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주간지 <씨네21>의 전 편집장 조선희(44·사진)씨가 에세이집 <그녀에 관한 7가지 거짓말>(한겨레신문사)을 펴냈다. 언론인 활동을 접은 뒤 세 번째 낸 책. 조씨는 이 책에서 직장인 여성을 옭아매는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그 ‘거짓말’이란 ‘편견’의 다른 이름이다. 흔히 “여자들은 말이야…”라는 말로 시작되는 편견은 뻔하다. 여자는 리더십이 부족해, 여자는 섬세한 게 최고의 무기야, 똑똑한 여자는 골치 아파, 튀는 여자는 못 봐 줘, 여자의 적은 여자지, 가정 있는 여자들 직장에 태만해. 그렇게도 뻔한 편견에 대해 조씨는 오목조목 비판한다.
여성에 관한 오해 요목조목 비판
저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남자가 만들어낸 거짓이데올로기를 흡수하며 직장생활을 한 세대죠. 그래서 여성들은 거기에 저항해서 ‘여성끼리 뭉쳐야 한다’는 행동지침이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변하고 있어요. 사회 각 분야에 여성들의 ‘쪽수’가 늘고 있으니까요. 요즘 여성들은 손 뻗으면 닿는 곳에 여성이 있으니까 ‘자매애’를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듯해요.
조씨의 ‘쪽수론’은 여성의 리더십에도 적용된다. 지난 세기 여성들은 남성들의 어깨 너머로 리더십을 배울 수밖에 없었지만, 21세기의 여성들은 남자들과 공평하게 리더십을 다투게 되었다는 것. 조씨는 여성 리더십을 ‘무진장한 매장량을 갖고 있는 유전, 또는 이제 막 개발금지가 해제돼 값어치가 급등하는 신시가지’라고 비유한다.
여성의 리더십이 먹히면 여성 정치지도자들도 늘게 마련일 것이다. 조씨는 여성의 정치세력화 역사에 대해 “한국의 2년이 세계의 20년”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급속한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는 것.
최보은(월간 <프리미어> 편집장)씨가 ‘박근혜를 사유하자’고 주장해 논란이 됐던 것이 불과 2년 전이에요. 그것이 여성 정치세력화에 대한 최초의 발언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이미 그러한 주장을 수정하는 시기가 됐잖아요. 생물학적 여성이기 때문에 무조건 합치는 게 아니라, 당파성에 따라 따로 연대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잖아요. 각 정파에 다양한 여성들이 포진했기 때문이죠.
“양성평등은 통일 만큼 어려운 숙제”
조씨는 “시간은 여성의 편”이라고 말한다. 빨리 가든, 더디 가든, 어쨌거나 시대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성별을 떠나 실력으로 인정받는 여성인력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주간지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조씨는 영화계도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남성 판타지를 자극하는 영화가 많아요. 영화감독집단의 98%가 남성이니까요. 하지만 빠른 속도로 달라질 거예요. 영화를 기획하고 홍보하는 여성도 많고, 현장에서 스태프·감독 등으로 활동하는 여성이 계속 늘고 있으니까요.
지나친 낙관론은 아닐까. 아니다. 조씨 역시 엄연한 현실을 지적한다. 여성의 교육기회와 참정권 등 헌법상 권리는 보장받았지만 실생활에서 균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문화·제도상 여건은 따르지 않는 등 ‘이상과 현실 사이의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
어디 그뿐이랴. 조씨는 남편과 가사분담을 실천해 평등부부로 사는 것을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지고 분단 50년을 지나온 남과 북이 통일협상을 준비하는 것만큼 고난도의 일”이라고 비유한다. 그래도 그는 믿는다. 세상을 변하게 만드는 시간의 힘을.
물론 그 힘이 어찌 저절로 나왔을까. 과거와 현재,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운 많은 여성들의 ‘삶을 내건 투쟁’에서 그 힘은 비롯된 것일 터다. 조선희씨의 탄탄한 글과 다부진 표정에서 “여자가 말이야…”라는 편견쯤은 가볍게 날려버릴 수 있는, 멀지 않은 미래를 예감해본다.