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규제 웬말이냐 표현의 자유 보장하라!"
"집시법 개악 주도한 경찰청을 규탄한다!"
15명 남짓 참가자들의 구호소리는 이미 90데시벨을 넘었다. 마이크와 앰프만으로 발언을 해도 3m께 떨어진 소음측정기는 87∼89데시벨을 기록한다. 측정기에 대고 "아, 아" 소리를 냈더니 100데시벨이 나온다.
20일 오전 11시 경찰청 앞에서 열린 '개악 집시법(집회와시위에관한법률) 대응 연석회의'(이하 집시법연석회의)의 집시법 시행령 소음규제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은 아예 소음측정기를 대기시켜놓은 상태에서 진행됐다. 개정 집시법의 소음 관련조항이 얼마나 과도한 규제인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집시법연석회의는 "집회 개념 자체가 '다수 군중이 모이고, 모인 사람들끼리 또는 주변 시민들에게 의사를 표시하는 것'인만큼 일정한 장소를 점거하고 소음이 발생하는 것이 당연한다"며 "헌법은 집회시위 자유를 보장하는 순간 이미 소음발생 등의 용인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5명 육성구호에도 90데시벨... 대규모 집회는 엄두 못내
이날 기자회견이 집회 형식이었다면 이미 불법이다. 80데시벨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입법예고된 개정 집시법 제 12조의 3은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는 확성기·북·징·꽹과리 등 기계·기구의 사용으로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소음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을 위반하는 소음을 발생시켜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소음'이란 주간 80데시벨, 야간 70데시벨. 학교와 주거지역은 주간 65데시벨, 야간 60데시벨이다. 이 기준을 넘으면 주변 기업이나 국가기관, 상인들은 집회주최단체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할 수 있다.
경찰당국은 확성기 사용중지, 압수와 일시보관조치를 할 수 있고, 집회 주최자가 이러한 조치를 거부 방해하면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 벌금으로 형사처벌까지 당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소규모 시위나 침묵시위가 아니고서는 이러한 집회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집시법연석회의'의 입장이다. 촛불대회나 노동절대회 등 음향시설을 갖춘 대규모 집회는 법적으로 원천봉쇄되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 10일 광화문에서 열린 공무원노조, 전교조의 '정치활동자유보장촉구결의대회'는 앰프 3m 앞에서 108데시벨이 나왔고, 다른 집회장 경계지역에서도 대부분 80데시벨을 넘어섰다. 인근 세종문화회관은 집회시간동안 77.2∼82.7데시벨이 나왔다. 당시 대회 참가인원이 주최측 예상으로 700명이었으니, 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는 이보다 훨씬 심한 소음이 발생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집시법 문제, 향후 쟁점으로 부각할 듯
집시법 연석회의는 "소음진동규제법은 일시적으로 소음이 발생하는 집회시위에 적용하기 곤란하다, 집회의 한시적 소음이 건강상의 피해를 가져올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주장했다. 소수 동일인이 하루종일 확성기만 틀어놓고 며칠간 지속적으로 집회를 계속한 극단적인 경우는 업무방해죄로 처벌된 사례가 있어, 별도의 소음규제 도입은 불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집시법 연석회의는 지난 3월 발족했지만 탄핵정국과 17대 총선 등 긴박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후 소음규제, 주요도로 행진금지, 학교·군부대 인근 집회 금지 등 개정 집시법의 대표적인 독소조항들을 재개정하는 운동을 적극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석운 전국민중연대 집행위원장은 "'탄핵무효부패정치청산을위한범국민행동' 차원에서도 5월초 범국민토론회에서 집시법 문제를 중요개혁과제로 삼고 대응하자는 논의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