖에서 찾는 참 공부가 무엇인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이 글을 읽고 송 양의 아버지인 송한철 선생에게 인사도 하고, 산두벼 종자도 구할 겸 막 연락을 하려다 다른 데서 구할 수 있어 그만두었는데,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짐작해 본다.
현직 한의원 원장이신 박석준 선생의 대안적 의료 이야기와 녹색대학교 교수인 혹치(양동춘) 선생님의 부항을 이용한 발포 이야기가 이번 호로 연재를 마쳐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강원도 양양에 사는 여든 두 살 이옥남 할머니의 농사일기는 예스런 말투가 감칠맛이 난다. 기교가 없는 간결한 사실적 표현들은 시골 할머니가 아닌 다음에야 그 누구도 쓸 수 없는 글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이런 할머니를 찾아내 글을 싣게 했을까' 읽을 때마다 신기할 따름이다.
<귀농통문>은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발행하는 계간지이다. 회원들에게만 배부하는 잡지로 매회 2500부가 발행되고 있는데, 꼭 귀농잡지라기 보다 종합생태환경잡지라고 할 수 있다. 생태적인 농사 이야기도 있고 지역별 귀농학교의 강좌도 소개되어 있다.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이나 생태적인 삶은 추구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적합한 잡지다. 귀농운동본부가 내세우는 '생태적 가치와 자립적 삶을 위하여' 이 책은 만들어진다. 집짓기나 옷 만들기 그리고 농사짓기와 몸 돌보기가 살아가는 사람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단, 서점에서는 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